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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깨 Sep 06. 2023

‘일잘러’와 ‘참교사’ 사이에서 흔들리는 교사들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친다. 가르칠 아이들이 하교한 후에는 다음에 가르칠 것들을 준비한다. 전담 선생님이 계시는 두어 과목을 제외한 모든 과목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교사는 특히 더 수업 준비에 드는 시간이 많다. 내일 시간표가 ‘국수사체음’이라면 다섯 과목을 한 차시씩 준비해야 한다. 보통은 보다 긴 호흡으로 계획을 세워 준비하지만 자료를 보충하고 확인하고 시뮬레이션해 보는 데에만 해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만 하지는 않는다. 교사는 가르치는 일 이외에 학교가 운영되는 데에 필요한 노동을 제공한다. 이 노동을 학교에서는 ‘업무’라고 부른다. 대규모 학교라면 교사들의 수가 많기에 보통 하나나 두 개 정도의 업무를 맡는다. 작은 규모의 학교라고 업무의 개수가 적지는 않기 때문에 소규모 학교의 교사들은 많게는 대여섯 개의 업무를 혼자 처리하기도 한다. 내가 교직 생활 중에 맡아보았던 업무는 ‘걸스카우트 운영’, ‘돌봄교실 운영’, ‘학교 환경’, ‘방송실 운영’, ‘과학 대회 운영‘, ’스쿨버스 운영‘ 등이 있다.


 아이들의 등교부터 하교까지 교사는 아이들 앞에서 몇 시간에 걸친 긴 심포니를 지휘하는 지휘자처럼 움직여야 한다. 오케스트라 단원이라면 자기 파트가 아닌 구간에서는 잠시 숨을 돌릴 수도 있겠지만 교사는 쉬는 시간에도, 점심 식사 시간에도 늘 일을 하는 중이다.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아이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문제는 이 흐름이 ’업무‘ 때문에 깨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업무는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간을 침범하기도 한다. 수업 시간에 교무실에서 업무 관련 메시지나 전화가 오기도 한다. 수업 시간을 침범하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최대한 이러한 방해를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긴급‘이라는 단서를 단 메시지들을 수신하곤 했다. 쉬는 시간에 업무 관련 연락을 받으면 좀 나을까. ’오후 3시까지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는 메시지를 받은 순간부터 ‘오후 3시‘와 ’관련 자료‘가 머리에 들어차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남은 시간 동안의 수업도, 생활 지도도 점점 산만한 채 흘러간다.


 교사들이 업무를 무시할 수 없는 건 업무 처리 역량이 학교에서 교사를 평가하는 주된 요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든 맡은 업무를 무리없이 처리한다면 (물론 민원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 학교에서 그 교사는 ‘유능한 직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승진 제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교사의 승진은 아이들에게 쏟은 시간과 정성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려운 업무를 얼마나 자주 맡아 얼마나 고생했느냐’로 평가된다.


 정부가 학교 돌봄 교실을 확대한 시기에 돌봄 교실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일반 교실 3개를 돌봄 교실로 바꾸는 공사부터 시작해 필요한 기물, 집기, 교구 등을 구입해야 했다. 돌봄 전담선생님을 뽑아야 했고 돌봄 교실에 들어올 아이들을 선별해야 했다. 학기가 시작되어 돌봄 교실이 운영되고 나서부터는 매달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간식 계획을, 매주 돌봄 교실에서 이루어질 교육 계획을 세워야 했다. 모든 일은 결재 후 진행되어야 했으므로 매일 몇 건씩의 결재 문서를 만들어야 했다.


 일이 조금씩 손에 익고, 좋은 돌봄 전담선생님들을 만나 자리가 잡혀가기까지 한 학기 정도가 걸렸다. 이제 조금 시스템이 안정화되어가나 싶었을 무렵 국정감사 시즌이 되었다. ‘000 의원 요구자료’라는 이름의 공문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정부가 돌봄 교실을 확대한 당해였기에 돌봄 교실에 관한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다. 여러 명의 국회의원들이 돌아가며 학교에 자료 제공을 요청했다. 국회의원 요구자료는 마감이 언제나 매우 촉박했다. 짧은 시간 안에 ‘돌봄 교실’이라는 키워드를 넣어 과거에 결재된 문서들을 뒤져 정보를 찾아내야 했다. 기한이 만료되어 검색이 되지 않는 문서들, 암호가 걸려 열람할 수 없는 문서들을 파헤치고 있자면 수업 준비가 오히려 사치처럼 느껴지곤 했다.


 교사의 과도한 행정 업무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각 학교에는 행정실무사가 고용되어 있다. 하지만 교사들은 여전히 행정 업무 부담을 호소한다. 보통은 학교 행정 업무를 ’교육과 관계있는 일‘과 ’교육과 관계없는 일‘을 기준으로 나눠 교사와 행정실무사에게 할당한다. 문제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행정은 ’교육과 관계있는 일‘이라는 점이다. 이 두루뭉술한 기준 때문에 업무 분장으로 갈등을 겪기도 한다. 교사들은 왜 이런 일까지 교사가 해야 하느냐고, 행정실무사는 이런 일은 행정실무사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토로한다.


 내가 그동안 업무 처리를 하며 행정실무사와 소통하는 경우는 내가 해야 할 업무를 전달받을 때가 거의 전부였다. ‘언제까지 이 업무 마감해 주세요’, ‘공문 공람했으니 살펴보세요’라는 메시지를 받으면 해야 할 일 하나가 추가되는 식이었다. 발신자를 가린다면 아마 누군가는 나의 상급자가 보낸 메시지라고 착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나는 그들이 이 업무를 내게 ‘지시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일을 분류하고 전달할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시간과 노동력은 누구를 돕고 있는 중일까. 사무 공간인 교무실을 그들과 공유하는 거의 유일한 교사, 아니 관리자인 교감이 아닐까 의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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