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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진 Apr 04. 2020

나는 그게 좋았다



나는 그게 좋았다


나는 그게 좋았다

주말에 햇빛 가득한 베란다에서
캠핑용 간이 의자에 앉아
텍스트로 정리된 남의 인생을 보다가
생사를 티 나게 보여주는 화분의 꽃을 보다가
정신을 쏙 빼놔서 힘없이 늘어진 옷들을 보다가
발포지만 반짝이는 먼지 쌓인 그림들을 보다가
수년 동안 아빠가 모아놓은 정리 안 된 공구들을 보다가
한쪽만 유난히 닳아 헤진 엄마의 신발 밑창을 보다가
돌돌 말린 투명 호수에 갇혀버린 수돗물을 보다가
외할아버지가 싸주신 작년, 재작년의 헛개나무를 보다가


바라본 창밖에서
바람에 날아오르는 벚꽃잎을 보는 것과
강변북로 위를 일정하게 지나다니는 차를 보는 것과
누가누가 더 빨리 가나 내기하듯 흘러가는 강물을 보는 것과
유혹하듯 나풀대는 나무들을 보는 것과
멈춰있는 콘크리트 덩어리, 주차라인, 그리고 나를 보는 것

나는 그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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