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밤에 떨어지는 단어들

빛은 어두울수록 존재감을 드러낸다.

by 젼정

초저녁 단잠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나는 또 밤의 한가운데 남았다. 초저녁에 잠들면 평소와 다른, 텅 빈 공간에 떨어지고야 만다. 그럼 나는 그저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한다. 온갖 단어들이 생각 속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머리를 숙이고 흔들면 단어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상상을 해본다. 아니, 생각은 무중력 상태와 가깝다고 느껴지니 머리를 숙일 필요는 없으려나.

생각한 것을 손쉽게 꺼낼 수 있다면 정리가 쉬울까. 맴도는 생각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일은 몹시 어렵다. 늘 곁에 있지만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가까이 있을 땐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알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을 땐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인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을 알고자 한다. 남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도 해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 무중력 상태의 생각이 깊어지면 이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럼 그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애쓴다.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생각을 쓴다. 그렇게 하고 나서는 가벼워졌다고 착각도 한다. 착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고 싶은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둔다. 쓰기 위해, 계속 쓰는 것을 허용한다.


빛은 어두울수록 존재감을 드러낸다. 밤에 오글거리는 문장이 잘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밤의 한가운데서 하는 생각은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자신의 모양을 드러낸다. 밤의 한가운데서 끄집어낸 생각들이 여전히 내 주변을 맴돈다. 밤에 떨어지는 단어들을 나는 주워 담는다. 모호한 말들을 선명하게 받아 적는다.


우리의 생각은 하나의 행성이다. 행성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 그러니 그것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어려운 일이다. 행성은 중심 별의 빛을 받아 반사한다고 한다.* 글도 그렇다. 글은 생각의 단어를 받아 완성된다.

평소와 다른 시간에 닿아 있는 지금 이 시간, 나는 어둠 속에서 나를 들여다본다. 그 누구도 시키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여기에 있다. 스스로 빛날 수 없어 단어를 받아 적는 내가 여기에 있다. 촘촘하게 적힌 단어들이 별처럼 나를 밝힌다. 밤공기는 아직 차다. 생각에 매달린 단어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렇다 해도 괜찮다. 나는 밤의 한가운데서 계속 별을 찾고 있으니, 결국 빛나는 순간을 보게 될 것이다.



* 행성 : 네이버 국어사전 참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