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참, 모를 일이다.
이런 주제의 글을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예전의 나는 목표가 분명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다. 목표로 정한 국가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하고,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며, 수영을 마스터하기 위해 시간을 쏟았다. 내게 인생이란 목표가 중심이었고, 계획하고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인생은 모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내 의지와 계획에 달려 있었으니까.
하지만 최근 들어, 나는 인생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걸 경험하게 되었다.
요즘 나의 최고의 관심사는 바로 '글쓰기'다. 머릿속에는 글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경험, 심리 상담을 받은 기억, 브런치 작가 신청 후의 도전, 3년 동안의 글쓰기 모임, 템플스테이에 다녀온 시간, 멘토에게 도움을 받았던 순간들. 글감은 정말 다양하고 넘쳐난다.
그렇지만, 글감이 많다고 해서 글이 쉽게 써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글로 옮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과 감정들을 실제 글로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을 내어 컴퓨터 앞에 앉아보았지만, 마주하는 건 빈 페이지의 공허함뿐이었다. 빈 페이지의 공허함을 채우는 것은 다름 아닌 의구심들 뿐이었다.
'왜 나는 글을 쓰지 못할까?'
'도대체 무엇이 나를 글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오랜 고민 끝에 나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한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목표'하면 흔히 생각하는 ‘언제, 어떤 공모전에 투고할 것인가’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써 놓은 글이 충분히 쓸만하고 가치 있는 글이라면 투고는 언제 하든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목표는, 내가 진정으로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인지, 왜 글을 쓰는지, 그리고 글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었다. 글을 쓸 때, 무엇을 위해 쓰고, 왜 쓰는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글의 방향도 흐릿해질 수밖에 없다. 목표와 방향이 불분명하면, 무엇을 하든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의 목적이 분명해야 했다. 내가 글을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나의 이야기가 그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을지를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글을 쓰는 이유와 목표가 명확해야, 내가 쓴 글이 독자에게 생명력을 가지고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이야기를 통해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심리 상담에서의 경험을 통해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걸까?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쓰기에 도전하면서 느꼈던 감정의 변화가 독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경험한 것을 글로 나열했을 뿐, 독자가 나의 경험을 전달하는 글을 읽고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경험이 독자에게도 중요한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원하는 답을 찾기 위해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나는 글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 걸까?’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왜 나는 글을 쓰는가?' 3년 동안 글이 막힐 때마다 나를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자기 최면을 걸 듯, 나 스스로를 납득시키 듯 글을 썼다. 내가 써 놓은 글들을 되돌아보니,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글이 많았다. 프롤로그란 글의 서두에서 작품의 핵심 주제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소개하는 부분이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한 번만 쓴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에 여러 유형의 프롤로그가 있을 정도였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프롤로그만 100개 이상 썼다.
그 글들이 모여 나의 프롤로그가 되었다. 프롤로그는 시작은 했지만, 끝을 맺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내가 그동안 글을 시작하기만 하고 끝내지 못했던 상태,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프롤로그’였다.
그리고 이것이 '나'였다.
‘프롤로그만 쓰는 여자’.
나의 정체성! 실소가 터져 나왔다.
'프롤로그만 쓰는 여자'라는 표현이 웃겼고,
'프롤로그만 쓰는 여자'인 것이 슬펐으며,
'프롤로그만 쓰는 여자'라는 정체성을 발견해서 기뻤다.
브런치 공모전의 마감은 다가오고, 내게는 공모전에 낼만큼 완성된 글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던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프롤로그였다. 넘쳐나는 프롤로그들 중 몇 개만 골라 공모전에 제출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의 빛이 보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걸. 내가 이렇게 글을 쓰리라고, 프롤로그를 주제로 삼으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프롤로그는 시작은 했으나 끝을 모르는 상태, 즉 미완성을 상징한다. 이는 마치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 있다. 인생도 목표를 세우고 시작하지만, 그 끝은 알 수 없고, 수많은 가능성과 방향성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해 길을 걸을 뿐이다. 인생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처럼, 글쓰기라는 과정 역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인생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고, 그 속에서 나아가고 배우는 과정이 중요하다.
결국, 인생은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이 삶의 진정한 의미를 만들어간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불확실함과 혼란 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한 걸음씩 내디뎌야 한다. 그 속에서 진짜 인생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그러니, 인생 참,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