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세계
나는 반듯하게 앉아 책을 펴고, 온갖 단어를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읽지 않는 동안 머릿속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온갖 상념과 잡념을 손으로 쓸어 쓰레기통에 버린다. 결국 또다시 쓰레기통을 뒤져 그것을 끄집어내겠지만 일단은 버린다.
죽어서도 살아있는 작가의 글들은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의 문장은 어디라도 갈 수 있고,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무한한 존재처럼 군다. 문장은 언제나 시공간을 초월한다. 문장은 고쳐지지 않고도 어느 날이면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세수라도 하고 나타나는 건가. 새로운 화장법이라도 습득한 건가. 나는 책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쓰지만 잘 되지 않을 때도 많다.
때로는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소설을 쓰는 작가의 방으로 들어간다. 의도하지 않아도 그런 순간이 그려질 때가 있다. 시골 마을 낡은 주택 2층, 작은 방 나무책상 앞에 삐딱하게 앉아 자신이 쓰는 소설의 결말을 생각하는 작가의 주름진 이마를 상상해본다. 창문 밖은 그저 어둡고, 세상은 고요할 것이다. 고요함이 열어준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불안함을 애써 외면하며, 손에 든 펜을 더욱더 세게 움켜쥘 것이다. 한두 줄 겨우 쓴 문장은 몇 시간 뒤면 쓸모없는 것이 될 것이다. 선명하게 그어진 직선 아래 숨은 문장은 다시 바깥으로 튀어나오려 하겠지만 결국 작가는 섬세한 감정을 담아 새롭게 쓸 것이다. 수많은 밤과 고요함과 불안을 지나 완성된 문장은 약속된 것처럼 정확한 시간에 그들을 찾아 마음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우리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독서의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