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담임으로 아이들과 처음 만나던 날, 선배가 해준 조언을 되새기며 학교로 향했다. “절대 웃지 마. 첫날부터 웃으면 지는 거야.” 그맘때 아이들은 교사들과 기싸움을 하려 하고, 첫날부터 웃음을 보이면 ‘만만한 교사’가 된다고 했다. 입고 있던 모직 롱코트의 벨트를 단단히 여몄다. 실전이 코앞이었고, 중요한 건 기세였다.
아이들이 하나 둘 교실로 들어왔다. 아이들은 대부분 머리가 길었다. 남자아이들은 깔끔히 이발한 머리가 마치 유아기적 유물인양 일부러 덥수룩하게 머리를 기른 것 같았다. 여자 아이들은 더 이상 앞머리를 귀 뒤에 꽂지 않았다. 검게 기른 머리를 장막처럼 내리고 그 뒤에 얼굴을 숨겼다. 아이들은 조용히 서로를 탐색했다. 누구와 무리를 지어 다니게 될지, 누구와 경쟁을 하게 될지, 누구에게 권력을 과시하게 될지 살폈다. 그 앞에는 선배의 조언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내가 있었다.
개학 날까지 오기로 했던 티브이가 도착하지 않았다. 준비한 피피티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정식 수업은 아니었지만 첫 시간부터 ‘맨손 수업’을 하게 된 것이었다. 순발력이나 임기응변 같은 것에는 재주가 없었으므로 나는 곧 개학 첫날 아이들에게 자기소개나 시키는 뻔한 교사가 될 운명이었다. 출석을 부르고 ‘자기소개를 해보자’고 말하는 근 미래의 장면이 눈앞에 계속 아른거렸다. 그 상상 속에서 아이들의 얼굴을 덮고 있는 머리는 더욱 까매 보였다.
마지막 아이까지 도착하고 아이들이 내게 ‘무슨 말이라도 해봐요’라는 눈빛을 쏘아대는 것을 느꼈다. 이제 진짜 그토록 되고 싶지 않던 뻔한 교사가 될 시간이었다.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라도 풀기 위해 긴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교실을 둘러보았다. 33명의 눈이 전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자 이제 시작.
큰 한숨 끝에 나는 “얘들아”라고 부르고 “티브이가 안 왔어”라고 말해버렸다. ”얘들아“라고 호명하는 순간 경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미 어색해졌으므로 올해의 내 말투가 결정되었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어.” 아이들은 눈만 깜빡였다. “진짜 미안한데, 우리 자기소개 한 번씩만 하면 안 될까?”
내가 자기소개를 시키는 교사가 되는 데에 자괴감을 느낀 것은 스스로가 그 시간을 끔찍하다 여기며 살았기 때문이었다. 내 차례가 가까워질수록 커지는 압박감도, 무슨 말을 할까 머리만 열심히 굴리다가 막상 차례가 되면 모든 게 새하얘져버리는 것도,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지만 특별해 보이고 싶은 욕구는 있는 실제와 이상 사이의 간극도, 유독 나에게만 작게 돌아오는 것 같은 박수소리도. 자기소개 시간은 그렇지 않아도 낮은 내 자존감을 더 내리눌렀다. 자기소개는 꼭 자리에서 일어서서 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내 큰 키에 먼저 주목했다. 앉은 상태에서 온전히 서기까지 걸리는 그 짧은 시간도 너무 길게 느껴져서 의자에 어정쩡하게 기대 선 채 급하게 자기소개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런데 내가 교사로서 공식적으로 아이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시키고 있다니.
“대신 앉아서 해도 돼. 당연히 서서 해도 되고. 이름만 말하는 것도 괜찮아. 나는 그냥 너희 목소리를 한 번씩 들어보고 싶을 뿐이야. “ 출석 번호 순서대로 첫 번째 아이가 일어났다. ”김ㅇㅇ입니다.“라는 짧은 인사 후 아이는 자리에 앉았다. 나는 “반가워”라고 화답했다. ”나는 축구를 좋아해“, ”보다시피 나는 먹는 걸 좋아해“와 같은 말을 곁들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기 이름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아이들과 짧은 첫인사를 마쳤다. 나는 방송 조회가 곧 시작되니 화장실에 잠시 다녀와도 좋다고 말했다.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그런데 선생님 이름 말씀 안 하셨어요.“
잊고 있던 내 소개를 할 차례였다. 내 이름을 말했다. 칠판에 굳이 쓰지는 않았다. ”끝이에요?“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면 물어 봐.“ 아이들은 하나같이 내 나이를 궁금해했다. 여자 아이들이 특히 관심이 더 많았다. 아이들은 내가 21살이나 22살일 것 같다고 했다. 내 키를 궁금해하는 아이도 있었다. 내가 대답을 미루자 아이들은 180센티 정도는 될 것 같다며 자기들끼리 합의를 봤다. 결혼은 했는지, 아이가 있는지도 물었다. 아이들은 20대 초반에는 결혼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둥, 자기 이모는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 결혼을 안 했다는 둥의 말을 꺼내며 내가 비혼이라고 결론 냈다. 어느 질문에도 확실히 대답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마음대로 나를 ‘20대 초반의 키가 180센티인 비혼 여자 교사’로 이해하는 듯했다.
문득 여러 번 보며 외워두었던 출석부 속의 사진이 아이들 얼굴에 겹쳐 보였다. 아이들이 입학할 때 찍은 8살 무렵의 사진이었다. 이제는 여드름과 수염자국이 선명하고 입술은 틴트를 발라 인위적으로 새빨갛지만 얼핏 아직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너무 귀여워서 보는 사람을 어쩔 줄 모르게 하는 아기나 동물의 귀여움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냥 왠지 보고 있자면 조금 어이가 없기도 하고 실소가 나오기도 하는, 정말 좋게 봐줬을 때의 귀여움에 가까운 것이었다.
개학 첫날의 드라마틱함 같은 것은 없었다. 짧은 자기소개와 질문 몇 개가 오갔고 화면 없이 스피커에만 의존한 방송조회, 새 학기 안내 사항 전달, 학습 준비물 배부 등으로 하루를 마쳤다.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고 조금은 넋이 나간 채 내가 혹시 놓친 것은 없는지 오늘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톺아보았다. 놓친 것이 있었다.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선배의 조언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 키가 180센티라고 단정 지어질 때도, 내 나이가 21살인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도 나는 웃고 있었다. 그것보다 더 앞서 “보다시피 나는 먹는 걸 좋아해”라는 누군가의 자기소개를 들을 때도 웃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입 밖으로 말을 꺼내기도 전, 큰 한숨을 쉬던 순간부터였던 것 같기도 했다.
선배의 말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 후로 1년 내내 나는 아이들이 나를 어려워한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게 다행히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게는 더 잘 맞았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어려운 사람이 되려는 시도는 내 몸에 맞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코트와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좀 쉬운 사람, 만만한 사람으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교사의 권위가 꼭 굳은 얼굴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