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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깨 Sep 20. 2023

교실에 도마뱀을 데리고 온 아이

 H는 조용한 아이였다. 땅을 보고 걸어 다녔고 나와 눈이 맞으면 곧바로 눈길을 피했다. 발표하길 꺼렸지만 글은 수월하게 썼다. 한창 크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왜소했고 체육 시간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표정은 늘 담담했지만 웃는 일이 거의 없었다. 무엇을 해도 별로 즐거워 보이지도 않았다. 상담을 했을 때는 별다른 말이 없었고 고민도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런 H가 마음에 걸렸다. 다행히 H를 괴롭히는 아이는 없었지만 친구가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 우리 반에 대한 소속감도 크지 않은 것 같았다. 일부러 쾌활한 성격의 짝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H를 지목해 답변하기 쉬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결이 비슷해 보이는 친구에게 H가 너와 비슷한 것 같으니 친하게 지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기도 했다. 어떤 시도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6학년 교과 중 실과는 늘 애매했다. 한 주에 한 시간의 수업을 하게 되어 있는데 공작활동과 체험활동을 하기에 한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2주에 한 번 두 시간씩 묶어 수업을 하다가 2학기에는 아예 한 달에 한 번 ‘실과의 날‘을 정해 하루 종일 실과만 했다. 이론 수업, 공작 활동, 발표, 전시 등을 하루에 전부 할 수 있어 좋았다. 10월에는 반려 동물에 대해 배우는 챕터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의 반려 동물을 교실에 직접 초대해 보기로 했다. 자신의 반려동물을 데리고 오고 싶은 아이들에게 참여 신청을 받았다. 반려동물의 나이와 건강 상태를 고려해 초대할 동물들을 선별했다.


  H가 파충류 덕후이고 반려동물로도 키우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따로 H에게 도마뱀을 데리고 와주길 부탁했다. 참여 신청 기간이 남아 있었지만 내가 부탁하지 않으면 H는 결국 신청하지 않을 것 같았다. 파충류를 키우는 사람은 너밖에 없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너도 도마뱀을 자랑할 수 있으니 좋은 기회 아니겠냐고 설득했다. H는 승낙했다. 도마뱀에 대한 짧은 발표도 부탁했다. 부담 가질 필요 없이 도마뱀의 이름, 나이, 먹이 등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드디어 반려동물을 주제로 한 실과의 날. 강아지 세 마리, 새 한 마리, 도마뱀 한 마리가 교실에 왔다. 1교시에는 내가 반려 동물에 대한 개괄적인 이론 수업을 진행했다. 2교시에는 동물의 주인들이 자신의 동물을 소개할 차례였다. H는 마지막 순서였다. 차례가 되자 H는 도마뱀 케이지를 앞으로 들고 나오더니 내게 USB를 건넸다. 발표용 자료가 들어있다고 했다. 피피티를 화면에 띄우는데 내가 바짝 긴장이 되었다.


 잠깐의 고요가 흐르고 H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청중들이 매우 집중하고 있었으므로 모두가 듣기에 충분했다. H는 피피티를 넘겨가며 도마뱀에 대한 기본 지식을 차근히 설명했다. 나도, 아이들도 거의 처음 들어보는 H의 긴 호흡의 스피치에 놀라 넋을 놓고 설명을 들었다. H는 파충류 덕후답게 도마뱀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정보들을 준비해 왔다. ‘도마뱀은 무엇을 먹을까?’, ‘도마뱀은 어디에서 분양받을 수 있을까?’처럼 하나의 슬라이드에 하나의 문답이 들어가도록 만든 구성도 훌륭했다. 청중의 흥미와 집중력을 모두 고려한 프레젠테이션이었다. 설명이 끝나고  H는 케이지를 열어 도마뱀을 꺼냈다. 아이들이 작게 탄성을 질렀다. 도마뱀은 H의 손에서 팔로, 어깨로 올라갔고 H는 능숙하게 도마뱀을 핸들링했다.


 H는 도마뱀을 어깨에 올려놓은 채 친구들의 질문을 받았다. 몇몇 아이들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H는 질문자를 한 명씩 호명하며 질문 기회를 주었다. 그때 나는 H가 친구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는 것을 처음 들었다. 몇 개의 질문이 이어졌다. 마지막 질문은 “너 왜 이렇게 말을 잘해?”였다. H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스쳤다. H의 발표를 듣고 알게 되었다. H는 내가 굳이 부탁하지 않았어도 교실에 도마뱀을 데리고 왔을 것이다.


 그날 H는 누구보다 빛났다.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그걸 느꼈다고 나는 확신할 수 있다. 그 발표 한 번으로 H가 바뀐 건 아니었다. H는 여전히 수줍었고, 조용했고, 몰래 미소 짓곤 했다. 대신 다른 아이들이 많이 변했다. H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자주 들렸고, 개인적으로 H의 자리로 찾아가 수다를 떠는 아이들이 생겼다.


 가장 많이 변한 건 나였다. H의 소극적인 성격에 대한 내 우려는 ‘표준적 학생’이라는 틀로 감히 재단한 결과물이었다. 밝고, 교우 관계가 넓고, 학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은 물론 바람직하다. 하지만 H가 단지 그런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걱정해 온 것은 기질과 성격의 다양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내 부족함이었다. H는 H대로 늘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응원해주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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