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름의 불투명함을 사랑한다. 더위에 가려진 어떤 얼굴 표정, 지친 기색으로 숨을 돌리며 내뱉는 어떤 말들. 정확하지 않은 어떤 기분. 조금인 줄 알았는데 나는 그것들을 많이 사랑한다. 견디고 버티고 그러다 사랑하게 되는 그런 나날들. 첫눈에 반해버린 게 아니라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들처럼 자연스럽게. 나는 여름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세를 사랑한다. 결국엔 손을 흔들며 헤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열렬해지는 그런 여름의 얼굴을. 어느 해 먹었던 여름의 복숭아와 앵두는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자다 깨 혼자 새벽을 몇 시간 보낸 아이의 여름밤 무서운 꿈은 모르지만 그건 안다. 무서운 꿈을 꾸고 깨어났을 때 엄마의 곁에 누워 다시 잠드는 순간, 그 불투명한 시간의 결을. 선명하지 않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수많은 불투명한 순간들을 나는 사랑한다. 어쩌면 그저 여름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더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나의 팔에 이마를 대고 잠이 들었다. 그 잠 안에서 무슨 벌어지고 있을까.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커튼이 바람에 날린다. 아직도 여름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