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을 하였다. 실업급여가 끝나가는 시기가 다가왔고 나는 앞으로 작업실을 가장한 내 피난 기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그 와중에 작년에 나와 같은 단체에서 일했고 조금 늦게 그만둔 친구는 쉬는 기간 없이 바로 취업을 하였다. 아직 프리랜서 작가로 살기에는 영업력이 부족했고 작년에 일하는 동안 생각보다 돈을 많이 모으지 못한 상태에서 주변인이 바로 일하는 것을 보니 조바심이 생겼다. 조바심보다는 불안함이 더 큰 감정이었던 거 같다. 코로나 시대에 만 37세의 단절된 커리어 패스를 가지고 비건 지향적 삶을 살아가는 한국 남자에게 취업의 문은 턱없이 좁아 보였다.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지만 우선 작년에 일했던 서울시 뉴딜일자리를 다시 검색해 두세 군데에 지원서를 넣었다. 자기소개는 복붙 복붙 하고, 앞으로의 본인의 전망 및 계획에 그 조직에 맞게 커스터마이징 한 포부를 넣고 전송 전송.... 뭔가 허망한 기분이 들었지만 난 앞으로 전업작가로 성장하기 위해 나만이 독립적으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이 곳을 더듬 더듬이라도 운영해야만 했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이 공간이 있어서 삶의 허무와 절망에서 버틸 수 있었기에 올해만큼은 유지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 너무 내 영혼을 파는 일만 아니면 뭐든 할 생각이었다. 분명 이때는 그랬다. 진심으로.
작고 소중한 나의 작업실
중간중간 마감을 지켜야 하는 작업을 하면서 일할 자리를 알아보다가 눈에 띄는 인스타 게시물을 보게 됐다. 20살 때 잠깐 대학 동기였던(2학년 때 그 친구는 수능을 다시 쳐서 다른 학교로 갔다. 친구가 만든 스타트업에서 공간을 만들고 있는데 실제로 운영할 사람을 찾는다는 공고였다. 이전에 숨도라는 곳에서 카페를 맡아 운영하면서 했던 일들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면 되는 거였고 그동안 지원했던 다른 일에 비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 느껴졌다. 그래서 2주 정도 고민을 하다가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내 인생을 통틀어서 자기소개서를 1박 2일로 공들여 쓴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유양식이어서 내용과 레이아웃에 더 많이 고민이 필요했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다가 약간 자포자기하는 식으로 지원서 메일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결과만 말하자면 3일 동안 2시간이 넘는 시간이 넘는 면접 끝에 나는 붙었고 지금 일을 하고 있다.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불안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건 내 마음이 간사해서다. 분명 처음에는 월급이 나올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생각했는데 막상 고용이 결정이 되다 보니 연봉은 얼마 정도가 적당하고 휴일은 어떻게 보장되어야 하고 수당은 어느 정도를 요구해야 하며 blahblah... 뭐 이런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머릿속에 들어오다 보니 내가 계약서를 잘 쓴 건 맞는지 지금 취업을 한 게 타이밍이 맞았는지 같은 나 자신의 삶의 굵직한 부분에 대한 결정력에 대한 의심에 혼란스러워 입사 직후 몇 주는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게 지나갔다. 이제 그 뒤의 몇 주는 업무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눈 앞에 쌓이기 시작하고, 준비하던 공간은 오픈해서 운영을 시작했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간만의 휴일이다. 뭐, 아까도 잠깐 급히 처리할 일이 생각나서 사무실에 다녀왔지만 출근한 건 아니다(?).
서울숲에 위치한 나의 일터
무엇보다 불안한 건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가시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주말근무가 필수적이어서 앞으로 운영진으로 있던 제로 웨이스트 마켓 '채우장' 운영진에서는 빠지게 됐고, 활동가로 몸 담고 있는 시셰퍼드의 해변 청소에 거의 참가하지 못하게 될 것 같다. 거기다 올해 반드시 해 내야 하는 자수와 드로잉 작업도 짬짜미 시간 날 때마다 해내야 한다. 9월에는 합정동에 카페에서 있을 개인전시을 준비해야 하고(아직 구상도 시작 못했다), 이 와중에 오랫동안 살았던 집이 리모델링을 결정해서 다음 달에 이사도 예정되어있다. 뭔가 인생에 큰 일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게 그동안 신경도 잘 안 써주던 초월자가 '자, 네가 이거 다 잘할 수 있는지 내가 한 번 봐야겠어'하고 장난스럽게 시험하는 것 같다. 너무 큼직한 일들이 많다 보니 꽤 이름 있는 전시관에서 들어온 개인전 의뢰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 결정하는 데에도 정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걸렸다. 작가로서 좋은 기회를 놓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마음을 뒤 흔들었지만 지금 여력상 불가능한 작업인 데다 그 미술관의 모체 기업의 브랜드의 그린워싱에 이용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과감하게 거절했다.
그래, 뭔가 너무나도 쉽게 굴러간다고 했더니! 난 분명 안정을 바라고 회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아직은 몹시도 마음이 불안정한 상태다. 무언가를 선택을 했으니 포기할 것은 빨리 놓고 현재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맞겠지만 무언가 시간 또는 금전적으로 손해 보기 싫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마음과 지금의 구성원들과 같이 성장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내가 내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삶고 있는 작가로서의 완성을 추구하는 삶이 실시간으로 슬램을 벌이는 중이랄까? 한 달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시기상조이지만 워낙 가면 증후군적인 생각과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보니 가끔 마음이 불안 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오랜만에 풀타임 근무를 하다 보니까 시간은 정말 금방 가고 퇴근이 9시이다 보니 코로나 시대 강제 통금에 만나는 사람도 자연히 줄어들었다. 이 불안정한 마음이 진정이 되고 나면 안정적인 작업시간이 확보될 거라 믿는다.
우선은 이런 일정을 버텨낼 수 있는 체력을 길러야 되겠다는 생각에 저번 달 말에 이 근처 구립체육센터에 헬스를 등록했는데 어제서야 처음 방문했다(이 글을 쓰는 날자는 5월 19일이다). 인포메이션에서 사물함 등록을 하면서 데스크에 근무하시는 선생님께 이런저런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웃으시면서 "기부 활동하셨네요?"라고 하시길래 "그러게요!"하며 같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