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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Feb 13. 2024

사고(事故), 사고(思考)

고모와 동거하기 - 무안 시골살이 적응기



사고(事故)가 있었다. 뜻밖의 사고는 관성대로 움직이는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게 만든다.

무안을 떠나 안산으로 올라오던 길, 120~130킬로미터로 달리던 중에 뒷바퀴가 찢어져 주저앉았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이었다.

보험회사와 한국도로공사에 연락했다. 때는 저녁 여덟 시, 견인차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흘러 문을 연 카센터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을 터였다. 불안하고 걱정되었다.


운전석에 앉아 있다가 2차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나 차 밖으로 나갔다. 칼바람이 부는 갓길의 수풀이 우거져 무섭기까지 했다.

편도 2차선 도로의 덤프트럭들이 굉음을 울리고 지나갔다. 조수석에 들어가 앉았다 나왔다 하며 한 시간 가까이 견인차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 한 시간 동안, 몸만이 아니라 뇌가 차가워졌다.

바퀴를 교체한 지 1년도 안 지났는데 저렇게까지 주저앉을 정도로 차를 험하게 몰았을까. 

나는 왜 130킬로미터에 육박한 속도로 달려야 했을까.

속도전이 습관이라기엔 스스로 찔리는 게 적지 않았다.

무안에서 멀어진 속 시원함(그곳이 좋았던 것과는 별개로)과 내 집에 드디어 돌아간다는 설렘,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다음 날 안산에서 IT 계열의 **교육을 들을 예정이었다.

전 남편이 강사이고, 매주 1회씩 3년 동안 치러지는 교육이었다.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이 지원하는 덕분에 수업료 부담이 거의 없었다.

좋은 교육이면 뭐 하나. 시골살이와 딱 겹치는 1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데다, 전 남편이 싫어하거나 불편해할지 몰라 두려웠다. 그래서 거절했더니,

"다시 받기 어려운 양질의 교육이니 놓치지 마라. 네가 결석한 일수만큼 보강해 줄게."

나와 친구인 보조강사가 지극히 설득했다.

나 역시 '그래, 언제까지 피할 거야. 내 필요가 중요하지.'라는 생각으로 결국 신청하고 무안에 내려갔던 터였다.


주변 지인들은 듣자마자 괜찮겠느냐며 말렸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고 시원해진 나는 아무렇도 않은 듯 대답했다.

"문과 편향적인 나의 뇌에 자극을 주고 싶어. 다른 뇌를 쓰게 될 테니 글에도 생기가 생길 거야. IT 시대에 나도 무기를 갖긴 해야 하고, 아들도 강추한 교육이야."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린 내가 기특했다.

새로운 경험을 할 기쁨과 그를 만날 설렘으로 달뜬 며칠을 보냈다.


첫 교육만큼은 꼭 참석하라는 안내를 받고, 무안살이 2주째인 어느 날 안산에 교육을 받으러 올라왔다. 

1년 여만에 만난 그는... 좋았다. 매주 그렇게라도 만나고 싶었다.

그의 목소리, 표정, 농담, 웃음 모두 다 어제 본 것처럼 생생했다. 걱정한 것보다 수업도 어렵지 않았고, 그도 친절한 편이었다.

쉬는 시간에 그가 미소 띤 얼굴로 수업 내용이 어렵지 않으냐 물어봐 주기도 했다. 똑바로 그를 보진 못했지만 설레는 걸 어떡해.


3차 강의 듣느라 며칠 앞당겨 안산에 돌아온다는 내게 친한 언니가 물었다.

"교육 때문이야, X를 만나고 싶어서야?"

"당연히 교육이지."

하지만?

대답은 시원스럽게 했지만 언니의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정말 교육을 받기 위한 것밖에 없었을까.


바퀴가 주저앉고 견인차를 기다리는 그 밤에 아니란 걸 깨달았다. 사고(事故)가 일어난 덕분에 이성적 사고(思考)를 했을지도.

서둘러 안산으로 복귀하려고 한 까닭은 새로운 걸 배우겠다는 열망이나 의지 때문이 아니그와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고 싶었던 것이란 걸 왜 그제서야 깨달았을까.

친구가 2, 3주 분을 보강해 준다고까지 했는데, 3주 차 수업을 직접 듣겠다는 이유로 엑셀레이터를 밟아 까닭이 결국 그 사람 때문이었다는 걸 왜 그렇게 늦게 깨달았을까.

 


 

글을 읽고 의아해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다.

남편과 나는 졸혼 형태로 당분간 따로 지내보자 했다가 이혼까지 하게 됐다.

이혼 사 연차인 작년 연말에 삼년상 치렀으니 이젠 끝내자고, 마음 정리했다고 믿었는데.

사고를 당한 이 날 밤, 아직까지 그와 이별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랬으니 350킬로미터를 죽어라 달렸지.

순이 고모의 서운함일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야멸차게 무안을 떠났지.


그날 자정이 넘어 안산 집에 도착한 나는 밤새 잠을 못 이뤘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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