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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re Mar 07. 2022

11. 상처와 트라우마에 마주 서다

상담을 하면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건, 나 자신도 이해가 안 되는 나의 행동과 말들이 심리학적으로는 내가 경험한 일과 연관이 있는 '당연한, 그럴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스스로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 기억이 돌아오면서 겪는 혼란과 감정들 모두 '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들'이라는 것이 나를 안심시키고 때로는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여전히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단지 나를 위로하려는 말이 아닐까?'

'지금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정말 정상인가?'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문이 들었다.

낯선 이에게 살인 충동을 느꼈던 것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그래서 내심 '내가 미친 건 아니구나..' 싶어 안심을 하기도 했지만, 정말 그럴 수 있는 혹은 그래도 되는 정상적인 상황이 맞는 건지 끝없이 의문스럽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 상태가 정상인 걸까 싶은 의문이 들었던 것은 '남자', '이성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었다.

사회생활과 외국 생활을 경험하면서 남자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아지고 나서는 '남자'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불편함은 많이 없어진 편이었다. 가끔 일을 할 때는 오히려 남자 직원들과 잘 맞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업무적인 부분에 대한 것만 이야기하는 것이었고, 그들과 사적인 교류나 이성적인 감정 교류가 없는 경우에만 편하고 가능했던 것이었다.

대체적으로는 남성과의 심리적, 물리적인 부딪힘 자체가 불편하고 싫었다.

그래서 상담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낯선 사람과의 부딪힘을 극도로 싫어하며 피해 다녔고, 때로는 상대가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불쾌감을 드러 내기도 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옆자리에 남자가 앉으면 일어나서 피한다거나, 누군가 내 몸에 닿는 일이 생기면 곧바로 털어 내거나 닦아 버리기도 했다.

그런 행동이 때로는 굉장히 무례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오로지 내 몸에 느껴지는 것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해 버리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내가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방어적인 자세와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도 있었다. 내가 걱정할 만한 상황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단 경계하고 방어적인 자세로 상대를 대하는 것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스스로 인지 하면서 '그러면 안 된다.'라는 이성적인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때로는 '이렇게라도 나를 지켜야 해.'라는 본능적인 생각이 교차하며 혼란스러워지기도 했다.

상담사는 이런 나의 모습 역시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다만 성폭행 피해 여성들이 트라우마가 생겼을 때 그것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에 있어서 대체적으로 폐쇄적이거나 혹은 개방적으로 극단적인 반대 성향을 보이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성(性)적인 부분에 있어 '폐쇄적' 성향을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랬다.

나는 스스로 보수적일 뿐이라고 착각하고 지냈을 만큼 이성과의 문제에 있어서는 몸도 마음도 닫힌 채로 지냈었다.

12살의 그날, TV 화면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남녀의 몸을 보면서 '더럽다, 징그럽다' 이외의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몸에 닿았던 그 사람의 더러운 손길은 여전히 나를 한 번씩 감싸는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나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가 보고 느낀 것만을 기억한 채 성장했던 나는 남녀의 성행위, 남자, 여자 등 성(性)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더럽고 징그러운 행위’라고 단정 지은채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남자의 몸이 내 몸에 닿는 것은 물론이고 누군가와의 신체접촉 자체가 불편하고 싫었다.

간혹 친구들이 장난을 하면서 일부러 몸을 만지는 듯한 행동을 하면 과하게 화를 내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옷을 입을 때도 노출이 많거나 화려한 옷은 최대한 피하며 어떤 이유에서든 내 몸에 시선이 닿을만한 상황은 애초에 만들지 않으려 했었다.

내 몸에 닿는 느낌을 싫어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녀의 벗겨진 몸을 보는 것 또한 불편하고 싫었다. 같은 여자의 몸이라고 해도 불편했을 뿐만 아니라, 내 몸이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 또한 불편하고 싫은 일이었다.

그런 내가 이성과의 스킨십 혹은 성관계에 대해 편할리 없었다.

물론, 호감이 있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교류하며 만나는 연인과의 스킨십까지 거부감이 들거나 싫어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좋지도 않았다.

그런 이유로 첫 만남을 가졌던 남자와는 오랜 만남을 지속하지 못했었고, 그 뒤로는 더더욱 스킨십과 성관계에 대해 불편한 느낌이 강해졌고 점점 더 폐쇄적인 성향이 강해졌다.

그런 내 모습을 스스로 자각하고 나서는 나름대로 고쳐보려 노력을 하기도 했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 사이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교류하게 되면 육체적인 관계는 당연하게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이해해 보려 했다. 그래서 일부러 로맨스 장르의 드라마나 영화를 찾아보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남녀의 감정적, 육체적 교류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해 보려고 했었고 그러다 보면 가끔은 영화를 보면서 한 번씩 그 감정에 동화되어 나 역시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물론 나도 사람이고 여자였기에 이성에 대한 관심과 본능적 욕구는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성에 대한 관심과 본능보다 내 머릿속의 기억이 더 강하게 나를 누르고 있는 듯했다.

더럽고 역겨웠던 기억, 그래서 성인이 된 지금까지 여전히 껄끄럽고 불편한 느낌만 남아 있는 그 기억.

그걸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무섭고 두려웠다.

그러다 문득 ‘불편한 것에 직접 부딪혀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죽을 때까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것 같았던 지난날의 기억과 상처를 드러내 조금씩 치료해 가는 지금의 모습처럼, 이 부분도 조금 더 꺼내고 부딪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뭘 어떻게 부딪혀 봐야 하는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뭘 해야 하는 거지..?’

‘무작정 아무 남자나 만나봐야 하는 걸까? 아무나 만나서 스킨십을 하고 성관계를 하면 극복할 수 있는 걸까?’

'원나잇을 해볼까?'


한 번씩 이렇게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고민하다가 말 그대로 내 기억과 트라우마에 직접 부딪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속칭 ‘야동’이라고 불리는 성인 동영상을 일부러 찾아봤다.

남들은 성적인 욕구 해소와 흥미를 위해 일부러 찾아보기도 하는 것이라고 하니 나도 그저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거고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러길 바랬다.

그런데 화면 속에 남녀의 성행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영상이 나오는 순간, 12살의 그날 내가 봤던 TV 화면 속의 모습과 겹쳐 보이면서 그날의 감정과 느낌이 다시 떠올랐다.

역시나 또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화면 속에 보이는 여자와 남자의 벌거벗은 몸은 여전히 더러워 보였고, 본능에 젖어 있는 그들의 표정과 행위 또한 더럽고 역겹게 느껴질 뿐이었다. 여전히 보면 안 될 것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는 듯 불편했다.

화면을 바라보던 내 얼굴이 어느새 잔뜩 찌푸려져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그대로 영상을 꺼버렸다. 동영상을 끄고 나서도 한동안은 구역질이 날 것처럼 불편한 느낌이었다.

성장기에 한 번쯤은 호기심으로, 혹은 성인이 돼서도 쾌락과 흥미를 위한 수단으로 그런 영상을 찾아본다고 하는데 나는 그걸 보면서 이렇게 힘들어한다는 게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앞으로도 이성과 감정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더 비참하게 했다. 그건 단순히 '남자를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라는 걱정이라기보다는 내가 '여자'라는 존재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릴 때부터 이성에 대한 반감이 있었고 이제는 어린 시절의 상처로 힘들어하는  이기에 남들처럼 평범하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적은 없었다. 결혼에 대해서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었고, 이성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도 그렇게 적극적이거나 원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성과의 만남과 사랑, 연애, 결혼과 같이 남들에게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들이 나는 더 이상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일이 돼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지만 그동안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한참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큰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지난 상처를 꺼내고 그것들과 마주했던 이유는,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었고 정말 지금 당장 죽을게 아니라면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모습으로는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더 지난다고 해서 그 시간만큼의 회복과 발전이 있을지 의문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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