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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re Oct 24. 2021

6-3. 죽기 위한 시간들

어릴 때부터 말수도 없었고, 내 얘기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알아서였는지 엄마는 그 뒤에 더 이상 나에게 뭔가를 물어보거나 궁금해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언제 또 어떤 생각을 할지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어 걱정스러웠는지 큰언니에게 내 방에서 칼을 봤던 일을 얘기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와 대화를 한번 해보라고 부탁했고, 결혼해서 가까이에 살고 있던 언니가 나를 불렀다.

언니가 연락을 했을 때 이미 엄마와의 대화가 있었고 그래서 언니가 알고 있을 거라 생각은 했다. 역시나 처음 시작은 ‘요즘 힘든 일 있냐’는 질문이었지만 곧이어 왜 그런 선택을 하려고 했는지 물었다.

부모님과 언니들이 있는데 그 정도로 힘든 일이 있을 때 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힘들어하고 결국엔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냐고 물었다.

언니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러게.. 나는 왜 아빠와 엄마, 그리고 언니도 둘이나 있고 동생도 있는데 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힘들어하고 있었을까. ‘

하지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쉬웠다.

내 기억의 그날 이후부터 약 6년 정도의 시간 동안 우리 가족 중에 누구 하나 편한 사람이 없었다.

다들 외적으로 심적으로 모두 아프고 힘든 시간을 지내왔다. 누가 덜하고 누가 더 했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아픈 사람도, 그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모두 힘든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나 역시 나에게 일어난 일임에도 잠시 기억을 잃었던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왔다.

그런데 우리 가족에게 그런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이제 좀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또 내 문제를 꺼내 혼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일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게 가족 일지라도.

그렇게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고,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고 더 이상은 피할 수 없었다.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가만히 바라보는 언니에게 그간의 일을 털어놨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이 이어져 죽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내 마음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인지 삶에 대한 의지는 모두 사라진채 무기력함만 남아 있는 기분이었고, 그렇게 아무런 감정도 의지도 없는 상태로 그동안 내가 겪었던 일들에 대해 설명을 했다.

언니는 적잖이 놀란 듯했다.

다음날 언니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나를 붙잡고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내뱉으며 눈물을 흘렸고, 언니는 그 뒤로도 며칠 동안 나를 불러 대화를 하고 내 감정 상태를 살폈다. 그러던 중 나는 다시 한번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엄마가 그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그날 밤 나를 끌어안아주고 내 잘못이 아니니 괜찮다며 위로해줬는데, 엄마는 그날의 기억이 없다고 했다.

나는 엄마의 그 한마디 때문에, 그 말만 믿고 별거 아닌 일이라 생각하고 지내 왔었다. 엄마의 말 한마디에 최면을 걸듯이 끊임없이 ‘괜찮다, 별거 아니다.’라고 생각했고 결국에는 그날의 일은 별거 아닌 것을 넘어서 아무 일 없었던 일처럼 생각하고 지내다가 나 스스로 기억을 닫아 버리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엄마가 그날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엄마가 그때 언니 때문에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날도 잠시 집에 들르러 왔다가 울고 있는 나를 보고 그냥 달래 주려고 한 거니까. 그럴 수 있지. 그 당시의 엄마 상태라면 정말 별거 아닌 거라고 생각하며 지났을 수도 있지. 너무 힘들고 정신이 없었으니까.’

끊임없이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밖에 없었지.’를 반복하며 이해한다고 되뇌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가슴은 더 답답해지고 심장이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뒤늦게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혼자 힘들어하고 결국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까지의 그 감정들이 다시 한번 몰아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도 숨기기 위해 애쓰던 일인데 결국엔 꾹꾹 눌러 담았던 것들이 밖으로 터져 나와 버렸고, 새로운 사실에 다시 한번 또 상처를 받고 다시 또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처음 누군가에게 털어낸 것이 한편으로는 후련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가슴속에 뭉쳐진 응어리는 그대로인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내 삶을 놔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언니와 엄마가 알고 있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생긴 것 같아 뭔가 섣부르게 행동을 하기도 어려울 것만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 같아 가슴은 더 답답하고 머릿속은 더 어지러워지고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런 혼란을 겪는 와중에도 여전히 회사는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업무에 집중하는 건 당연히 힘든 일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제 더 이상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뭘 위해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겠고 모든 것이 의미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이렇게 계속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건지, 할 수 있기는 한 건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무기력감은 나를 짓누르듯이 감싸고 있었고, 그럴수록 나는 더 태연한 척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는 마음으로 살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태로 더 이상의 직장 생활은 어려울 것 같았다.

1년 반 만에 퇴사를 결심하고, 나는 다시 한번 도망칠 준비를 했다.

벗어나고 싶었다.

1년간의 외국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호기롭게 잘 살아내리라 마음먹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오히려 또 다른 상처와 현실에 직면해 절망감마저 느끼고 나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나를 걱정하며 지켜보는 엄마와 언니가 있기에 쉽사리 감정에 휩쓸린 행동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조금은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어차피 다 내려놓을 거라면 하고 싶은 일이나 해보자는 생각에 다시 한번 떠나기로 했다.

그래서 결정한 건 두 달간의 유럽 여행이었다.




처음 여행을 결정하고 주변에 알렸을 때 대부분의 반응은 비슷했다.


‘혼자? 두 달? 너무 위험한 거 아냐?’

‘유럽은 강도도 많고 소매치기도 많데. 납치당하기도 한다는데..’ 등등..


그중에서도 친한 선배는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외쳤다.


‘너 혼자 유럽 가면 죽어..!!’


너무 진지하게 나를 혼내는 표정으로 그런 말을 내뱉는 선배를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더 좋고…’


어차피 여행이 끝난 뒤의 내 삶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당장 떠나야 했고,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지인들의 걱정처럼 만약 여행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죽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던 나였다.

주변 지인들은 걱정하는데, 정작 당사자인 나는 태연하고 덤덤한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했다.

하지만, 죽어도 상관없다던 나는 그래도 혼자 하는 긴 여행이 내심 긴장되고 걱정되기는 했다. 나도 모르게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정보를 찾아가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죽고 싶다는 마음에 현실 도피를 위해 결정한 여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유럽 배낭여행을 한다는 것에 약간의 기대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과 여행에 대한 기대가 섞인 상태로 다시 한번 현실을 피해 도망쳤다.

영국에서 시작해 독일까지, 유럽 전역을 한 바퀴 돌면서 11개국을 여행하는 일정으로 두 달간의 여행 일정이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많았지만 처음 시작은 그래도 무난한 편이었다. 런던을 시작으로 파리까지 거쳐가는 동안, TV나 책에서만 보던 명소와 유명 예술 작품 등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마냥 신기해하며 어느 순간부터는 여행을 즐기기도 했었다.

그러다 여행을 시작한 지 2주 정도가 지날 무렵 위기가 찾아왔다.  

그 유명한 야간열차의 강도를 만난 것이다. 프랑스-니스에서 출발해 스페인-바르셀로나로 가는 18시간짜리 야간열차에서 카메라와 지갑을 도둑맞았다.

6인이 사용하는 침대칸에 들어갔는데 같은 방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어오면 문단속을 하고 자야 겠다고 하다가 그냥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침대에 가방이며 소지품을 늘어뜨린 채로 잠이 드는 바람에, 카메라와 지갑을 가져가 버렸다.

새벽녘에 같은 방에 있던 사람이 물건을 뒤지고 있던 남자를 발견하고 같은 방 사람들을 깨웠고, 그 소리에 바로 일어나 짐을 확인했지만 이미 물건은 사라지고 같은 방에 있던 사람이 잠결에 봤다는 남자도 사라진 뒤였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건 지갑에 들어있던 현금은 여행 경비 중 아주 일부였고, 전체 경비와 비상용 신용카드는 캐리어 깊숙한 곳에 넣어두어 무사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주 운이 좋게도 도둑맞기 이틀 전에 카메라에 있던 사진들을 모두 백업해 두었기 때문에 이틀 동안 찍었던 약 스무 장 남짓의 사진만 잃어버렸다. 그나마도 야간열차의 출발지였던 니스에서의 사진만 없어진 것인데, 겨울에 들렀던 휴양지는 황량한 바다뿐이라 찍어둔 사진이 많지 않았다.

카메라와 지갑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된 직후에는 정신이 없고 덜컥 겁이 났다. 여행책에 적힌 주의사항일 뿐이고 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직접 겪고 나니 여기저기서 주워 들었던 우려 섞인 이야기들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잠시 패닉에 빠질 정도로 놀라움과 두려움에 빠져 한 이틀간은 멍한 상태로 돌아다녔던 것 같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니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그나마 물건만 잃어버리고 신변에 이상이 없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언니의 지원 덕분에 카메라도 새로 장만해서 여행의 추억을 계속 남길 수 있게 되었고, 내가 정신만 잘  차리면 나머지 여행을 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는 생각에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그러다 문득, '아차!' 싶은 생각이 들며 헛웃음이 나왔다.


'죽어도 상관없다며..?'


그랬다. 무슨 일이 생겨도 상관없고,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다.

아니, 오히려 죽기 위해서 시작한 여행이자 도피를 위한 여행이었다. 

그런데 신변의 이상도 아니고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도 아닌, 그저 돈 몇 푼과 카메라 하나 잃어버린 상황에서 그렇게 겁을 먹고 두려워하며 며칠 동안 방황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 뒤에도 몇 번의 위기 상황이 있었고 심지어 내 가방에 손이 들어갔다 나오는 소매치기와 바로 눈앞에서 마주한 적이 있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두려움과 긴장감에 떨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대처하고 조심스러워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죽겠다며 칼을 집어 들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어느 날 밤처럼, 죽어도 좋고 오히려 그런 상황이 되면 고마울 거라는 생각까지 하고 떠나온 여행 이면서도 위기의 순간에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몸을 사리는 내 모습을 보면서 한심함을 넘어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런 나 자신이 멍청해 보이면서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했던 걸까?

죽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죽고 싶을 만큼 살고 싶었던 걸까?

간절히 죽고 싶은 건지, 간절히 살고 싶은 건지 이제는 스스로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여행이 끝나갈 무렵에는 '죽을 수 없다면 살아야 하고, 살아야 한다면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마음과 결심이 오래 지속되지 못할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현실을 피해 떠나본 경험이 있었고, 그렇게 한순간 도망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어차피 더 이상은 물러날 곳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 되어 버렸기에 그걸 안고 어떻게 잘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발전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죽고 싶었지만 죽음을 두려워했고, 살고 싶었지만 살기 싫었던 감정들을 조금씩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와 기억을 어떻게 해야 조금씩 지우고 치유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두 번째가 된 현실도피성 여행을 마치고는 처음 도피 후 돌아올 때와는 다르게 막연한 기대는 접어두고, 조금 더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민하며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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