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참깨 Sep 24. 2023

아이들의 문제 행동에는 집안 사정이 모두 들어있다

 아이들은 각자의 집안 사정을 가방에 넣어 들고 교실에 온다. 아침에 만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아이가 어젯밤, 오늘 아침에 집에서 겪은 일들이 그대로 묻어있다. 동생이 많아 집이 항상 복작복작한 아이는 빈 교실의 고요함이 좋아 일찍 등교한다고 했다. 그 아이의 얼굴에는 작은 해방감이 묻어 있다. 비만을 해결하려고 이른 아침마다 매일 아빠와 뒷산을 오른다는 아이의 몸은 벌써부터 지쳐있다. 하지만 얼굴에는 오운완의 뿌듯함이 묻어 있다.


 문제 행동을 할 때 아이들은 집안의 단면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사용하는 언어가 너무 거칠어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는 아이와 방과 후에 상담을 했다. 아이는 제발 자기를 집에 보내달라고, 늦게 가면 엄마에게 혼이 난다고 애원한다.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느라 늦었다고 대신 설명해 주겠다’는 말에는 거의 경기를 일으키며 울음을 터뜨린다. 교실에서 자신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면 엄청 맞을 거라며 제발 빨리 보내달라고 한다. 더 이상 욕은 안 하겠다며,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며 싹싹 용서를 빈다. 내가 어쩔 줄 몰라하며 시간을 끌자 아이는 거의 비명 치듯 말한다. “엄마랑 우리 오빠가 맨날 물건 던지고 쌍욕 하면서 싸운다고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욕을 안 할 수가 있겠어요?”


 수업 시간을 극도로 견디기 어려워하던 한 아이는 자주 책상 아래로 들어가곤 했다. 때로는 청소도구를 보관하는 청소함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는데 그게 내 눈을 피해 공부를 안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아이가 어느 날 공책에 ’엄마가 매일 내 머리를 때리고 밥도 주지 않는다‘는 내용의 짧은 글을 써서 내게 보여줬다. 여차하면 아동학대로 신고할 마음까지 먹고 아이와 상담을 해보니 아이의 과장이 섞여 있는 말이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꿀밤을 맞은 적이 있고, ‘숙제 다 안 할 거면 저녁도 먹지 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주요 과목들은 당연하고 중국어와 코딩까지 따로 배우고 있다는 아이는 제발 공부 좀 안 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스스로 부모가 되어보기 전에는 내심 학부모 탓을 많이 했다. 왜 그렇게 아이에게 무관심한지, 아이의 감정을 살피지 않는지, 아이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가 되어 본 지금, 부모라는 자리의 무거움과 어려움을 겪어 본 지금은 부모 탓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분명 아이가 소중할 텐데, 여전히 사랑할 텐데 어디에서 어떻게 틀어져버린 걸까. 시작보다 회복이 더 어려운 게 관계라는 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모질어진다는 것도 아는 지금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모든 아이들이 화목한 가정이라는 축복을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는 ‘안전 기지(secure base)’가 반드시 필요하다. 가정과 부모라는 안전 기지를 갖지 못한 아이라도 나중에 형성된 관계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가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는 학교와 교사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 내 바람으로만이 아니라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가정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는 상태에서 교사가 그 역할을 외면한다면 교실은 무법지대가 되어버린다. 교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 역할은 무시될 수 없다. 물론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내 경우에도 성공한 적보다 실패한 적이 더 많다.


 첫 번째의 무조건적 만남이었던 부모와의 관계에서의 낙심을 두 번째의 무조건적 만남인 의무 교육에서 위무해 주면 좋겠다. 교사가 아이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기지를 구축하려면 먼저 교사 자신이 학교를 안전하다고 느껴야 한다. 민원이나 고소의 위협이 아닌 자율에 의한 교육적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고, 그건 모두에게 특히 너에게 좋지 않은 일이라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흔들리는 아이, 엇나가려는 아이를 바로잡아주는 것이 교사의 일이라는 데에 동의한다면 교사가 자신의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히 지금 이 시점에서는 큰 도움이 필요하다. 교사가 넉넉하고 따뜻한 기지를 구축하고 아이들을 기다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학부모의 도움이 절실하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부모라면 더 그렇다. 관리자도, 제도도 물론 함께 도와야 한다. 교사를 돕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교사에게 요청하면 될 뿐이다. 부모만으로는 힘에 부치니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된다. 몇 번 되지 않는 내 성공은 이 말들에 힘입었다. ‘왜 우리 아이한테만 그러세요’ 말고, ‘우리 아이를 도와주세요’라는 요청이 성공의 전제였다.

이전 17화 나이스하게 장애 아동 지우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