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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chalna
Aug 23. 2024
어른의 덕목 6. 관계(2) - 도움받기
괜히 신세 지기 싫으신가요?
괜찮아요! 하고 스무 번쯤 말한 것 같지만
나를 둘러싼 눈빛들에 걱정과 의심이 짙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 보는듯한 시선이 낯설고
사소한 일에 내미는 도움이 어색하지만 견딜 수밖에.
왜냐면 난 다쳤으니까!
어른의 덕목 6. 관계(2) - 도움받기
다리를 다쳤다.
다쳐서 아프고 속상하고 그런 것 보다 먼저 든 마음은 걱정이었다.
학기 말 마무리는 어쩌지? 2학기는 어쩐담?
아니 당장 오늘 집에는 어떻게 가고 병원은 어떻게 다니는데?
머리가 영 복잡했다.
다리를 다치니 아주 기초적인 '스스로'도 어려웠다.
입원했을 땐 양치질하고 머리감기도 어려웠다. 퇴원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식사며 청소며 빨래며 모든 집안일은 가족들이 도맡았다.
엄마가 태워주지 않으면 병원에 가기조차 어려웠고
택배마저 동생이 뜯어주지 않았다면 열어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일과 관련되면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같이 구급차를 타고 병원 수속까지 해주신 옆반선생님께
갑작스러운 병가로 비운 나 대신 서류 처리며 학급 관리며 해주신 부장님께
그리고
나의 공석으로 업무를 대신하는 또 다른 동료선생님들 모두에게
몹시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였다.
이 지경이 되니 올해처럼 무더운 나날,
가족들과 동료들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게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불의의 사고였고 내가 이 상황을 원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가장 속상하고 짜증이 나는 것은 나 자신인데도.
뭔가 신세 지는 기분이 싫다.
내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이 해주는 것이 불편한 느낌.
번거로움을 끼치는 일이 꺼려지는 마음.
빚을 지는 것 같기도, 민폐를 끼치는 것 같기도 하다.
몇 년 전, 복잡한 업무에 심란한 상담이 겹쳐 거의 울면서 일하던 내게
자기야- 이건 간단한 거니까 내가 해줄게, 하시던 동료 선생님이 떠올랐다.
아니에요, 제 일인데요- 하자
너무 혼자 하려고 하는 것도 병이다. 필요하면 도와주세요, 하는 것도 배워야 해.
하셨던 그 말씀.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성인이 자기 일을 스스로 처리한다는 게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 할 일은 어찌 됐든 내가 마무리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게 아닌가,
혼자 할 수 있다면 혼자 하는 게 깔끔하고 유능하지 않나, 하는 생각.
그래서 어려움이 있어도
굳이 묻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빚처럼 느껴졌고, 그 도움을 받으면서 괜히 감정적으로 얽히고 싶지 않았으며
또 그만큼 나도 타인의 일에는 관심 두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던 것 같다.
지 일 지가 하면 되지. 하면서.
그런데 살다 보니
지 일을 지가 스스로 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오기도 하는 거였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우리 모두는 타인들의 도움에 기반하여 살고 있다.
의지와 상관없이 남에게 '신세'지는 일은 언제든지 일어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쉽게 호의를 베푼다.
이런 사람들의 좋은 마음이 돌고 돌면서
누군가의 빠진 부분을 채워 넣고 다시 원으로 굴러가는 것이 좋은 관계인가 보다.
어쩔 수 없이 도움받아야 할 때는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기꺼이 받고
또 누군가에게 그런 도움이 필요할 때 기꺼이 내가 가서 채워 넣어야
원이 유지되는 거였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기에 양쪽이 기댄 모양을 '사람' 글자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자꾸 이렇게 도와주시면 어떡해요, 전 뭐 해드릴 것도 없는데, 하던 말에
호탕하게 웃으시며
다음에 너 같은애 보면 도와주면 되지 하시던 말이 떠오른다.
다시 출근할 때는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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