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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re Oct 30. 2022

16. 나는 늘 죽고 싶었지만,  여전히 살아간다.

에필로그

심리 상담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로 기억한다.

한순간의 욕정으로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을 벌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뭘 해야 하는지, 어디에 가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인터넷을 검색해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설명하자 변호사의 첫마디는 '그래서, 증거자료 있어요?'였다.

이미 수년의 시간이 지난 일이고 알고 있는 거라고는 그 사람의 이름 석자뿐이었다. 전화번호는 물론이고 어디에 사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그저 내 기억에만 남아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날의 상황을 기억하거나 알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밖에 없었다.

만 12세 미만의 아동에 대한 성범죄는 공소시효가 없어졌다는 얄팍한 지식 하나만 믿고 일말의 희망을 가졌던 내가 다시 한번 더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안타깝기는 하나 터무니없는 일이 될 거라는 듯한 뉘앙스의 변호사 말을 들으며 나 자신이 너무 바보 같다는 생각과 함께 창피함이 느껴졌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던지듯 내뱉고 얼른 전화를 끊어 버렸다.

전화를 끊고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 사람을 찾아보겠다고 무작정 예전에 살던 동네로 찾아갔던 바보 같고 한심스러웠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도로가 바뀌었을 만큼 모든 게 변해버린 곳을 무작정 찾아 나섰던 그날의 무모함과 내 머릿속에만 남아 있는 기억 한 자락으로 누군가를 벌하겠다는 무지함이 겹쳐지며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이 일로 한동안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처럼 힘들어했었다.

다행히도 심리 상담을 하는 동안 겪었던 일이라 오랜 시간 힘들어하거나 자책만 하지 않았고, 누군가를 벌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나 자신을 위로하고 보듬어 주는 일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워가는 시기였기에 나 자신을 안정시키는 것에만 집중하며 지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가며 나 자신을 다듬는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한 번씩 분노와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는 가끔은 그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가끔은 그 대상이 없어졌다는 것에 화가 나는 것보다 더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성범죄 관련 기사들과 그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 내용을 볼 때였다.

그런 성범죄 사건과 관련한 기사들이 나오면 나는 늘 속으로 생각한다.


'또 한 여자의 인생이 짓밟혔구나. 한 여자의 영혼이 쓰러져 죽어가고 있겠구나..'


그리고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또 생각한다.


'이미 쓰러져 죽어가는 여자의 영혼을 더욱 짓밟고 있구나..'


'죄질이 아주 나쁘기 때문에, 대상이 너무 어리기 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엄벌해 처해' 5년, 10년형에 처한다는 기사를 보면 가끔은 헛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본능적인 욕구  하나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는 동물만도 못한 사람들에게 겨우 몇 년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 엄벌이라고 한다면, 몸과 마음이 모두 죽어가는 듯한 고통을 느끼는 피해자들은 사형 선고를 받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물론 모든 성범죄 피해자들이 나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처럼 기억을 잃고 뒤늦게 상처를 치료하느라 더 힘들어하지 않을 것이고, 나보다는 짧은 시간 안에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훨씬 많을 수 있다.

실질적인 피해의 정도 역시 나보다 더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덜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에서 회복하는 기간과 방법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정신적인 피해의 회복은 절대 쉽지 않고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신체적 피해까지 심하게 입은 사람이라면 감히 회복한다는 표현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의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사람들에 대한 처벌의 수준은 겨우 몇 년이다. 누군가의 삶을 바꾸어 버린 행동에 대한 책임이라고 하기에는 과연 처벌이 맞는가 싶은 수준이다.

나는 내가 당하고 경험한 일이 어떤 일인지에 대해 스스로 인지할 수 있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단 하나였다.


‘그 사람을 죽여 버리고 싶다.’


내 몸과 마음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듯이 떨어져 내려가던 순간, 이미 나는 나 자신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스스로를 죽여가기 시작했다. 몸은 살아서 움직이고 있을지 몰라도 정신과 영혼은 점점 더 죽음에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이었고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에 휩싸여 갔다.

그러다 나에게 몹쓸 짓을 한 그 사람에 대한 분노가 커지면서 어느 순간엔 분노의 감정을 넘어 그 사람을 어떻게든 벌하고 싶어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아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내가 겪은 고통의 열 배, 스무 배가 넘는 고통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도 이미 나는 인생에서 가장 꽃다운 나이를 흘려보낸 뒤였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 상처와 분노가 없어지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 기억과 분노만 가지고는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와는 다른 상황에 누구의 짓인지 명백하게 알 수 있고 그 피해의 정도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상황임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같은 수준의 처벌을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가해자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죽여버리고 싶다.'일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데, 이 사회에서는 그들을 용서한다. 

피해자는 모든 것이 짓밟혀 죽어가고 있는데 쓰러진 사람은 봐주지 않고, 쓰러뜨린 사람만 봐주고 있다.

누구를 위한 처벌이고 판결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사실 글재주가 좋은 것도 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닌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하나였다.

내 가슴속 한구석에 자리하고 응어리 진체 풀어지지 않는 죽음에 대한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서였다.

가족에게 조차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을 만큼 나는 철저히 스스로를 가두며 지냈었다. 그러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할 만큼 공황상태에 빠진 체로 심리상담실에 가서야 난생처음 가족도 아닌 타인에게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었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 막연하게 거부감이 있었지만, 난생처음 시도했던 그 일은 나 자신을 찾아 가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세상 밖으로 꺼내 보이면 안 되는 일, 죽을 때까지 조용히 입 다물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이 밖으로 터져 나올 때 그제야 나는 비로소 조금씩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밖으로 꺼내지는 순간 난 죽어야 할 것 같았고, 죽을 만큼 힘들 거라는 생각으로 가두어 뒀던 것들이 밖으로 꺼내어지니 오히려 나를 살리는 일이 됐다.

하지만 한 번에 완전히 털어내지 못했다. 노력한다고 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몇 년째 반복되던 그 상황과 내 마음이 스스로도 지긋지긋해 그때처럼 다시 나의 이야기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하듯 글을 써 내려가며 다시 한번 내 마음의 짐을 털어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글의 제목이 있다면 '나는 늘 죽고 싶다.'로 하겠다고 생각했었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 까지도 어려움과 힘듦의 끝에는 늘 습관처럼 ‘죽고 싶다.’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과거를 써내려 가고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과거형으로 변하고 있는 나의 마음이 보였다.

누구보다 죽고 싶다던 마음은 때로는 누구보다 살고 싶은 욕망이었고, 잘 살아가고 싶은 욕심이었다. 결국엔 살고 싶었고, 잘 살고 싶었던 그 마음을 돌이켜 보니 어느 순간 '나는 늘 죽고 싶었다.'가 되어 과거로 밀어내고 있었다.

물론, 지난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고 아팠던 기억을 떠올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한동안 막힘없이 글을 써내려 가다가도 과거의 상처와 아픔에 직면하던 순간에는 또다시 과거처럼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지낸 적도 더러 있었다.

그리고 사실은, 지금도 어느 한순간 내 마음이 다시 또 죽음을 향해 내달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불안함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고 다행인 건, 죽고 싶었던 마음만큼 살고 싶은 마음도 컸다는 걸 스스로 알게 되었고 다행히도 그 마음이 조금은 더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는 나의 고통과 아픔이 단순히 상처로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이 고통과 상처가 얼마나 깊게 자리하는 일인지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그 생각의 끝에는 이런 고통을 준 사람들에게 그에 합당한 처벌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기도 했다. 

내가 엄청나게 정의롭거나 사회 질서를 바로 잡는데 관심이 큰 사람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럴만한 영향력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알리고 싶었다.

누군가의 발정 난 장난이 한 여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 인지, 발정 난 개의 한순간 쾌락이 한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알려 주고 싶었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인생이 어떻게 흔들리는지 조금만이라도 관심을 가져 준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다시 한번 피해자를 죽이는 일이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바람을 담아 글을 써내려 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비슷한 상처가 있는 분들이 혹시라도 있다면 감히 말하고 싶었다.

당신은 더러운 존재가 아닌 깨끗하고 소중한 존재라고..

그리고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마음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마음을 가지라고 하고 싶다.

나  자신을 스스로 사랑해 주는 마음.

매일을 늘 죽고 싶었던 나지만 지금껏 살아왔고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단순히 살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 자신을 사랑한 적 없고 소중하게 생각한 적 없던 사람이 나를 돌아보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긴 변화였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자기 자신을 위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 자신을 가장 먼저 보듬어 주고 위로해 주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에게는 당신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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