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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깨 Sep 21. 2023

나이스하게 장애 아동 지우기

 J는 6학년이었고 복합 장애가 있었다. 눈 맞춤과 대화가 어렵고 발달이 더뎠고 감정 기복이 컸다. 여전히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해 증상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약물치료만 받고 있었다. J는 국어와 수학 시간에는 특수 학급에서 공부를 하고 나머지 과목 시간에는 통합학급인 우리 반으로 왔다. J는 자를 대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노트 위에 이리저리 자를 옮겨 선을 죽죽 그으면 곧 그림 하나가 완성됐다. 주로 대형 선박을 그렸다.


 통합학급 담임으로서 나는 J가 통합학급인 우리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때 J를 위해 따로 마련된 개별화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했다. 다른 아이들이 배우는 내용을 J의 수준에 맞게 재가공해 제공해야 했다. 몇 번 그런 시도를 하다가 금세 포기하고 말았다. 내 능력으로는 벅찬 일이었다. 매번 다른 수업 자료를 만드는 것도, 보조 선생님 없이 한 교실에서 동시에 두 수준의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J에게 제공한 것은 J가 사고 없이 수업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는 것뿐이었다. J는 가끔 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바닥에 누워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런 일이 되도록 적게 일어나게 해야 했다. 그러자면 수업 시간에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J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자와 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J는 가끔 엎드려 잠을 자기도 했다. 복용하는 약 때문이었다. 나는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것을 절대 허용되지 않는 교사였다. 하지만 J는 그대로 두기도 했다. ‘일어나서 수업 들어야지’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J가 들을 수업은 이 교실에 없었다 나는 J에게 일어나야 할 이유를 대지 못했다. J가 교실 안을 서성이며 돌아다닐 때도 강하게 제지하지 못했다. J를 배제한 채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내가 아이에게 앉으라는 요구까지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여러 방법으로 수업 시간에 J를 자주 지워버렸다.


 J는 쉬는 시간에 내게 와서 자신이 생각한 것들을 이것저것 말하곤 했다. 주로 선박들에 관한 이야기. J의 말에 호응해 줄 때 나는 13살 소년이 아닌 이제 막 말을 시작한 어린아이를 대할 때처럼 했다. 과장한 표정과 목소리의 리액션, ‘그런 것도 알고 있어?’라며 놀라는 시늉, 13살 아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입에 발린 칭찬. 지금의 나는 5살인 내 아이와 65살인 내 스승을 대할 때 거의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려 노력한다. 상대의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언어 사용이 ‘나이 차별’을 내포할 수 있다는 의식 때문이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그때 내 언어와 표정은 J를 향한 나이 차별이었다. J가 13살인 급우들과 동갑이었음에도 말이다.  


 학교는 왜 초임 교사에게 통합 학급을 맡겼을까, 왜 교대에서는 통합 학급 담임의 역할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을까, 왜 나는 의식 수준도 실무 능력도 떨어지는 채로 담임이 되었을까. 그리고 왜 J의 어머니는 내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으셨을까.


 J의 어머니를 직접 만난 것은 세 번 정도였다. 학부모 상담 때 한 번, 개별화 수업 협의회에서 두 번. 만남은 적었지만 전화 통화는 자주 하는 편이었다. 사실 그때 나는 내가 아이에게 적절한 교육적 자원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교실에서 J가 거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잠을 자기도 한다는 것을 부끄러움도 없이 전부 공유했다. 이외의 시간에는 J에게 친절하게 대했으니 이 정도면 ’나이스하게‘ 아이를 대우하고 있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J의 어머니와는 만나거나 통화할 때마다 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말하는 쪽은 주로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아이의 의학적 상태, 매일 달라지는 행동 양상을 상세히 공유했다. 그리고 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로서 겪는 어려움, J의 동생을 포함한 가족이 헤쳐나가야 하는 험난함에 대해 이야기하다가는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나는 아이에 대한 정보는 귀담아 들었고 가족의 어려움에는 공감을 표현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몇 번의 긴 대화가 이어졌어도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J의 어머니는 내가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으셨다. 내가 통합학급 담임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외면하지 않기를 요구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내게 J가 자신에게 맞는 충분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강조할 수 있었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은 아이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고, 아이의 소중한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는 일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러지 않으셨다.


 최근 장애 아동의 일반 학교 생활, 특히 통합학급이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 일이 있었다. 그 일에 관심을 갖고 살피다 보니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 대부분 비슷한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로소 J의 어머니가 내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분리 교육의 타당성을 주장한다. 그 ‘다정한 혐오’의 말들 속에서 J의 어머니는 무기력을 학습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 정도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충분히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며 협소하게 재정의된 공정성을 내세운다. 어머니는 혜택을 받는 자, 고마워하는 자의 태도를 늘 강요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J의 어머니는 명시적 요구 대신 완곡하게 요청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J가 가진 내러티브들을 풍부하게 제공함으로써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길 바라지 않으셨을까. 그 완곡함을 알아채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어머니에게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교사로서의 내 의무는 타인에게 요구받을 때 생기는 게 아니라 그 위치에 선 순간 생기는 거니까.


 J를 마지막으로 본 건 이듬해 퇴근길의 마을버스에서였다. 그때 J는 특수학교와 일반 학교 사이에서 고민하던 끝에 근처에 있는 일반 중학교에 진학한 상태였다. 반가운 마음에 호들갑스럽게 인사를 했다. J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더니 다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지내냐고, 학교는 마음에 드냐고 질문을 던졌지만 J는 내게 대답은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아무 대화도 하지 못한 채 먼저 버스에서 내려야 했다.


 ‘안녕하세요’라는 말로 최소한의 예의만 지킨 채 J는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앉아만 있었다. 그때 J의 태도는 내가 J에게 했던 지난 1년 간의 행동들을 비추는 거울일지도 모르겠다. 교실에서 자신을 자주 지워버린 나를 J도 똑같이 지워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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