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를 돌아보면 마치 어둠이 짙게 깔린 도로를 내달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달리고 달려도 빛 한줄기조차 찾을 수 없는 길을, 그마저도 눈을 감고 그냥 달려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스무 살에 갑자기 찾아온 12살의 기억.
문득 기억이 찾아온 그날로부터 기억을 잃었던 지난 8년의 시간은 없어지고, 기억을 떠올린 그날부터 12살의 아이가 자라나기 시작한 기분이었다. 그것도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로 버려졌던 어린아이가 이제 막 고개를 들고 그 상처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듯한 느낌이었다.
오랜 시간 방치되었던 상처는 생각보다 아팠고, 생각보다 깊게 곪아 있었다. 고름을 짜내고 그 자리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한 과정 역시 너무 힘들고 너무 아픈 과정이었다. 그 통증과 고통을 참아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삶을 포기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은 수시로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결국엔 마음 한구석 끝자락에 자리 잡은 희망인지 미련인지 모를 감정 하나를 붙잡고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었다. 살아 내는 것은 물론이고, 어차피 살 거라면 잘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에 스스로 그 상처를 도려내고 치료를 하기도 했다.
그 과정의 끝이 언제일지, 끝이 있기나 한 건지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 때가 더 많았지만 어쨌든 살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12살에 멈춰있던 아이를 드러내고 서서히 상처를 치유하며 자라나기 시작하고 보니, 어느 순간 남들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
상처에 아파 발버둥을 치면서도 남들에게는 아무 일 없는 듯 지내려고 사회생활은 계속해서 하고 있었지만, 늘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남들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나는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 있었고, 남들이 사회생활에 적응하며 미래를 꿈꿀 때 나는 심리 상담소와 정신과 병원을 드나들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덧 20대가 지나가고 30대가 되고 나서야 조금씩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힘들어했고 치료를 받으며 방황하던 시간 동안 가끔은 정신없이, 가끔은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20대의 시간은 사라져 있고 서른의 문턱에 서 있는 내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과 함께 ‘미래’라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뭔가를 한다고 해서 나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적 없었고, 다른 이들의 삶을 부러워하며 살았던 적도 없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소위 ‘나이에 맞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현재의 내 모습을 자꾸 비교할 수밖에 없게 됐다.
다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서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다가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마치 정해진 정답인 것 마냥 다들 똑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 나는 늘 특별한 사람, 이상한 사람이 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다.
이제 겨우 12살에서 조금 더 성장한 느낌인데, 이제 겨우 나 자신을 돌아보며 보듬어 주기 시작했는데 이런 상황에서의 연애와 결혼은 자신 없고 의미 없는 일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호감이 생겨 연애라는 것을 시작해도 방어적이고 예민한 내 성격 때문에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어려웠다.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남들처럼 쉽지 않았고 그러자 점점 더 결혼은 물론이고, 이성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항상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단순히 ‘남자’라는 존재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 자신을 점점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자, 더욱더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가진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오랜 시간 많은 노력을 했고, 그 노력만큼 눈에 보일 정도로 좋아진 부분도 분명 있었다. 그렇지만 몸과 마음 모두 여전히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더군다나 나는 아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조카들이 태어났을 때는 마치 내 아이를 보는 것처럼 기뻐했고 그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움이 되기도 했었다.
그런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이기에 더더욱 결혼과 출산에 대해 하고 싶지 않았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몸만 성장했을 뿐, 마음과 정신은 아직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고 심지어 심리상태는 불안정한 내가 아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보다 무책임한 행동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나이 40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리고 그 생각에 대한 변함이나 후회는 없다.
다만, 그동안 방어적인 태도만 유지했던 이성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작은 어려움에도 늘 죽음을 생각해 버렸던 습관적인 내 감정에 대해서 조금씩 생각을 바꾸고 마음의 벽을 내려놓으려 노력하고 있다.
가끔은 '그래도 살아보자.'라는 생각을 하거나 '죽을 용기도 없으면서 뭘 자꾸 죽겠다는 거야.'라는 스스로를 다그치는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습관적으로 생각하던 '끝'과 '죽음'에 대해서 조금씩 마음을 내려놓고, 비록 남들과는 다르고 뒤쳐졌을지언정 멈추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Sin prisa pero Sin pausa."
서두르지 말되, 멈추지 마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멈추기 위해 내 몸에 새겼던 이 말처럼, 남들을 쫓아가거나 흉내내기 위해 서두르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처럼 멈춰 있기만 한 삶을 살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어차피 내일 죽을 거라면 오늘 하루는 후회 없이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