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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깨 Sep 08. 2023

교사들이 왜 자꾸 죽는지 묻는 사람들에게

  


 교사는 오롯이 ‘인간’인 채 아이들과 만난다. 다른 직업과는 다른 교사라는 자리가 갖는 특징이다.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좋은 인간’이란 언제나 쉽게 정의되지 않고 가닿기 전에 미끄러져 버리고 만다. ’좋은 교사‘가 되는 일도 그렇다.


 이러한 부담을 명시적으로 씌우지는 않지만 교사를 둘러싼 많은 사람이 암묵적으로 교사에게 그러기를 요구한다. 교사 자신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아이들 앞에서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곱씹는 것처럼 교사도 언제나 조금씩 모자란 교사로서의 자신을 의심하곤 한다.


 생계를 유지하는 방편인 직업일 뿐인데, 지나친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에 지친 교사들은 다양한 탈주 방법을 모색해 보기도 한다. 교실 안과 밖의 자아를 분리해 본다. 낙제만 면하게 최소한의 의무만 이행해 본다. 사랑 없이 사무적으로 아이들을 대해 본다. 그리고 대개 그 탈주는 실패로 돌아간다. 무감각해지려는 시도는 이미 완전히 무감각해졌을 때에만 성공한다.


 최근 공교육이 이슈가 되어 그런지 ‘기억 속 선생님 소환하기’ 열풍이 분 것 같다. 많은 이야기들을 접했다. 거기에는 감사한 선생님에 대한 눈물 나는 헌사들도 있고, 한때 교사였던 사람으로서 함께 부끄러워지는 뒤늦은 고발들도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렇게 소환해 내어 이야깃거리로 삼을 수 있는 교사가 얼마나 많을까.


 대부분의 교사들은 성인과 악인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한다. 지나고 보면 선연도, 악연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평범한 교사들은 매년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스러져간다. 그리고 그들은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불가능할 것 같은 ‘인간 완성‘이라는 영겁의 과제 앞에서 좌절하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살고 있다.


 ‘사직서를 내면 될 것이지 왜 죽느냐’는 말은 그러므로 교직에 대한 몰이해를 선전하는 구호와도 같다. ‘교사 자격이 없다’는 누군가의 무심한 평가는 교사 앞에 이런 문구로 바뀌어 도착한다. ‘인간 자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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