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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모 MeMo Aug 04. 2021

비워내기

이사를 왔다

"이사 가야 돼. 7월까지."


 4월에 갑자기 어머니께서 말하셨다. 집주인이 집을 다시 짓기로 해서 7월까지 무조건 나가야 한다고. 한 집에서 십수 년간 세입자로 살 수 있었다는 건 어찌 보면 행운과도 같은 일이었지만 그만큼 이사란 나에게는 생활의 대사건이었다. 음... 뭐부터 알아봐야 하지? 대출을 받아야 하나(그런데 내가 받을 수 있는 은행 대출은 있으려나)?


 플레이스토어에 나와있는 모든 부동산 어플을 다운로드하고 3개월 동안 만들 수 있는 돈은 얼마나 되는지 계산하고, 친구들에게 필요할 때 도움 요청하느라 분주했다. 어머니와는 어느 동네로 갈지를 두고 만나면 갑론을박에, 이 와중에 취직이 되어서 5년 동안 안 하던 출퇴근을 시작했다. 정말... 내 주위의 사람들은 슈퍼맨이었던가. 매일 직장을 다니면서 이 모든 걸 어찌하며 살아왔던 거니 너희는. 새삼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일상이 대단해 보이는 성찰에 이를 때쯤에 이사 갈 집이 결정되었다.


 그동안은 좋은 집주인을 만났기 때문에 한 곳에 오래 살아왔지만 이제는 2년 주기로 이동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전부 부담스러워졌다.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물건들을 골라서 버리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버려지지가 않았다. 50리터로 두 뭉태기를 버렸는데도 전혀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생활을 추구하는 가치관에서 오는 '버린다'는 행위에 거부감도 컸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 대한 집착은 생각보다 강했다.      


 일단 최대한 꾹꾹 눌러 담아서 이사를 오고 나서 생각하기로 했다. 또 그 와중에 회사는 그만두게 되었지만 이미 계획되어 있는 6월의 일정이 너무나도 바빴다. 짐은 당근 마켓으로 구입한 플라스틱 이사 박스에 그대로 쌓여 있어서 다로 당장 다른 집으로 이사 간다고 해도 하루면 준비 완료인 상태. 그렇게 거의 한 달을 보내고 나서야 주섬주섬 짐 정리를 시작했다. 아! 어머니가 나와 같이 낳으시고 할머니가 그렇게 떼어내려 애쓰셨지만 여전히 내 삶의 동반자인 나의 태생적 게으름아. 이번에도 네가 이겼다. 다음 이사 때는 좀 봐주라.


 나름 생활이 가능하게 짐을 풀고 나니 또 하나 고민이 생겼다. 아직 내 물건들은 꽉 채워져 있지 않은 세 박스가 남아있는데 하루하루 가면서 드는 생각이 '이거 평생 이대로 둬도 사는데 아무 문제없겠는데?'이다. 사실 이것들은 나의 과거의 기억들과 연관된 기록, 아마 다시 하지 않을 작업의 도안과 스케치, 스크랩 자료, 언젠가는 쓰겠지 하면 버리지 않은 빈 공책들, 그리고 역시 한 번은 읽고 버리자는 마음으로 가지고 있는 책들이다. 책은... 정말 아직 끈으로 묶인 상태인에 이사 와서 한 권도 읽지 않았다! 하하하하!

2021년 8월 3일 10:52분 현재 방 꼬라지다.

 왜 못 버리는 걸까? 이 전에도 버린다는 것과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생각을 글로 쓴 적이 있는데 역사 나는 맥시멀 라이프에 특화된 인간일까? 뭐 그것도 나쁘지 않은 삶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저번에 살던 집과는 다르게 듬성듬성 빈 벽이 보이는 내 방의 상태가 마음에 들고 있다. 내 방고 그렇고 지금 문래동 작업실도 내 작업의 결과물들이 점점 수직으로 쌓여가는 중이라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속한 공간에 대한, 그리고 내가 어떤 삶을 향해 나아갈 지에 대해 크고 작은 결정들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이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내 삶의 결을 단순하게 만들 큰 작업을 해 나갈 것인가.  결정을 유보한다는 것은 끝없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헛된 희망은 일찌감치 끊는 것이 정신건강 유지에는 더 유효하다. 이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만 실행하는 건 또 다른 일.

 

나의 동반자가 등 뒤에서 키득거리며 웃고 있다. 나랑 그냥 웹툰이나 밤새 보면서 놀자고. 망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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