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강원도교육연구원으로부터 강의 청탁을 받았다. 강원도교육과정연구위원들을 대상으로 교육과정에 대해 강의해 달라고. 순간 부담이 되긴 했지만 한 번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2주 정도 강의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어떻게 강의를 풀어가야 할지, 강의의 초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하며 원고를 준비해 갔다.
강의를 준비하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 일단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내가 썼던 원고들을 쭉 살펴본다. 관련성 있는 내용들이 분명히 있다. 쓸만한 내용들을 추린다. 프레젠테이션에 하나하나 순서를 생각하지 않고 추가하고 정리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다시 원고를 열어본다.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 수정한다. 이렇게 수정하는 작업을 강의 전 날까지 한다. 대충 하고 싶지 않다. 가뜩이나 실력이 부족한데 준비만큼은 성실하게 해야 될 것 같아서.
원고가 어느 정도 정리됐다 싶으면 그다음으로 오프닝(시작)에 집중한다. 강의의 성공 여부는 시작 5분 이내에 결정된다. 청중들의 반응을 보면 느껴진다. 강의가 있는 날에는 조금 일찍 강의 장소에 도착한다.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조명의 밝기는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기 위해서. 무엇보다 참석하는 사람들을 먼저 맞이하기 위해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찍 도착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릿속으로 오프닝을 어떻게 진행할지 마지막 점검을 한다. 태연한 척하지만 무척 긴장한다.
2023년 첫 외부 강의 장소는 최근 산불 피해를 입은 강릉이었다. 한적한 세미나실에서 쉬지 않고 2시간을 강의했다. 감사한 것은 하는 한 분도 자리에서 이탈하지 않고 집중해 주셨다는 점이다. 강의 후 질의응답 시간에도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졌다.
"교감 선생님이 말한 내용과 최근 제가 만난 교육부 담당자로부터 들은 내용이 일치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되나요? "
"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좀 더 명확한 기준은 없나요?"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답변을 드렸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도 질의해 주셔서 순간 당황했다. 현재 가이드라인이 나와 있긴 하지만 현장에 적용함에 있어 명확하게 이렇다 저렇다고 답변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혼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강의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은 강의하는 바로 나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공부하게 되고 현장에서 강의하면서 배우며 질의응답을 통해 좀 더 깊이 깨닫게 된다.
강의는 하면 할수록 강의 기술이 는다. 처음 강의하는 것이 두렵고 떨리지 용기 내어 도전하게 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강의라고 생각한다. 현직 교감이라는 이점도 있다.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의자가 교감이라고 하면 일단 50점은 먹고 들어간다. 물론 실력이 병행해야겠지만.
인격의학의 대가인 스위스 의사 폴 투르니에는 <모험으로 사는 인생>에서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자신이 도전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는다. 80살이 넘은 나이였다. 많은 고민 끝에 수락을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듯이 그도 모험을 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노년이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가장 중요한 정신은 '모험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모험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책을 써 달라는 청탁을 거절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온 책이 <모험으로 사는 인생>이다.
모험으로 시작한 일도 지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 긴장감이 떨어진다.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모험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모험에 뛰어들어야 한다.
내가 강의에 도전하는 이유도 모험 정신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모험으로 사는 인생은 두려움 없는 삶이 아니다. 강의 시작하기 전까지 겉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엄청 떤다. 두려움이 예상되더라도 일단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모험한다는 것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도전하는 것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p.s.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데 참석하신 연구위원분 한 분께서 다음 달에 본인 학교에 와서 강의를 해 줄 수 없냐고 하길래 무조건 OK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