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살롱] 번역가 홍한별, 노지양 에세이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창고살롱 시즌 4 첫 번째 스토리살롱이 열렸어요. 아직은 창고살롱이라는 커뮤니티가 여전히 낯설고 어색할 때 가장 처음 열리는 스토리 살롱에 어떤 역동이 있을지 늘 무척 기대가 많은데요. 책을 읽고 만나 구조화된 대화를 나누지만 사실 그 글을 쓴 작가와 책 속 문장을 매개로 레퍼런서 멤버들은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내 마음을 정리하며 서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시즌 4 주제는 '낯섦, 내가 확장되는 시간' 인데요. 이번 시즌 스토리살롱에서 함께 읽고 볼 책과 영화 콘텐츠를 통해 우리는 내재적 확장, 외재적 확장, 그리고 내외적 확장에 대해 생각해 볼 예정이에요.
첫 번째 스토리살롱 책은 두 여성 번역가 노지양, 홍한별 작가의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에세이 책이에요. 언어를 업으로 살아가는 두 여성이 이국과 모국어 글 사이를 오가며 고민하고 다듬고 길들이는 번역 일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에게 즐겁고 위안이 되는 편지 형식으로 주고 받은 글 이에요.
읽는 언어를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데 꽤 세심한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늘 쓰는 단어와 문장의 단조로움에 자주 좌절하는 살롱지기 혜영에게 언어생활자 두 여성의 솔직하고 애정어린 서신은 무척 매력적인 텍스트로 다가왔어요. 노지양 작가의 첫 에세이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를 읽고 그의 진솔하지만 유머 있고 감각적인 글을 언젠가 창고살롱에서 레퍼런서 멤버분들과 꼭 함께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공저 신간이 그 기회를 준 셈이에요.
번역가 직업인으로서의 기쁨과 슬픔, 일 하는 여성이자 엄마이기도 한 삶에서 주어진 역할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이 책을 함께 읽은 레퍼런서 여러분들께도 여러 지점 전해지는 내용이 많았어요. 레퍼런서 은지님은 창고살롱 첫 스토리살롱 후 참여 후, 창고살롱을 '한 권의 책을 읽고 백 가지 주제에대해 나눌 수 있는 곳'이라고 했고 레퍼런서 민지님은 어떤 책을 완독한지 꽤 오래 되었는데 스토리살롱 덕분에 3일만에 이 책을 다 읽어 뿌듯하다며 기쁜 마음을 전해주었어요.
이번 스토리살롱의 구조화된 질문은 두 가지로 골랐어요. 항상 대화 시간이 부족해 사전 과제로 내어 드린 '내가 밑줄 그은 문장들'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조금 더 가지기로 했죠.
1. (사회, 경제적 보상이 많지 않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느꼈던 기쁨과 기대 혹은 실패의 경험
2. 평범한 일상(일과 삶)에서 찾은 새로운 작은 #발견 #시선 #관계를 들려주세요.
사전 과제로 밑줄 그은 문장과 나누고 싶은 주제를 여쭈었는데요 요청 드렸는데요. 공통적으로 공감한 문장들이 있었어요.
재능이 있다는건 똑같은 시간 동안 했는데 남들보다 뛰어난 결과를 내는 게 아니라 '여기서 한 발 더 노력할 수 있겠구나. 내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투자해도 억울하지 않겠구나'에 가깝지 않을까 싶어.
레퍼런서 은지님, 쏘냐님, 라야님, 천은님, 현정님 이외에도 많은 분들이 이 문장에 밑줄 그어 주셨는데요! 재능은 투자 대비 효율이 좋은, 성과를 더 잘 내는 일이 아니라 좀 더 해보고 싶은 일, 지속적으로 열정과 마음을 쏟아보고 싶은 일이라는 노지양 저자의 정의에 각자의 재능에 대해, 그리고 지금 일에 대해 생각을 나눠주었어요.
출발어와 도착어가 만날 때 서로 다른 언어 체계와 문화가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충격, 단층, 균열이 그 특별한 만남의 흔적으로 글에 남아 있어야 하지 않냐는 거지.
레퍼런서 려진님과 헤일리님 외 몇 분이 공감해주신 문장인데요. 헤일리님은 번역가로서 언어 선택에 대한 짙은 고뇌와 애정이 느껴지고 시적인 표현력으로 감동까지 전해진다고 하셨어요. 려진님은 외국어와 모국어의 만남이라는 번역 과정이 모든 만남에 적용되어 읽혔다고 하셨고요. '사람이든, 어떤 작품이든 나는 충격과 손상을 감수하며 내 모양대로 부딪치고 압흔을 만들어가는 사람인가?'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돌봐야 하는 식구들이 커리어에는 핸디캡일지라도 삶에서는 부스터가 되어주었기 때문에 그 힘으로 버틴 것 같기도 하다.
다음 세대의 여자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하면서 아기를 낳고 키우는 게 위대한 저글링이 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면 여자가 어떤 삶을 선택하더라도 죄책감이나 패배 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되거나.
레퍼런서 고운님, 찬이님, 리마님이 꼽아 주시고 또 많은 레퍼런서 분들이 공감한 여성의 (특히, 육아하는 여성의) 일과 삶에 대한 문장에 저도 멈추게 되더라고요. '억눌린 분노', '자신의 존재와 접촉 상실'같은 자기 파괴적이고 괴로운 감정을 크게 겪지 않은건, 그래도 두 저자가 일을 놓지 않았기에 경력이 끊어지지 않았고 지금까지 번역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거라고 묘한 위안을 얻는 부분이 조금 슬프게 느껴졌어요. 지속 가능한 여성의 일과 삶에 '돌봄' 이슈가 핵심이라는 생각에 다시한 번 확신이 들었고요.
■ 사회적, 경제적 보상이 많지 않은데도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건 어쨌든 글을 쓸 때의 기쁨 때문이 아니겠어?
■ 책을 읽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이 내게 주는 특별하고 은밀한 기쁨이 없었다면, 이 일을 이토록 오래 하지 못했을 거라는 걸.(중략) 언어에 대한 사랑, 지적 호기심, 문학적 욕구까지 한 번에 해결해줘서였을까.
■ 우리가 책으로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어차피 번역가나 편집자나 큰돈은 못 버니까) 가장 큰 기쁨과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지점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번역한다는 게 아니겠어?
■ 나는 직업 선택에 돈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하긴(자위하긴) 하지만, 내가 버는 돈이 이 사회에서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잖아.
번역 일, 번역가 직업의 세계를 저자들의 경험과 묘사로 자세히 들여다 보니 어쩐지 창고살롱을 운영하는 제 마음도 보이는게 아니겠어요? 번역서라는 결과물로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막연한 작업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어요. 표준 사전에 나오지 않는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 '사투리 사전'을 중고 서점에서 주문해 구해 보고 쓸데 없는 지식을 너무 많이 알게되는 방구석 탐험가의 삶이 조금 안쓰럽기도, 제법 멋지기도 해보였거든요. 창고살롱의 커뮤니티 기획&운영이라는 사업 모델을 시스템으로 하지 않고 많은 과정 #한땀한땀 #굳이 #비효율의극치 #200%수작업 으로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었을까요.
질문을 남기는 언어, 생각하게 하는 텍스트를 애정하는 저 인데요.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일은 매뉴얼로 명문화하기 어려운, 언어 넘어의 보이지 않는 영역이 무척 많아요. 매 시즌, 어떤 분이 레퍼런서 멤버로 함께 할지 예측 불가능하고 같은 멤버가 연속 멤버십을 이어간다 하더라도 일과 삶의 스펙트럼이 달라지고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무엇에 영감을 얻느냐에따라 매 시즌 생각하고 얻는게 달라지기 때문이죠. 살롱지기로서 고유한 멤버 한 분 한 분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좀 더 귀 기울이는 그 과정은 업무 가이드라인으로 정리하기는 어려워요. 적극적 듣기로 마음과 귀를 활짝 열고 이해하며 공감할 때 참여한 레퍼런서 멤버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영감이 전달되는 것 같아요. '행복하면서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하고 콘텐츠와 레퍼런서 멤버들 사이 '중재자'이기도 하죠. 그러고보니 Discovering Connector 정체성이 살롱지기 일로 정말 잘 어울리는 타이틀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이 자리에는 무슨 단어가 들어가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딱 들어맞는 단어가 떠올랐을 때의 짜릿함, 도무지 한국어로 옮겨지지 않을듯한 문장을 두고 끙끙대다가 키를 발견하고 스르륵 암호를 풀 때와 같은 상쾌함, 운 좋게 비슷한 소리가 나는 단어가 포개졌을 때 뜻하지 않게 생기는 리듬, 다른 색과 무늬의 천을 서로 대보며 잘 어울리는 천을 찾을 때처럼 단어들 사이의 어울림과 간섭을 탐구하는 과정. 원문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스산함, 슬픔, 따뜻함, 고요함, 충격, 통렬함을 조심스럽게 내 언어로 어루만져 이루어내는 일. 거기에 속절없이 낚여버린 거야.
■ 그날따라 라디오에선 내가 사랑하는 노래들만 나오고 원고도 음악도 눈과 귀에 쏙쏙 들어오는 거야. 그때 나를 따스하게 감싸는 생각. "아, 좋다. 집중 잘된다. 이런 오후를 보낼 수 있어 행복하다."
두 번째 질문으로 새로운 시선에서 발견한 작은 의미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어요. 좀처럼 쉽게 대답이 떠오르는 질문은 아니었어요.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문장처럼 자세히 들여다보고 충분히 감각하고 생각할 때 깨달아지는 새로운 발견과 사건이 있는 것 같아요.
시즌 4 첫 객원지기로 함께하는 살롱지기 소영님은 홍한별 저자의 문장 '그런 공감을 이미지나 소리 등의 도움 없이 텍스트만으로 이루어낸다는 게, 가끔은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를 공유하며 꼭 창고살롱 레퍼런서 멤버들의 스토리살롱 같다고 했어요. 그는 또, "타인에게 설명되는 삶이 아닌 나에게 설명되는 삶이 중요하다."라는 말로 내 일상의 평범하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붙잡아보고 싶도록 해주었어요.
'평범한 일상을 바닷가 조약돌처럼 발견해서, 어루만져 반짝이는 보석으로 만드는 재주'를 가진 노지양 작가의 감각과 그 찰나를 글로 풀어내는 재능이 유난히 빛나 보였어요.
스토리살롱을 마치고 사후 글쓰기 과제를 드려요.
'아름답게 어긋난 경험'에 대한 주제를 전했는데요, 도대체 '아름답게 어긋나는 것이란 무엇인가'에대한 고민부터 시작해야하는 질문이었어요.
레퍼런서 종은님은 육아휴직 복직 후, 뒤쳐졌다는 생각에 어린이책 번역 프로그램에 등록한 경험을 적어주었어요. "영문과 전공생으로 겁도 없이 도전한 일 이지만 문장 하나를 번역하는데 적합한 단어를 골라야 하는 의사결정 과정이 머릿속에서 쉼없이 이뤄져야 하다보니 금세 지치고 진도가 정말 안 나가더라구요. 이 일은 절대로 본업으로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번역의 어려운 과정을 이야기해 주었어요. 하지만 "언젠가 정말 좋은 책을 만나면 번역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마음 한 켠에 남겨 두기로 했습니다. 살면서 그런 인생 책을 만나면 정말 꼭 한번 해보려구요."라며 여지를 남겨 두었죠. 번역의 매력인거겠죠?
둘째 아이 출산 후 육아휴직 중인 레퍼런서 려진님은 아이들의 예측불가함이 감당하기 버거울 때도 많지만, 역시나 그런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뻔한 것은 없다. 당연한 것도 없다. 원래 그런 것도 없다.'라고 적어 주셨어요. 앞으로도 아이는 내 기대를 아름답게 비껴가며 살텐데 당장 그게 마냥 긍정적인 모습이 아닌 것처럼 보이더라도 어떤 판단도 하지 않은 채 아이 인생의 전개를 함께 해주고 싶다고. 인생길의 소중한 관계에서도 아름다운 어긋남을 충분히 즐기고 싶다고 적어주었어요.
레퍼런서 고운님은 내 예상을 벗어났지만 결과적으로 오히려 좋은 지금이 아름답게 벗어난 경험이 아닐지 짐작한다 적어 주었어요. 어긋남의 경험은 고통이었지 결코 그 과정이 아름답지는 않았다고. 그러다 문득 ‘감사’ 키워드를 떠올려보니 그 당시에는 내 예상과 다른 전개였지만 결국 결과적으로 오히려 좋은 지금이 아름답게 어긋난 경험이 아닌가 싶다고 해요.
레퍼런서 리마님은 아름답게 어긋난다는게 뭘까?라는 질문을 받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되어 퇴사를 결정한 일을 적어주었어요. 회사와 아름답게 어긋났던 만남을 정리할 수 있게 된 사연인데요. 오늘 암담해보여도 내일도 그러라는 법은 없고, 예전의 나였다면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생각만해도 암담했었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충분히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거란 기대가 든다고 했어요. 리마님의 엄마됨, 그리고 이후 그녀의 일과 삶이 더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레퍼런서 은지님은 개인 블로그에 긴 글로 과제 제출을 해주셨는데요. 언어와 삶의 불일치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대성당 맨 앞줄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나를 상상하면 그것보다 아름다운 어긋남은 없는 것 같다라는 마무리 문장을 전해주었어요. 은지님 글 전문은 여기서.
저는 이번 스토리살롱 책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를 읽으며 창고살롱지기의 일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정답이 없고', '결코 완전한것이 되기 어렵고', '가성비가 낮은 자본주의적이 아닌 일'이며 '돈이 잘 안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번역가처럼 'thankless'한 일은 아니라고. 단기간에 전력질주해서 정량 지표로 결과값을 얻는 일은 아니지만 삶의 어떤 모먼트에서 자신에게 충분한 시간을 내어 주고 스스로 탐구하고 정리하는 일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의 시작이 될거라고 믿어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응시하는 일, 타인에게 시간을 내어 주고 잘 들어주는 일이 결국 나를 찾아가는 길에 좋은 영감과 용기를 전해준다는 걸 서로에게 레퍼런서가 되어주는 창고살롱에서 저도 배워가고 있고요.
창고살롱 시즌4 첫 스토리살롱에 참여한 레퍼런서 멤버분들의 후기도 전해요.
창고살롱이 준비한 구조화된 대화 질문과 글쓰기 주제 이외에도 레퍼런서 멤버분들이 다양한 각도와 지점에서 함께 대화하고 싶은 주제를 적어주셨어요. 과제로 제출해 준 스무개가 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보면서 같은 멤버들와 똑같은 책으로 몇 번이고 스토리살롱 대화를 해볼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안전하고 솔직한 분위기에서 다양한 생각들을 들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후기가 감사했고요. "모두들 사전과제를 충실히 해주어서 읽는 재미가 있었고, 레퍼런서들의 대화 나누고싶은 주제들이 좋은 자극이 되기도 했다"고 해요.
무엇보다 시즌 4 첫 멤버로 함께해준 레퍼런서 은영님의 후기가 반갑고 감사했어요.
"줌 만남을 하면서 이렇게 미소 띈 참가자들이 화면 가득 굉장히 많은 경우는 처음이에요. 저번 주 첫 모임 때에 이어 이번에도 느끼며 흐뭇했네요."
레퍼런서 고운님은 "창고살롱에의 만남이 귀하다. 여기 모인 레퍼런서 멤버 모두가 '인생 스포일러들이다"라고 했어요. "It is a good life."와 "It's a good bet, but the best is yet to come."이란 제가 밑줄그은 문장을 여러분께 공유하면서 <우리는 아릅답게 어긋나지> 스토리살롱 이야기를 마칠게요.
창고살롱 인스타 후기도 링크에서 읽어볼 수 있어요.
글: 창고살롱지기 혜영
창고살롱 브런치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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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살롱 시즌 4 스토리살롱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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