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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re Oct 18. 2021

6-2. 죽기 위한 시간들

호주에서 돌아온 뒤에는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여행사에서 근무를 했었다.

전공이었던 인테리어 디자인은 현장 근무가 많다 보니 천식 증상이 남아 있던 나에겐 적합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졸업 후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가 한 달 만에 그만두게 되었고, 호주에 가기 전에는 일반 사무보조를 하며 일을 했었다.

그래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새로운 일을 찾아야 했다. 한 번의 경험이었지만 여행하는 것이 좋았고 짧지 않았던 해외 생활 경험 덕분에 여행사 근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의 내 상황과 상태에서는 적절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내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여행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과정은 수시로 상황을 체크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주 섬세하고 정확하게 일을 진행해야 했다.

고객들과 상담을 하고 예약 사항을 진행하며 실수 없이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내 감정까지 컨트롤하며 업무에 집중 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누군가를 죽일까 내가 죽어 버릴까를 고민하면서도 고객의 전화를 받고 항공편을 예약하고 호텔을 예약하고 서류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은 한편으로는 쓸데없는 생각을 지속하지 못하게 하는 수단이 되어 주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관광업 관련 전공자도 아닌 내가 기초부터 업무를 배워가며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업무에 집중하는 것조차 버거운 나의 감정과 정신 상태는 간간히 실수를 불러오기도 했었다.

일을 하다 보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스스로 나 자신의 상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모든 실수가 다 나 자신의 문제 때문인 것 같았고 언젠가부터는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격해진 감정을 느끼며 화가 날 정도였다.

어린 시절에도 내 기억을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해 뒤늦게 떠오른 기억 때문에 이렇게 된 것만 같았는데, 지금도 여전히 요동치는 감정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건지 내가 죽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고, 누군가에게 화가 나는 것인지 나 자신에게 화가 나는지도 모를 정도로 감정이 격하게 치닫고 있었다.


그냥 모든 것이 다 싫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었고, 다 끝내고 싶었다.

가족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라고 해야 할지 용기 없는 자의 핑계일 뿐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그 사람을 해할 수 없다면 그냥 내가 사라져 버려야 했다.

아무런 감정도 느끼고 싶지 않았고 느낄 수 없었다.

기쁨이나 슬픔, 희망, 절망, 고통.

그 모든 것들이 다 필요 없고 부질없다는 것을 느끼고 결심했던 날 밤 부엌에서 칼을 꺼내왔다.

어두운 방안에서도 칼 끝이 날카롭게 반짝였다.

손목을 그어 내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칼자루를 쥐어 들었지만 선뜻 그어내지 못했다. 삶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미련인지 두려움인지 공포인지 모를 감정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죽는 것조차 못하는 병신 같은 년’이라며, 나 자신에게 욕을 내뱉고는 다시 한번 칼을 집어 들었다.

칼날을 손목에 가져다 대는 순간 칼 끝의 날카로운 그 느낌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대로 한 번만 힘을 주면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칼자루를 쥐어 든 손에 더 힘을 주었다.

조금만 미끄러지듯 움직인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손에 힘이 들어갈수록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그어내야 죽을 수 있을까?’

‘얼마만큼의 피를 흘려야 죽을 수 있을까?’

‘피를 흘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죽음 직전에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되는 걸까?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뭐가 두려웠을까. 그토록 죽고 싶다고 했으면서.

여러 생각들이 폭풍처럼 몰아치던 그 순간 칼자루가 흔들릴 정도로 힘을 주었던 손에 힘이 풀리며 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심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싫었다.

떨어진 칼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멍하니 쳐다보다가 이내 정신이 들었다.

결심했을 때 해야 한다는 생각에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한번 칼을 집어 들고 손목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생각하며 다짐했던 건 ‘절대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괜히 몸에 상처만 내고 끝내고 싶지 않았다. 몸에 상처까지 남긴 채로 지금의 내 상황들을 다른 누군가에게 알리게 되는 일은 정말이지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확실하게 한 번에 성공해야 했다.

처음보다 더 힘이 들어간 손은 다시 한번 떨렸고 손목은 조금씩 깊게 파이기 시작했다. 그대로 조금만 아래로 움직이면 끝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인지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손 끝에 힘이 들어 갈수록 하염없이 눈물이 더 쏟아져 나왔다. 칼을 쥐었던 손은 다시 한번 힘이 풀리며 칼을 떨구었고, 그대로 이불 위에 쓰러지듯 엎드려 울기만 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시간이 흘렀고 어느새 밖으로는 동이 터오고 있었다.

그대로 해가 뜨고 아침이 밝아오면 나는 출근을 해야 했다. 이상태로 출근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바닥에 있던 칼을 다시 한번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엄마가 내방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베개 밑으로 칼을 집어넣고는 그대로 누워 잠을 자는 척했다.

엄마는 방에 들어와 일어날 시간이 다 됐다며 날 깨웠고, 나는 이제 막 일어나는 듯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잠자리에서 뒤척이는 듯이 꾸물 거리며 일어났다.

일단은 씻고 출근 준비를 했다.

밤새 잠도 못 잔 상태로 울기까지 하고 나니 머리가 멍하고 눈앞에 흐릿한 느낌마저 들었다. 씻어도 멍한 상태는 계속됐다. 그렇게 정신이 반은 나간 상태로 출근을 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면 그 상태로 출근을 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당시에 나는 철저하게 아무 일 없는 듯이 지내기 위해 애를 썼다. 급하게 병가를 내거나 연차를 내고 쉰다고 해도 아무도 날 의심하거나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 나 혼자 내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 쓰여 최대한 아무 일 없는 듯 노력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은 뒤엉켜 습관적인 행동을 하는 것 말고는 제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했다.

습관처럼 씻고 출근을 했지만, 베개 밑에 넣어 둔 칼을 엄마가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체 집을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출근한 상태에서 회사 업무를 제대로 할리 없었다. 멍한 상태로 겨우 업무를 보고 있는데 퇴근시간 무렵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 앞으로 오겠다는 전화였다.

무슨 이유로 갑자기 찾아오겠다는 건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무작정 찾아오겠다는 엄마와, 왜 오는 거냐는 물음도 없이 알겠다고 대답하는 통화에서 어색하고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퇴근 후 회사 앞에서 만난 엄마는 역시나 아무 말 없이 앞장서서 걷기만 했다. 나 역시 그 어떤 말도 없이 엄마를 따라 걸었다.

앞장서서 걷던 엄마가 날 데려간 곳은 기 치료를 하는 곳이었다.

중학교 때 천식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한약을 복용하면서 몸의 순환을 돕고자 기 치료를 병행한 적이 있었다. 쉽게 말하면 마사지와 비슷한 방법이었고, 몸의 혈과 기를 따라 자극을 해주는 방법으로 한방 치료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이 운영하는 사무실이었는데, 엄마 역시 허리 디스크 때문에 치료를 받았던 곳이었고 나중에는 엄마도 강의를 수강하면서 제자로서 왕래를 하던 곳이기도 했다.

아무 말 없이 나를 그곳에 데려가더니 교수님에게 요즘 몸이 부쩍 안 좋은 것 같아 치료를 받으러 왔다는 말만 하고는 나에게 들어가 치료를 받고 나오라고 했다.

엄마와 교수님이 이미 통화를 한 것 같았지만, 엄마도 나도 그 교수님도 서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인사만 건네고는 예전처럼 치료실에 들어가 누웠고 교수님 역시 별말 없이 치료를 해주셨다.

그저 치료를 하시다가 나지막이 ‘잡생각 너무 많이 하지 마라.’라는 말 한마디만 건넬 뿐이었다.

한 시간 가량 치료를 받고 나오자 엄마는 교수님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나에게 배가 고프냐고 물었다. 별생각 없다고 하니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오는 동안에도 서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할 말이 많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엄마는 내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내 방에 들어서자 추측이 확신이 되었다. 아침에 정리도 못하고 나섰던 이부자리는 정리가 되어 있었고, 베개 밑에 넣었던 칼도 치워져 있었다.

급하게 베개 밑으로 칼을 밀어 넣을 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시간에 쫓겨 출근을 하면서도 별 생각이 없다가 집에 나선 뒤에야 베개 밑에 넣어둔 생각이 났다. 하지만 이미 집을 나선 뒤였고 엄마가 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멍한 정신 상태로는 그 뒤의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정리된 방안을 보고 있자니 아침에 한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앉아 있는데 엄마가 들어왔다.

손에는 과일이 담긴 접시가 들려 있었다. 이거라도 먹고 씻으라며 건네주고는 내 앞에 앉았다.

엄마를 마주 하기가 힘들었다. 엄마에게 어디까지 얘기를 해야 할지, 얘기를 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는 마음이었는데 엄마는 무슨 말이라도 들어야겠다는 작정을 한 것처럼 내 앞에 앉아서 나를 바라봤다.

아무 말 없이 엄마의 시선을 피하는 나를 한참 바라보던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침에 이불에 있던 거 봤어. 무슨 일이야? 엄마가 생각하는 게 맞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것부터 말을 해야 할지, 말을 해도 되는 건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며 앉아 있으니, 엄마도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줬다. 한참을 엄마품에 안겨 눈물만 흘렸고, 오늘 밤에 같이 자야 하는 거냐고 묻는 엄마에게 걱정할 일 없을 거라고 했다.

엄마에게 거짓말을 한적은 없었고 거짓말하는 걸 싫어하는 나를 알아서 그랬는지 엄마는 선뜻 내키지는 않지만 믿어 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다시 한번 안아주고 방을 나섰다.

그날, 엄마에게 그 어떤 말을 하지도 못하고 울기만 했지만 내가 그런 행동을 한 이유와 힘들어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는 짐작하리라고 생각했다.

12살의 그날에 엄마 품에 안겨 울고 위로를 받았던 그 기억이 엄마에게도 남아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굳이 그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힘들어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 이유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그랬듯 엄마 역시 너무 오랜 시간 충격적이고 힘든 시간들을 지나와 서였을까?

엄마도 그날의 그 기억은 지워진 채로 시간이 지나 버렸고, 그 사실은 후에 나에게 다시 한번 상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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