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날씨 어때요 4

영운동 은성 아파트

by 지진진

내 인생에서 가장 선명한 기억 중 하나는 여동생이 태어나던 날이었다. 그날은 신정이었다. 그때만 해도 신정 연휴와 구정 연휴 둘 다 지낼 때였다. 명절 연휴 첫날엔 당연스레 영운동 할머니 할아버지 댁을 갔다. 그런데 엄마가 없어졌다.


엄마는 단 한 번도 우리만 할머니 댁에 맡긴 적이 없어서 나는 너무 당황했다. 이미 두 돌이 되기 전에 기저귀를 다 떼었고 말도 제법 하던 나였지만 엄마가 없는 청주 할머니 댁은 너무 무섭고 낯설었다. 같이 사시던 큰엄마 큰아빠는 동네에서 제법 입소문 난 치킨집을 운영하셨다. 명절은 대목이어서 당연히 문을 여는 날이었기 때문에 두 분은 나가고 안 계셨다. 그나마 우리에게 다정한 분은 큰엄마였기 때문에 나는 하루 종일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렸다.


할머니는 하룻밤 자고 가야 한다고 하셨다. 이제 겨우 돌이 지난 남동생과 나는 서로 의지하며 거실에서 잤다. 어린 동생을 쳐다보며 그 애 손을 잡고 간신히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에 이걸 엄마에게 얘기했더니 엄마가 노발대발하셨다. 세 돌짜리랑 돌쟁이를 웃풍 부는 추운 거실에서 재웠냐고 말이다. 큰엄마 큰아빠는 장사하러 나가시고 사촌들은 자기들끼리 잤다. 그 집은 당시로서는 제법 큰 32평이었는데, 엄마는 당연히 우리 남매를 안방 할머니 할아버지 옆에서 재울 줄 알았다고 하셨다. 하지만 난 할머니에게 별로 섭섭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우리 셋에게는 정이 조금도 없었다. 나도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아 정말 힘들었다.


여하간 오래오래 엄마를 기다렸다. 그랬더니 아빠가 나타나 우리를 자전거에 태웠다. 나는 아빠가 등 뒤에 묶었고 남동생은 아빠가 안고 갔던 것 같다. 집에 도착했더니 집에 온통 깜깜하고 조용했다. 내덕동에서 수곡동으로 이사 간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하지만 따스하고 우리 집이라는 온기가 느껴졌다.


안방에는 초록색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엄마는 커튼을 치고 어두컴컴한 가운데 초록불 아래 앉아 계셨다. 엄마의 품에는 작은 꾸러미가 있었다. 내 기억은 여기까지인데 엄마가 뒤를 이어 주었다.


"그때 이사하고 너무 힘들어서 사실 빨리 낳아버렸으면 했어. 니 생일이 은진이 출산 예정일이었거든? 그런데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꼭대기 집을 애 둘을 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 하니 죽겠지. 입덧 심해 기력도 없었어. 너네 아빠가 어디 이사를 도와줄 사람이든? 나 몰라라 하고 자기 일만 했지 뭐. 그러다가 명일에 딱 애가 나올 것 같더라고. 얼른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데 진짜 쪼끔만 늦었어도 택시에서 니 동생 낳을 뻔했어. 분만실 들어가니까 간호사가 막 소리를 지르면서 의사를 부르고 애기 다 나왔다고 하더라. 20분도 안 걸렸다."


"셋째라 나라에서 보험도 안된다고 하더라. 그래도 니 할아버지가 손주라고 막노동해서 번 돈 모아서 니 동생 병원비 내주신거야. 다음날 바로 퇴원했지 뭐. 너는 첫상면에 동생이라고 뽀뽀를 쪽 하더라. 치, 그게 얼마나 이쁘던지. 근데 현진이는 뭘 모르고 힘 조절이 안되니까 그랬는지 볼을 쓰다듬는답시고 뺨을 한 대 톡 때리더라. 그랬더니 은진이가 으앵하고 울었지. 그게 다였어. 현진이는 크는 내내 은진이 손찌검 안 했어. 기특하게도 어린 게 뭘 알았는지."


이제 엄마는 갓난쟁이, 돌쟁이, 세돌 쟁이를 돌봐야 했다. 그리고 나는 괴산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맡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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