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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깨 Sep 05. 2023

‘리스펙’은 모자라요 ‘존경’을 드릴게요

 부모님의 손을 잡고 입학식장으로 걸어 들어오는 아이들은 예상보다 훨씬 작았다. 얼마 전 졸업해 이제는 중학생이 된 직전 제자들과 이제 막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들은 덩치도, 눈빛도 달랐다. 학급 번호가 적힌 큰 팻말을 든 손에 땀이 났다. 아무래도 외투를 벗는 게 나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내 쪽으로 방향을 트는 아이들을 눈으로 좇았다. 멀리서 엄마의 손을 잡은 한 여자 아이가 달려왔다. 내 앞에 당도한 아이의 엄마가 ”젊은 선생님이다!“하고 외쳤다. 머리에 리본 핀을 잔뜩 꽂은 아이가 앞니가 다 빠진 잇몸을 드러내며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그때 내가 당황했던 건 그 어머니가 “젊은 선생님이다!”라고 외친 이유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도 엄연히 나이 차별이 있고 그것은 보통 ‘젊은 교사는 열정이 넘치고 아이들과 잘 소통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 기대감의 이면에는 ‘나이가 많은 교사는 고리타분하거나 타성에 젖어 있다’는 선입견이 언제나 함께 한다. “젊은 선생님이다!”라는 말은 기대감과 선입견을 모두 내포한 말이므로, 그 말의 대상이 되는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옆에 서 계시던 30년이 훌쩍 넘은 경력의 K선생님도 그 말을 들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K선생님은 손이 정말 빠르셨다. 입학식 준비를 하러 출근했는데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교실에서 서성이다가 연구실에 가면 항상 K선생님이 계셨다. 연구실의 큰 회의용 탁자에는 선생님이 그리고 오리고 붙인 것들이 가득했다. 무엇을 만들어도 항상 똑같은 것으로 여덟 개를 만드셨다. 1학년이 8반까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A4 사이즈의 직각 플라스틱 바구니를 8개 구해 교실을 꾸밀 장식, 환영 문구들, 학기 초에 쓸 유용한 프린트물 등을 담아 각 반에 선물처럼 안겨주시곤 했다. “하나 만드나 여덟 개 만드나 드는 시간은 비슷하다”며 그 말을 하는 와중에도 손을 쉬지 않던 선생님의 마음 씀씀이는 나처럼 손재주 없는 초보 교사에게 커다란 축복이었다. “다 쓰라고 주는 거 아니니까 필요한 것만 골라 써”라고 하셨지만 결국 유용하게 모든 자료들을 활용하곤 했다.


 나누는 사람은 나누는 사람을 낳는다. 매번 받기만 할 수는 없었던 다른 선생님들이 가지고 있던 비법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어떤 선생님은 매년 쓰고 있는 수제 교사 일지를 일일이 프린트하고 제본해 각 반에 선물했다. 표지에는 각 반 담임들의 이름이 다르게 들어갔고, 내지에 들어가는 학생 명단도 모두 다르게 한 것이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도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어떤 분은 그날 알림장에 반드시 넣어야 할 문구를 체크해서 매일 메시지로 날려주셨다. 1학년 교실이 있던 별관과는 거리가 한참 먼 체육관에서 유용한 교구들을 챙겨 와 체육시간에 꼭 쓰라며 수업 팁과 함께 연구실에 놓아주시는 선생님도 계셨다. 옆 반을 쓰시던 K선생님은 항상 나보다 먼저 출근해 우리 반 냉난방기를 켜두곤 하셨다. 덕분에 아이들도 나도 따뜻하고 시원한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수업에 유용한 IT 툴들을 찾아 편집해 각 반으로 뿌렸다. “필요한 것만 골라 쓰세요”라는 문구도 빼놓지 않았다.


 K선생님을 떠올리면 아이들을 보던 그 눈빛이 기억난다. 내 눈에도 아이들은 너무나도 귀엽고 예뻤지만 K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는 눈빛은 거의 다른 차원에서 온 것 같았다. 고요하고 온전하게 한 명 한 명에게 몰입하는 그 눈빛은 무해하게 가득 차 있었다. 티타임 때 아이들 이야기를 하게 되면 나는 주로 아이들의 귀여움에 대해 말했고, K선생님은 주로 아이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했다. 나는 ’젊은 교사‘의 지위를 이용하며 누렸고, K선생님은 ’나이 든 교사‘에 대한 선입견을 정면으로 이겨냈다.


 볼일이 있어 행정실에 들렀다가 K선생님을 마주친 적이 있다. 선생님은 나를 발견하고는 무언가 감추듯 얼버무리고는 사라져 버리셨다. 한참 뒤에 알고 보니 사정이 어려운 학생의 돌봄 교실 간식비를 대신 내주고 계셨다. 심지어 자기 학급 아이도 아니었다. 됐다며, 자기에게는 그저 푼돈이라며, 그냥 모른척하라고 하셨다. K선생님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학급을 운영하며 배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밖에서부터는 존경을, 안으로는 충만을 누리는 선생님을 내 미래의 모습과 겹쳐보기도 했다.


다음 해에 선생님은 다시 1학년 담임이 되셨지만 건강을 잃어 학교를 오래 쉬셨다. 어쩌면 선생님도 내색이 없으셨을 뿐 항상 이겨내기만 했던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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