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가 패션에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패션 디자인에 천부적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나는 패션에 재능이 1도 없었다. 학교 수업조차 따라가는 게 버거웠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노력해 부족함을 극복하려고만 했다. 이런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은근히 용준이를 무시했다. 겉멋만 들어서 패션을 해보겠다는 친구쯤으로 여겼다. 용준이는 이론 수업 때는 항상 엎드려서 잤다. 수업 시간 내가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용준이를 보면서 위안을 얻었다. 그런데 용준이는 실기수업만 들을 때면 항상 흥얼거렸다. 이 친구가 왜 이렇게 신났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과제도 없는데, 뭐 하려고 집에서 패턴을 그려?”
“재밌잖아. 나 요즘 패턴 그려서 옷 만들고 있어. 나중에 네 것도 만들어서 줄게.”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무시했던 용준이가 나보다 훨씬 패션에 열정도 있고, 재능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용준이는 2학기 때부터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셔츠와 바지를 입고 다녔다. 함께 수업을 들었지만, 나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토록 원했던 패션을 정작 나는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학창 시절보다 패션에 대한 흥미가 더 떨어졌다.
용준이를 보면서 '나는 절대 패션디자이너로 성공할 수 없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 직업으로는 밥 벌어 먹고ㄹ살기도 힘들 것 같다는 위기감도 느꼈다. 패션업계는 용준이 같은 친구들이 차고 넘친다. 재능이 있거나, 아니면 즐기거나.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바닥에서 살아남는다.
열심히 노력해 부족함을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앞서 입시를 통해 나는 '노력과 보상은 절대 비례하지 않는다'라는 교훈을 얻었다. 패션디자이너를 붙잡고 있다간 내 삶이 통째로 불행해질 것 같았다.
이 사건(?) 이후 나는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버렸다. 미련도 후회도 남지 않는다. 결국은 해봤고, 그게 맞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아주 값진 경험이었다. 재수를 안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겨우 1학년을 마쳤다. 2011년 1월 군대에 갔다.
Ps. 용준이는 결국 모델리스트(패턴사)가 됐다. 군대 전역 후 한국에서 일하다가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학교인 세꼴리(Istituto Carlo Secoli)로 유학을 떠났다. 수석으로 학교를 졸업했다. 현재는 이탈리아의 한 패션브랜드 회사에서 모델리스트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