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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re Jun 16. 2022

13. 내일 하루만 더.. 아니, 한 달만 더 살아보자

약물 복용을 중단한 뒤에도 상담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여전히 감정의 변화는 있었지만, 그 정도와 깊이는 이전과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스스로도 조금씩의 변화를 느끼며 상담을 이어 갔고, 약물을 중단한 뒤로도  6개월 정도는 상담이 이어졌다.

심리상담의 특성상 상담사도 내담자도 치료의 끝을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눈에 보이는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끝에 대해 누구도 쉽게 단정 지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이 없는 상태로 언제까지 계속해서 상담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상담을 시작한 지 10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문득 내가 너무 상담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서서히 상담을 끝내고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먼저 상담을 마무리하는 것을 제안했고, 상담사는 그간 나에게 생긴 변화와 발전된 모습이 분명 있기 때문에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1년간 진행한 상담은 끝이 났다.

1년 동안 상담을 하면서 그동안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모두 쏟아냈다.

나 자신과 가족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던 내가, 타인에게 그토록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놨던 적이 또 있었을까?  내가 이렇게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싶은 생각에 스스로가 놀라웠고, 이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나 자신의 문제점도 스스로 인지하고 있으니 내가 생각만 고쳐 먹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털어내고 위로를 받아야만 괜찮아지는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상담을 마무리 한지 6개월 만에 다시 상담소를 찾았다.

상담을 시작한 지 1년 정도가 지나갈 무렵에는 상담을 하는 동안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일상을 말하거나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 지금 현재 힘든 사소한 것 등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치료라기보다는 그저 하소연이며 ‘심리치료’가 아닌 그냥 상담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의 ‘치료’라는 과정은 필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고, 나 자신을 스스로 컨트롤하며 일상생활을 하면 될 것 같다고 판단했기에 상담 중단을 결정했던 것이었다.

내가 가진 상처와 관련된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는 상담을 하는 것에 대해 그저 ‘큰 의미 없는 대화’ 정도로만 치부했지만, 사실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계속해서 컨트롤하고 잡아주고 있었던 것 같다.

상담을 끝내고 지내는 몇 달 동안 오히려 그전보다 감정 기복이 심해졌고, 작은 일에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예민함이 더해졌다. 가끔은 별거 아닌 일에도 극도의 불안과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로 인해 예전처럼 타인에게 나의 그런 모습과 불안한 감정을 감추기 위해 애써 괜찮은 척, 태연한 척하려는 모습 역시 더 강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은 생각보다 괜찮지 않은 내 모습에 스스로 당황해하고 있었다.

결국엔 스스로 상담소를 다시 찾아갔다.

6개월 만에 상담소를 다시 찾은 나에게 상담사의 첫 질문은, 내가 처음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와 비슷했다.


"어떤 문제 때문에 다시 오시게 되었나요?"


이번에도 역시 한동안 대답을 망설였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뭐라고 하는 게 좋을지 한참을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아직은.. 힘들어요.."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정확하게는 기억할 수 없지만, 첫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힘들다'라는 의미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상담소를 다시 찾을 때의 마음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내 대답을 시작으로 심리상담은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재상담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그동안의 나에 대한 문제나 상처보다는, 지금 현재 내가 가진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이루어졌다.

상담사는 현재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든지 물었고, 나는 상담을 중단했었던 기간 동안 느꼈던 불안함과 스스로 컨트롤하기 어려운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별거 아닌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힘들어하는 내 모습과, 그런 문제들이 나의 지난 상처로 인한 것인지 원래 내 성격의 문제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힘들고 혼란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너무 쉽게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일상에서 느끼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와 어려움을 겪으면 항상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회에서는 누구보다 평범한 사람인척 하고, 누구보다 잘 지내는 사람인척 하면서 그 이면에서는 아주 작은 일에도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그러다 결국엔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너무도 쉽게 너무도 자주 하고 있는 나였다.

거기에 더해,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신에 대한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 그 생각이 이어진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화가 난다고 해서 화가 나는 대상을 보며 나 자신에게 생각하는 것처럼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화가 나거나 나와 부딪히는 문제가 생겼을 때 화가 나는 것을 주체하지 못한다거나 그 관계를 참아내지 못했다. 가끔은 스스로도 '이럴 정도의 일이 아니잖아? 왜 이렇게 까지 화를 내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타인에 대한 불만이 생길 때나 혹은 나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에 대한 극단적이고도 격렬한 감정이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그런 내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린날의 기억이 떠오른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동물만도 못한 본능과 쓰레기 같은 행동으로 인해 내 인생이 달라졌고, 그걸 인지한 순간부터 '내가 왜 그런 인간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야 하지? 왜 나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엔 조금이라도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용납할 수 없다는 마음과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나는 감정만 남고 있었다.

이런 감정은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화해, 모든 부분에 있어서 나에게 불편함을 주고 피해를 주는 사람들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크고 작은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눈에 보이는 이기주의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그 상황에 대해 미안해하지 않거나 무감각한 사람들을 보면 용납할 수 없고 그 감정을 넘어 그 사람 자체를 부정하고 보기 싫어했다.

이런 감정은 사회생활을 하는데에 있어서 굉장한 불편함과 감정의 피로감이 되었다.

엄청나게 대단하고 똑똑한 사람이 아니면서도 내가 먼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다짐과 생각은 완벽주의자인 것처럼 보이게 했고, 그런 나를 보는 주변 사람들은 늘 내게 조금만 편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내가 불편하고 피해를 입는 것이 극도로 싫었고, 그렇기에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기 싫어서 늘 긴장하고 경계하는 듯한 모습으로 지내왔다.

이처럼 타인에게 화가 날 때는 격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생길 때는 너무나 쉽게 죽음을 생각하는 내 모습에 다시 한번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한 번씩 극단적으로 치닫는 감정과 이내 그 감정을 느끼고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으면서 자책하는 일이 반복되자 감정적 피로와 나 자신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 불안감은 결국 다시 상담소를 찾게 만드는 이유가 됐다.

그렇게 다시 상담소를 찾아 상담을 시작하면서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상담을 끝내고 지내는 동안 내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보다 괜찮지 않은 내 모습을 보며, 오히려 처음 상담소를 찾을 때 보다 더 힘들고 긴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처음과는 달랐다.

곪아버린 상처를 처음부터 치료하는 것과 이미 딱지가 생긴 상처를 조금 더 치료하고 보듬는 일은 이전보다는 훨씬 통증이 적고 아물어 가는 속도가 빠른 느낌이었다. 

그 상처가 제대로 아물어 갈 수 있을지, 얼마나 걸릴지는 여전히 장담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처음 시작을 할 때보다는 많은 과정이 생략되어 빠르게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사소한 일에도 극단적으로 치닿던 감정들은 다시 또 조금씩 가라앉고 차분해지고 있었다. 

마치 걸음마를 배우다가 처음 엄마손을 놓은 아기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조금은 서툴고 불안정한 모습이겠지만 혼자 발걸음을 뗄 수 있으면서도 손을 잡아주길 바라는 아기처럼, 내 몸을 휘어 감고 있는 감정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다가 다시 잡아준 손에 겨우 흔들림이 멈추자 불안한 마음도 조금은 진정이 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흔들림이 멈추고 불안감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하자,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죽고 싶다면.. 어차피 죽을 거.. 하루만 더 살아보자."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한 달 뒤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정말 내 인생을 이대로 포기할 것인지.. 하루만 더 살아보고, 아니 한달만 더 살아보고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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