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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Feb 16. 2024

좋은 사람

고모와 동거하기 - 무안 시골살이 적응기




나는 다.

스물하나에 한 남자와 살겠다고 부모 품을 떠난 철부지였던 내가 사기당하는 일 없이 살아온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 생각한다.


무안에서 안산으로 올라오던 날도 그랬다.

밤 아홉 시가 넘은 시각에 고속도로에서 주저앉은 뒷바퀴를 교체할 수 있던 것도 일이 참 잘 풀린 편이었다.

도움 주신 모든 관계자 분들께 고마웠다. 진심으로.


불안에 떤 한 시간이 있었지만, 보험회사 견인차가 공주 시내 카센터까지 안전하게 견인해 주지 않았나. 저녁식사도 못했다는 기사 분이 너무 고마워서 휴게소에 잠시 정차했을 때 핫바를 사 드렸다. 그 세계 얘기를 들으며 카센터까지 마음 편히 갈 수 있었다.


타이어 전문 센터 주인이 문 닫는 시간을 미루고 작업해 준다고 하니 그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손님 차에 맞는 바퀴가 없는데, 폭이 약간 좁은 바퀴로 교체해 드릴 거거든요. 쓰시는 데는 아무 문제없어요. 단, 기본 바퀴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둘 다 바꿔야 해요."

믿었다. 고마울 따름이었다. 폭이 약간 다른 것은 브랜드 차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안전하다니까 그런 줄...


바퀴 네 개를 새것으로 바꾼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일어난 사고라 아깝고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전문가가 그 방법밖에 없다는데.

안산에 내가 다니던 카센터에는 연락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밤 10시가 넘었으니.


바퀴 교체하는 동안 추워서 사무실에 들어가니 강아지가 자고 있었다. 나를 보고도 경계를 하지 않되 몹시 졸린 듯 점잖게 고개를 떨구고 다시 잠들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가 발동했다. 그래서 믿었다. 문까지 닫지 않고 해 주는데 개까지 기르는 인정 많은 사람이라.


장이 카드로 결제를 해 주며 안전 팁까지 알려주었다.

"브레이크패드를 교체하셔야 해요."

고마워서 그곳에서 하려고 했지만 너무 늦었다는 듯 시계를 보며 안산에 돌아가서 하라고 했다.

거듭 인사하며 그곳을 나왔다.

공주를 좋아해서 혼자 가끔 여행 가기도 했는데, 견인차 기사님도 공주에서 나고 자랐다 하고, 카센터 사장도 좋은 분 같아서 공주가 더 좋아졌다.


연휴가 지나자마자 안산 카센터에 찾아가 브레이크 패드를 교체해 달라고 의뢰하였다.

사장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이 바퀴 넣으면 안 되는데. 안 돼요. 큰일 나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 나는 '공주의 전문가'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바퀴를 자세히 봤다. 실은 그제야 자세히 본 거였다. 바퀴가 아주 달랐다. 난 어쩜 이런 걸 승낙할 수가 있었지?


그랬더니, 사장이 옆집 타이어 센터 사장까지 불러서 자기의 말을 확인하듯 물었다. 타이어 전문가가 답했다.

"이건 산*페 바퀴라서 카*발이랑 맞지 않아요. 앞바퀴랑 높이가 달라서 위험해요. 게다가 바퀴 하나만 교체할 것이지 멀쩡한 것까지 바꾸는 건 사기인데요. 저희 그렇게 영업하지 않아요."

타이어 센터 사장이 아주 안타까워하며 돌아간 뒤에 내 차 주치의인 카센터 사장이 다시 강조했다.

"돈 들어도 바꾸셔야 신경 안 쓰고 운전하실 수 있어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네. 영업을 왜 그렇게 하지?"
고마운 공주 사람이 어리바리한 아줌마한테 사기 친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교체 비용은 무리수였지만, 큰 사고도 안 났고, 그 사고 덕에 내 삶에 큰 영향을 줄 결단을 하게 되었으므로, 스스로 차라리 잘된 일이야 하며 토닥였던 내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왜 맨날 허당 짓을 할까. 그래놓고 혼자 고마웠다고 했다가 나쁜 놈이라 했다가, 뭐 하는 짓인지.

"선량해 보이는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는데, 나쁘네요. 당장 전화해서 따질까요?"

사장은 아무 조치도 안 해 줄 거라면서 열 올리지 말라고 했다.
"다음에 무슨 일 생기면 저한테 연락부터 하세요."

나는 아무 답도 못했다.


사고 당시 이 카센터 사장에게 전화하지 못한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카센터를 바꾼 지 얼마 안 됐는데 이 사장이 좀 무뚝뚝한 데다 수입차를 전문으로 다루면서 너무 바빠져서 내 차 수리나 점검을 소홀히 한다는 느낌이 들었던 터였다. 카센터를 바꿀까, 고민하고 있던 문제들이 섞여 있었던 것.


살아오면서 나는 운이 좋았다.

사기를 당한 적도 없을뿐더러 주변에 정직하고 진실된 사람들이 대분분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경우에도 상대가 행동으로 믿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내 감을 믿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 봤으면 거의 들어맞았으므로.

그 믿음이 쌓여서 누구에게나 마음을 쉽게 열었고, 상대를 쉽게 믿었다.


상냥한 사람이라 해서 다 진실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이젠 그걸 구별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또 덜컥 믿었다니. 급한 상황에서 도움 주는 이의 선량한 표정에 홀려서는.

경험치로 쌓인 근거들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 사건이었다.

돈을 모아 내 차종에 맞는 바퀴로 바꿀 때까지, 과속하지 않고 급커브 조심하는 걸로 우선은 버텨야 한다.




독자님들께.

시골살이 연재 글을 새로 쓰지 못했어요.

이 글은 며칠 전 '100일 글쓰기'에 올린 글입니다.

브런치 글을 새로 쓰느라 시간을 들여 화면을 보는 게 무서울 정도로 눈이 말을 듣지 않네요. 통증과 빡빡함과 뿌연 현상이 극심해요.


단편 리뷰 휴재를 결정한 날부터 휴대폰, 태블릿, 노트북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일주일 정도 글 쓰기와 읽기를 멈추고 눈 사용은 오로지 자연을 보는 것만 하려고 해요.

작가님들, 꾸준하게 집필하실 수 있게 건강 돌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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