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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모 MeMo May 21. 2019

창과 방패가 가득한 나의 일상

모순 대잔치 


#1

 요즘의 일상은 정말 뒤죽박죽이다. 멋지게 차려입고 패션쇼에 참석하고는 다음날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막노동을 하고 일을 마치고는 인터넷 언론매체에 나갈 글을 작성한다. 친구네 회사에 영상편집 인원이 부족하다 연락이 갑자기 난생처음 유튜브에 영상을 편집하고 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만둬버렸다. 4월부터는 연희동에서 한 달에 한 번 있는 제로 웨이스트 마켓 '채우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틈틈이 이어지는 개인작업, 공모전, 전시 준비... 이번 주에는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비건 페스티벌 무대 설치도 진행했다. 주말에는 케이터링 행사에 나가서 요리를 한다. 허둥지둥, 헐레벌떡.

  

 그냥 바쁘기만 하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정을 조절하고 컨디션을 잘 관리하면 어찌어찌 다 지나가니까. 문제는 각각의 일의 내면에 담겨있는 가치관들의 충돌이다. 이것들이 내 일상을 모순투성이로 만들고 내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  

 


#2

 나 자신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여러 가지 도구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무엇을 하고 먹고 쓰는 가인데, 현재 나는 '채식'을 지향하는 삶을 살고 있다. 동물권에도 신경을 쓰고 있지만 그보다는 내 건강을 위해서 그렇다. 고기를 적게 먹는 것만으로도 몸이 훨씬 가볍고 활기차 진다. 4년 전에는 최재천 교수님이 운영하시는 생명다양성재단과 인연을 맺고 '뿌리의 새싹'이라는 모임의 일원이 되었다. 재단에서 진행한 여러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환경적이고 윤리적인 소비를 하는 삶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작년에 잠시 운영했던 팝업채식술집 '베지드렁큰'을 시작할 수 있게 공간을 내어준 정다운 대표와는 지금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제로웨이스트마켓 '채우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만 들으면 굉장히 일관된 방향성을 지닌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문제는 내가 아직 요리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케이터링! 내가 일하는 케이터링 업체는 주로 결혼식 피로연을 맡아서 진행한다. 보통 성지로 알려진 오래된 성당에서 행사가 열리기 때문에 결혼식은 1년 내내 끊임이 없다. 하루에 3쌍. 1000명에서 1300명 정도의 하객이 먹는 음식의 양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마어마한 것은 그들이 먹지 않거나 먹다가 남긴 음식물 쓰레기의 양이다. 어림잡아 400l가 넘는 양이 나오는데 장정 세명이 들어야 겨우 트럭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무겁다. 쓰레기는 더 심각하다. 지난주에 버린 쓰레기는 일반쓰레기 100l짜리 8 봉지와 같은 부피의 플라스틱, 접어 쌓아도 내 방안을 가득 채울 정도의 박스들이다. 

 

 모든 철수까지 13시간 정도 되는 일이 끝나고 녹초 상태로 집에 돌아갈 때 생각하게 된다. '아, 내가 오늘 연어 하고 참치를 몇 마리나 썰었지?', '오늘 스테이크를 준비하려고 소가 몇 마리나 죽었을까?'... 이번 주 같은 경우에는 전날에 채식인을 위한 축제 운영진이 연락이 와서 축제 무대를 설치하고 다음날 바로 케이터링 행사를 나갔다. 축제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고 긴 감사의 뜻을 SNS를 통해 전해받았다. 기러기 정치인이 된 느낌이다. 



#3

 이것 이외에도 내 안의 모순을 느낄 때가 많다. 주로 돈 앞에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위에 잠깐 언급한 영상편집일의 경우에도 그렇다. 정말 나와 정치적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자기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대는 콘텐츠였다. 경제학 박사가 왜 누군가의 정신분석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람을 좌파 우파 나누는 것이 속으로 우스웠지만 '먹고살려면 해야지' 하면서 시작했는데 6편쯤 만들자 '아.. X 같다'란 혼잣말이 나왔다.


 흐름을 잘 탔는지 채널 구독자가 증가하고 유튜브 영상 전담 인력 채용이 필요하게 되었다. 해볼 의향이 있냐는 제의를 사양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아마 조금만 늦었으면 내 안에서 뭔가가 끊어졌을 것이다. 하루에 길게는 6시간 넘게 반복해서 얕은 논리로 무장한 채 누군가를 폄하하고 비난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버벅 우물 거리며 말하는 화면 속 인물을 명연설가처럼 재조립하는 작업을 즐기고 있었다. 막상 내가 만든 영상이 조회수가 4만 회가 넘어갈 때는 묘한 만족감도 느꼈다. 그 기분에 기대서 계속해볼까 생각해 봤지만 누군가를 향한 혐오와 비난 위에 쌓아 올린 탑 위로 오르고 싶지는 않았다.   



#4

 정말 사랑하는 몇몇 친구들이 있다. 우정과 사랑이 깊어가지만 그만큼 아쉬움과 미움도 같이 커져감을 느낀다. 애증이라는 말은 누가 발명했는지 발등에 평생 입맞춤을 해도 모자랄 기분이다. 당사자들에게는 평생 말하지 못할 양가감정들은 내 안에서 파쇄기안 종이 조각들처럼 쌓여가고 있다. 내가 널 미워하는 이유는 뭘까? 그렇다면 반대로 아직 널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이유는 뭘까? 미워하고 싶은데 미워할 수 없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 싶지만 그때마다 미움이 목덜미를 낚아챈다. 그러고 이렇게 말하지. '얼마나 더 호구로 살래?'


 행복하길 바라다도 철저하게 부서지길 갈망한다. 조각조각난 마음으로 날 찾길 바란다. 그러다가 또 막상 얼굴을 보게 되면 항상 웃고 있길 소망한다.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게 되는 게 정상인가 생각하게 되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내게 그동안 베푼 사랑이 얼마나 깊은 차원이었는지 놀라게 된다. 과연 내가 누군가와 인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자신에게 묻는다.       



#5

 아무튼 나는 내 안의 모순을 잔뜩 가지고 갈지자 걸음을 떼어나가고 있다. 나만 이런 것 같지는 않다만, 나처럼 소화를 못 시켜 만성복통을 일으키는 사람도 드물지 않나 싶다. 얼마 전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들에게 동물들도 모순된 행동을 하는지 물어보자 그렇다고 한다. 모순이란 주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주체만이 보이는 특성이다. 그들에게도 인간 못지않는 지성이 있다는 증거겠지.


마지막은 한용운 님의 시로 마무리한다. 이 위대한 시인도 나와 비슷하지 않았었나 위로받은 기분이 든다.  



矛 盾



한 용 운


좋은 달은 이울기 쉽고

아름다운 꽃엔 풍우(風雨)가 많다.

그것을 모순이라 하는가.


어진 이는 만월(滿月)을 경계하고 

시인은 낙화를 찬미하느니

그것을 모순의 모순이다.


모순의 모순이라면 

모순의 모순은 비모순(非矛盾)이다.

모순이냐 비모순이냐 

모순은 존재가 아니고 주관적이다.

모순의 속에서 비모순을 찿는 가련한 인생

모순은 사람을 모순이라 하느니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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