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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진 May 15. 2020

휴지는 망쳐지길 원했다



휴지는 망쳐지길 원했다


부드러운 살이 포개진 순백의 몸

그 위를 날아다니는 꽃과 나비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휴지는

사실 망쳐지길 원했다


칸칸이 줄 맞춰 서 있는 것을 마구 헝클어

처량할 만큼 쭈그러뜨려서

올록볼록한 근육이 뭉개지도록 이곳저곳에 문대 주길

아무 데나 굴러다니다

속이 훤히 보일 때까지 적셔 살이 불어 없어지길

실금이 그어진 생명줄을 더 더 잘라내어

팍팍한 뼈만 앙상하게 남길 원했다


그래서

겹겹이 쌓여 숨 막히는 어둠 속에서

사이사이 스며드는 아침을 멍하니 기다리지 않고

세상을 온전하게 바라보길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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