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사랑
첫사랑은 편지로부터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을 뿐 그 뒤로는 생각해본 적 없는 정택은 조용하고 공부를 잘했다는 것 말고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그랬던 정택이 내 인생에 다시 등장한 것은 감정 과잉이 한창 심하던 중학교 2학년 여름이었다. 나는 한동안 이마를 찡그리며 생각한 끝에서야 정택이 또래 남자아이들에게서 볼 수 없던 사려 깊은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너희 둘이 같은 반이었던 적 있다며? 정택이 말이야.”
어느 날 정택의 형은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난 뒤 말했다. 큰 오빠의 오랜 친구였던 정택의 형은 가족과 떨어져 대구에서 자취를 하며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가끔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곤 했다.
“그랬죠. 정택이는 잘 있어요? 대구로 이사 온 이후로는 통 못 봤네.”
“가끔 네 얘기 하더라. 둘이 편지라도 주고받지 그래.”
“편지요? 할 말도 없는데.....”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편지는 몇 달 동안 줄기차게 이어졌다. 나는 정택과의 편지왕래를 통해 타인과 관계 맺는 새로운 방식을 알게 되었고, 그의 내면은 어떤 풍경인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알아가는 일에 점점 몰두하게 되었다. 글로 표현된 세계는 말보다 더 내밀하고 풍성하게 느껴졌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의 글로 인해 순수하고 진실한 세계에 속해 있다는 믿음과 그것이 주는 밀도에 압도당했다. 마치 서로의 영혼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이다.
정택은 가로줄이 그어진 편지지에 멋진 글씨체로 편지를 썼다. 특히 세로획은 왼쪽으로 살짝 굽어지며 바람에 쓰러지는 풀잎 같았다.
‘나는 가끔 네 생각을 했어. 우리가 같은 반이었을 때 내가 너를 좋아했다는 건 모를 거야.’
나는 정택의 편지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었다. 3학년 때 정택이 내게 보였던 특별한 행동이 뭐가 있었나 떠올리려 애썼지만, 기억나는 게 없었다. 하지만 뒤늦은 고백은 내 가슴을 뛰게 했고 정택이 내내 나를 좋아해왔다는 생각만으로 행복해졌다. 서로에 대한 환상 속에서 우리의 사랑은 커져가고 나는 대문 앞에 떨어져 있을 정택의 편지를 손꼽아 기다리며 그 시절을 보냈다.
정택에게 편지를 보내면 보통 사흘 만에 소읍에 도착했다. 나는 그가 어떤 마음으로 내 편지를 읽을지 너무도 궁금했지만 또한 부끄러웠다. 정택은 글을 잘 썼고 그에 반해 내 글은 유치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정택의 편지를 보며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노력하기 시작했다. 시집을 읽고 소설을 읽으며 좋은 구절을 은근슬쩍 편지에 집어넣었다.
‘계절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며 급격하게 변해 버렸어.’
정택이 줄곧 가로줄이 그어진 편지지에 편지를 써서 보내오는 동안 나는 팬시 문구점에서 고른 핑크색 편지지에 답장을 썼다. 그 빛깔은 내 마음의 홍조를 대신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요즘 클래식 기타를 독학하고 있어. 이번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서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어. 물론 언젠가는 네게도 들려줄 수 있겠지. 그러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
우리는 소소한 일상에 더해 친구나 가족, 혹은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썼다. 그렇게 편지를 쓰다 보면 내가 세상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지금도 ‘나의 첫사랑은 정택이었어.’라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 우리는 감히 ‘사랑’이라는 말은 적지 못했고 그게 적당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생경하게 가슴이 설레고, 영혼을 고양시키고, 잠들기 전에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와 넘치고. 이 모든 것을 지칭하는 말은 결국 ‘첫사랑’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해 가을, 드디어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형을 만나러 정택이 대구에 온다니 그때 다 같이 달성 공원에 놀러 가자고 했다. 편지에서 몇 번 만나고 싶다고 서로 말하긴 했지만 내게는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 아이를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얼굴은 제대로 쳐다볼 수나 있을지 모든 게 막막하게 여겨졌다.
화창하고 맑은 가을 날이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거의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택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앞머리를 잘랐는데 너무 짧은 나머지 거의 1950년대 피난민 아이처럼 돼 버렸다. 다 취소해버리고 싶었지만, 큰 오빠는 약속시간에 늦겠다며 서두르라고 했다. 그렇게 큰 오빠와 정택의 형, 그리고 나와 정택이 달성 공원에서 만났다.
나는 연신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어머 정말 오랜만이다.”라며 정택이 대신 먼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심하게 뛰는 심장 소리는 오직 내게만 들리기를 바라며.
초등학교 이후 처음 만난 정택은 딱 봐도 범생이라고 얼굴에 쓰여있었다. 안경을 쓰고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키도 컸다. 이대로만 큰다면 교회 오빠 스타일이 될 게 뻔해 보였다. 두 시간 뒤에 공원 입구에서 다시 만나자며 큰 오빠와 정택의 형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햇살은 눈부시고, 바람은 상쾌하고, 단풍나무숲의 붉은빛은 사방으로 퍼졌다. 이토록 완벽한 날이 또 있을까.
우리는 사자 우리에 기대서서 지루하게 어슬렁거리는 사자 두 마리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나 친구에 대해서, 혹은 우리가 같은 반이었던 어린 시절에 대해서. 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일을 정택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일 있었잖아. 어떤 아이가 샤프 팬을 잊어버렸어. 선생님이 모두 눈을 감으라고 한 뒤, 용서할 테니 친구의 물건을 가져간 아이는 손을 들라고. 아무도 손을 안 들었어. 그래서 선생님이 양동이에 노란색 물을 갖고 오셨잖아. 한 사람씩 나와서 여기 손을 넣으라고. 친구의 물건을 가져간 애는 손이 검은색으로 변할 거라고.”
“웃긴다. 난 왜 기억이 안 나지. 그래서 어떻게 됐어? 진짜 검은색으로 손이 변한 건 아니겠지?”
“한 사람씩 앞으로 나가 노란색 물에 손을 집어넣었어. 결국, 한 아이가 그 앞에서 머뭇거리다 울음을 터트렸지.”
기린을 구경한 뒤, 날개를 활짝 펼치는 공작새의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서둘러 걸어갔다. 그때 서로의 팔이 살짝 스쳤다. 놀라운 느낌이 온몸을 들썩이게 했다. 부끄러우면서 기대하는 무언가가 내 마음을 휘저었다. 우리는 모른 척 걸어갔지만, 정택도 한동안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의 정택은 내 손을 잡을 만큼의 용기는 없는 아이였다. 훗날 대학생이 되었을 때 정택을 한 번 더 만났지만, 그때도 우리는 손조차 잡지 않았다. 첫사랑은 오직 정신적이어야만 할 것처럼 우리는 서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헤어지기 전,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나는 촌스러워 보이는 짧은 머리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지만 그날은 기억하고 싶었다. 정택과 나란히 서서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짓는 동안 또 한 번 우리의 팔이 맞닿았다.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 우리는 서로의 팔에서 느껴지는 여린 온기를 나누었다. 나는 너를 무척 좋아해.
정택이 소읍으로 돌아간 뒤 우리의 편지는 더 깊은 애정을 담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 애정은 소박하고 순수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상상력을 한껏 돋우는 표현들은 연두색 물기를 품은 식물 줄기처럼 내 마음속에서 자랐고 또한 나를 키워주었다. 행복해지기 위해 잠시 고개를 돌려 그 아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뭔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는 내게 편지 한 통을 건네주었다. 정택의 이름이 적힌 편지봉투를 받아든 나는 뜨끔 놀라 얼른 책상 서랍에 편지를 넣었다. 보통은 대문 한쪽에 신문이나 다른 우편물과 함께 놓여있던 정택의 편지를 아버지가 우연히 보셨던 거다. 이정택. 누가 봐도 남자 이름이지 않나. 그런 사정은 단지 내게만 일어난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중학교 3학년 봄, 정택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것이 네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지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