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녀가 셋이다. 다들 나라에 이바지한다고 한 마디씩 하신다. 키우는 과정은 힘든데 그래도 돌아보면 남는 건 자녀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 자녀들 모두 약속이라도 했듯이 새벽 미명에 태어났다. 아내의 뱃속에서 꿈틀거릴 때는 가장 큰 소원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태어났으면 하는 거였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아침에 울지 않고 부모와 잘 떨어지는 거였고, 초등학교 다닐 때는 무탈하게 학교 잘 다녔으면, 중학교 때는 나쁜 친구들 사귀지 않았으면, 고등학교 때는 진학 또는 진로가 순조롭게 풀렸으면 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변함없다. 자녀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기대하는 것도 부모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아깝게 시험에 떨어졌을 때 참 마음이 아팠다. 좌절한 자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다. 본인은 괜찮다고 하는데도 나와 아내는 그렇지 않았다. 1년 더 준비하겠다는 자녀를 곁에서 응원하고 기도만 할 뿐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이야기하는데 나에게 있어 시간은 더디게 흘러간다. 자녀의 시험 날짜가 빨리 왔으면 한다. 준비하는 과정도 후딱 지나가고 결과도 좋았으면 한다. 부모의 욕심이다.
오늘은 올해 후반기에 있을 본시험에 대비하여 예행연습 삼아 시험에 응시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시험 장소로 향한다. 자녀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오늘의 소회를 글로 남긴다.
시험 과목은 다르지만, 시험장 분위기도 익히고 시험 시간에 문제를 푸는 요령도 익힐 겸 도전해 보는 시험이다.
참고로 자녀가 운전 경험이 많지 않아 곁에서 동행하는 중이다. 고속도로 주행 연습도 할 겸. 자녀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뒷좌석에서 사장님 포스로 편안하게 앉아가는 기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듬직하다, 잘 커 주어 고맙다, 흐뭇하다!
자녀들을 키우면서 아쉬움으로 남는 장면은 아빠가 함께 해 주었으면 하는 순간에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다. 입학식, 졸업식, 운동회 등 학교 행사에 아빠의 자격으로 참여해 보지 못했다. 수업하느라 내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행사에 참여할 수 없었고, 내가 직접 행사를 주관해야 할 보직을 맡고 있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어찌 보면 교감의 자녀는 수 많을 시간들을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교감의 자녀는 학교에서 아빠를 볼 기회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