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 시험에 합격하고 얼마간의 기다림 끝에 경기도 남부 도시의 한 교육청에 발령이 났다. 낯선 도시에 있던 교육청까지는 엄마가 운전을 해 데려다주셨다. 임명식을 보고 싶다는 엄마를 애써 집으로 돌려보내기를 잘했다. 교육장의 축사로 임명식은 간단히 끝났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어리바리하고 있자니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각 학교에서 신규 교사들을 데리러 나온 선생님들 중 한 교무부장님이 나를 찾고 계셨다. 교무부장님의 오래된 쏘나타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차 안에는 나 말고도 두 명의 신규 교사가 더 있었다. 꽤나 긴장해 있던 터라 제대로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대신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학교에 도착해 교감 선생님과 인사를 했다. 규모가 큰 학교라 교감선생님은 두 분이셨다. 곧 교장실에 가서 발령 보고와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신규 교사 셋과 교무부장, 두 명의 교감이 함께 교장실에 들어갔다. 교장실은 거의 교실 하나 반에 맞먹을 만큼 넓었다. 매우 무거워 보이지만 그다지 세련되지는 않은, ‘학교에서나’ 볼 법한 소파들이 유리를 끼운 탁자를 중심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상석에 앉은 교장선생님이 간단한 환영 인사를 건네주셨다. 담임으로 배정이 될 텐데, 6학년에 두 자리가 있고, 5학년에 한 자리가 있다고 했다. 나는 6학년 담임으로 배정되었다. 봄방학 중이었지만 새 학기를 준비하는 선생님들이 출근해 계시다고 했다. 학년 연구실로 올라가 인사를 하고 나도 이제 담임이 될 준비를 해야 했다. 개학까지 열흘 정도가 남아 있었다.
주말을 제외하고 개학까지 매일 출근하며 진짜 담임이 될 준비를 했다. 교실을 꾸미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배정된 10만 원 남짓의 예산으로 교실에 필요한 물품들과 게시판을 꾸밀 재료들을 샀다. 게시판에 들어갈 글자들의 폰트를 무엇으로 할지 한참을 고민했고, 프린트를 했다. 뒤판과 앞판에 어떤 내용을 넣을지도 고민이었고, 짙은 초록색 배경의 칠판과 게시판을 어떤 디자인으로 채워야 예쁠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내가 경험한 교실과는 다른, 재미있고 활기찬 분위기를 기획해보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게시판과의 사투를 미뤄두고 일단 첫날 아이들과 함께 할 활동을 생각해 보았다. 자기소개는 너무 진부할 것 같았고, 첫날부터 교과 수업을 하자니 아직 만나보지 못한 출석부 사진 속 아이들이 벌써 실망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난방이 되지 않는 늦겨울의 교실은 손이 곱도록 추웠다. 학급 증설을 하며 창고였던 교실을 받게 된 터라 바닥이고 책상이고 사물함이고 모든 게 엉망이었다. 온수에 손을 녹여가며 걸레를 빨아 교실을 닦았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패딩을 입고 걸레질을 하니 손과 발만 꽁꽁 얼었다. 그때는 몰랐다. 모든 교사들은 교실에 면장갑, 고무장갑, 목장갑, 털실내화 등을 필수품으로 구비해 두고 산다는 것을. 내가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한 것은 이것들과는 거리가 먼 머리와 말과 글로 하는 일들이었으므로 당황스러웠다. 새로 구입했다는 대형 모니터가 개학 날에도 끝내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할 활동들을 모두 피피티로 만들어 두었는데 말이다.
동학년 선생님들과 첫인사를 나누게 된 날 바쁘게 새 학년 준비를 하던 선생님들이 잠시 일을 멈추고 두 명의 신규 교사를 환영해 주셨다. 6학년은 모두 8반까지 있었으므로 담임들도 모두 여덟이었다. 알고 보니 두 명의 선생님을 제외한 6명의 선생님들이 이 학교가 처음인 분들이었다. 선생님들은 이에 대해 별말 없이 넘어갔지만 이러한 학년 구성은 꽤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학폭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학년이기도 하고, 예상보다 큰 행사인 졸업 사진 촬영, 제주도로 계획되어 있던 수학여행까지 고려하면 6학년에는 이 학교 시스템에 익숙한 교사들이 배정되는 것이 바람직했다. 이렇게 6학년이 구성되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는다면 이제는 학년 구성에 어떤 큰 잡음이 있었겠구나, 하고 예상할 수 있지만 이 때는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최대한 좋은 말만 들려주셨다. 전반적으로 ‘무난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있는, 지하철 역에서 그리 멀지 않고 자가운전 접근성도 좋은, 이런 ‘대규모’ 학교에 신규 교사가 발령받을 수 있었던 것은 매우 행운이라고 했다. 전입과 휴직, 복직 등 기존 교사들의 인사이동이 모두 끝난 후 교사가 모자란 학교에 배정되는 것이 신규 교사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학교에 신규 교사 자리는 없었다고 했다. 언뜻 축하의 말처럼 들렸던 이 말이 우리에게 건네는 씁쓸한 위로였다는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함께 발령받은 두 명의 동기와는 아주 빠르게 말을 놓게 되었다. 교직 생활을 통틀어 가장 소중하게 남은 내 사람들이다. 근황을 전하자면, 셋 중 둘은 연이어 사직서를 냈다. 남은 한 명은 토요일마다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