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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lna Sep 08. 2024

어른의 덕목 8. 품위(1)- 말의 함정

우아한 어른의 말하기

평생을 조심히 사용해야 하는 것이 말이다.



어른의 덕목 8. 품위(1)- 말의 함정



가족 중 유일한 수다쟁이로 태어난 나는  말조심하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시간 철딱서니 없이 쫑알거리고 나서야 겨우

뭔가를 입 밖으로 내뱉기 전에 돌다리를 더듬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아직도 내 휴대폰 배경화면은 말조심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관찰하게 되었다.



관찰해 보면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도 참 많고, 그게 문제인지도 모르는 사람도 정말 많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걸어 놓는 '말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가 정말 어렵다는 거다.

게다가 때로는 나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말의 함정을 걸어놓기도 한다.

품위 있는 어른이라면 이런 것 좀 안 했으면 좋겠다 - 하는 말의 함정.





1.  말 안 하고 싶어요: 굳이 묻지 않기


신규 시절, 연세가 지긋하신 선생님들과 티타임을 하게 된 적이 있었다.

어리디 어린 병아리가 귀여우셨던 지, 나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학교 생활은 어때? 어려운 일은 없어? 하는 일상적인(그리고 사려 깊은) 질문을 지나서,

자기야 연애하니? 남자친구는 몇 살이고 뭐 하는 사람이야?

집은 어딘데? 부모님은 뭐 하셔? 하는 다소 부담스러운 사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부모님 그냥 회사 다니세요 했더니 답하시던 말씀.

무슨 회사? 부모님은 어느 대학 나오셨어? 집에 재산이 좀 있니?

하하하- 잘 모르겠어요. 하고 잔뜩 불편해하며 웃어넘길 수밖에.



사람마다 내보이고 싶은 영역이 있고, 내보이기 불편한 영역이 있다.

또 그 영역이 넓은 사람도 있고 좁은 사람도 있다.

그런데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이것저것, 질문하다 보면

상대가 허락하지 않는 영역까지 침범해 들어가기 쉽다.

상대방이 말하고 싶지도 않은 걸 관심이라며 질문하는 건

정말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인 것 같다.


개인사에 관한 일이라면, 직접 말하기 전까진 안 묻는 게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굳이 묻지 않아도 말하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다 말하게 되어있다.



( 요즘 그런 사적인 걸 물어보는 사람이 어딨 냐고?

나는 불과 몇 달 전에, 잔뜩 불편해하며 대답을 피하는 우리 신규에게

살고 있는 집의 월세와 보증금, 계약 기간, 집에 누가 드나드는지 까지

끝까지 캐묻는 선생님을 본 적 있다. 내가 다 체하는 기분이었다.)




2.  도대체 어떻게 아시죠?: 여기저기 말 돌리지 않기


세상에 진짜 비밀은 없기 때문에 비밀을 유지하고 싶다면 내 입밖에서 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내가 말 안 했는데도 소문나는 일은 어떡한담?


몇 해 전, 새 학교에 부임받았을 때였다.

긴장한 마음으로 첫인사를 간 자리에서 처음 보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 - 선생님이 그 선생님이에요?

그녀는 놀랍게도 나의 이름, 나이, 학번과 학과는 물론이고

대학 시절 나의 대외활동과 사건 사고, 친한 친구들, 예전 남자친구까지 꿰뚫고 있었고

그걸 전 직원이 대면한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기까지 했다.

흡사 누군가 내 일기장을 공개적으로 읽는 느낌이랄까.

(나는 아직도 그녀가 이걸 다 어디에서 알았는지 모른다.)



내가 직접 말하지 않은 '나'에 대한 말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것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데,

직접 들은 것도 아니면서 그걸 아무렇지 않게 내 면전에 이야기한다고?  

새 학교 첫날부터 열받아 죽을 뻔했다.



그런 일은 또 있었다. 분명 비밀리에 업무 희망서를 제출했는데 너 그 거한 다며? 하고 물어본다던지

주말에 어디 카페에 앉아있었다면서! 그거 누군데! 하고 묻는다던지(봤으면 차라리 인사를 해주면 좋겠다.)



나도 안다. 이 사람들에게 악의가 없었다는 걸.

내가 모르는 사이에서 얼마든지 내 이야기가 돌 수 있고 그게 관심일 수도 있다는 거.

(사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화젯거리 이기도 하니까)

아마 내가 타인들에 의해 이야기되었던 만큼, 나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거.



그런데 최소한, 들었으면 아 그렇군요 -. 거기서 끝! 하고 넘어갈 수는 있지 않나 싶은 거다.  

그걸 또 다른 사람에게 말하며 조미료를 더 할 필요도,

굳이 직접 듣지 않은 일로 당사자에게 아는 척해 상대를 놀라게 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에 대한 말을 쉽게 하지도, 들었다고 쉽게 아는 척하지 않는 태도.

상대에 대한 미지의 세계를 좀 남겨주면 좋겠다.




3. 진짜, 안 듣고 싶어요: 험담은 피하기



꽤 오랜만에 만난 동료분들과의 즐거운 술자리였다.

한 선생님이 그 자리에 없는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는 업무적으로 부딪힌다는 말이었고, 좀 시간이 지나자 그 사람의 태도가 별로라는 말이었고,

나중에는 그 사람이 맘에 안 든다는 말이었다.



사람에 대한 것도 일종의 기호일 수 있으니, 개인적 평가가 있을 수는 있다.

내가 진짜 불편했던 건 어떤 사람에 대한 사적인 평가를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느낌을 줬다는 거다.  


그분 저는 괜찮던데요- 하는 말은 모두 묵살당했다. 이게 뒷담화지!

결국 회식자리 내내 누군가에 대한 뒷말을 했다는 찝찝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그 선생님은 좀 피하게 되었다.

어떤 한 인간을 이렇게까지 매도할 수 있는 사람이 꺼려지기도 했고,

또 언젠가는 그게 내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안 맞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화가 날 수도, 억울한 일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남에 대한 험담을 그렇게 대대적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의도가 어떠했든 당사자에게는 커다란 상처일 수 있다.  




 Unsplash



그런데, 이런 말의 함정을 놓는 사람들은 피하는 일은 사실 되게 어렵다.

결국 그냥 내가 조심해야 하는 거다.

말을 줄여야 하고, 부적절한 말에 동조하지 않아야 하고,  말을 거를 줄 아는 사람을 찾아다녀야 한다.



중요한 건 내가 저렇게 말의 함정을 놓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품위 있고 우아한 어른이라면, 최소한 말로 남을 불편하게는 만들지 않을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라는 무기로 남을 찌르지 않았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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