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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깨 Sep 25. 2023

교사가 되겠다는 제자를 두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진급하거나 졸업을 하며 나를 떠난 아이들은 1년 정도는 더 나를 보러 찾아오곤 했다. 작년이 그립다는 둥, 지금 생활은 어떻다는 둥 조잘조잘 이야기를 늘어놓고 돌아갔다. 아이들의 근황 업데이트는 대개 1년이면 끝이 났다. 그 후에는 아이들을 볼 기회가 거의 없어진다.


 가끔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질 때면 카카오톡 친구 검색창을 열어 ‘어머니’라고 검색을 해본다. ‘ㅇㅇㅇ어머니‘라고 저장된 계정이 주르륵 나온다. 대개 어머니들은 자녀의 사진을 프로필 사진 중에 끼워놓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아이들의 최근 모습을 ’훔쳐‘볼 수 있다.


 염탐꾼처럼 훔쳐보는 사진 속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있기도 하고, 졸업을 하고, 여행을 가고, 연애도 하고, 군대에도 다녀온다. 청소년기와 청년기 사이 어딘가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자라고 있다. 그 시기의 고단함을 미리 겪어 본 사람으로서 아이들에게 조용히 안부를 묻는다. 괜찮니, 그래도 가끔은 평안하니.


 3년 전 봄, 내 첫 번째 제자였던 Y가 이제 대학생이 되었다며 내게 안부 문자를 보냈다. ‘너무 오랜만이라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다’는 첫 문장에 나는 속으로 웃었다. ‘사실 나는 네 사진을 며칠 전에도 몰래 보았어.’ 늘 스스로 잘 해내는 아이라 나중에는 칭찬하기에도 멋쩍어져 버린 아이. 가끔 보내는 눈빛과 미소가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던, 늘 고맙고 한편으론 미안했던 아이다.


 Y가 내게 안부 문자를 보낸 건 자신이 내 모교 후배가 되었음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Y는 내가 졸업한 교대에 입학했다. 합격하자마자 내 생각이 났는데 망설이다가 인상 깊었던 수업을 써오라는 과제를 받은 김에 내게 연락했다고 했다. 아이의 문자는 내게 도착한 상장 같았다. 뒤늦게 날아온 가장 의미 있는 상장. 그 상장의 본문에는 나와 내 수업이 의미 있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교직 생활 동안 표창장 같은 것은 한 번도 못 받아봤지만 받았더라도 이 문자만큼 뿌듯하진 않았을 것이다.


 동시에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당시 나는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중이었고 어쩌면 다시는 교직에 복귀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매일 학교를 열심히 잊어내고 있었다. 완벽한 직업이 어디 있냐고, 다들 그저 견디며 사는 거라고 마음을 추슬렀다가도 이대로 지내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내가 망가져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이 찾아오곤 했다. 만약 Y가 대학에 원서를 내기 전에 내게 상담을 요청했다면 나는 교대에 가고 싶다는 아이의 바람을 진심으로 지지할 수 있었을까.


 결국 나는 내 동료들과 Y를 모두 잊은 채 도망치듯 학교를 떠났다. 나를 학교로부터 구조해 낼 생각을 하느라 어쩌면 학교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었을 많은 시도들을 외면했다. 휴학이나 자퇴를 하지 않았다면 Y는 다가오는 11월에 임용고사를 치르게 된다. 시험까지는 한 달 남짓이 남았다. 내 제자가 내가 도망친 그곳을 향할 채비를 하고 있다.


내가 하지 못했던  그 시도들을 하느라 나의 옛 동료들은 요즘 많이 고통스럽다. 죽음과 추모, 규탄 집회, 공교육 멈춤의 날, 그리고 이어진 또 다른 죽음들. 지난 여름은 교사들에게 뜨겁게 잔인했다. 계절은 이미 식어버렸지만 교사들의 눈시울은 여전히 뜨겁다. 검은 옷을 입고 아스팔트 위에서 눈물로 연대하고 있는 교사들이 부디 제대로 교육할 권리를 되찾아 오길 바란다. 그리고 Y가 교직 생활을 시작하게 될 내년이 ‘학교 회복의 기점‘이었다고 훗날 회상되길 바란다. Y는 나보다 더 오랫동안, 더 많은 제자들에게 상장을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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