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_요즘 그리고 있는 것... 민화?

by 찬H


전통과 관련된 소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

단순히 ‘옛날 것’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하고, 보자마자 마음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을 때 주저 없이 지갑을 연다. 그렇게 하나둘 모은 물건들은 내 보물 상자에 고이 간직된다.

주변 사람들은 내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이 취미는 내가 스스로 밥벌이를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유지해온 오래된 습관이다.





그리고 그 관심은 자연스레 그림으로 확장됐다.

한복을 입은 캐릭터를 그리거나, 옛 색감과 문양을 참고해 전통을 내 방식으로 표현해보려는 노력를 꾸준히 해왔다.

2013~2015년도에 그린 캐릭터들



작업은 어도비 포토샵과 아이패드 프로크리에이트 앱을 활용한 100% 디지털 방식이라, 언뜻 보면 전통과는 전혀 다른 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 안에는 전통 회화에 대한 동경이 항상 있었고, 언젠가는 꼭 직접 그려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베트남 하롱베이에서 영감을 받은 ‘밤의 기억Ⅰ(2014)’은, 기묘한 암석 지형을 옛스러운 감성으로 풀어본 첫 시도였기에 더욱 뜻깊다. 은하수는 자개가 연상되는 은은한 색감으로 칠해, 작품 전체에 동양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정서를 녹여낸 작업을 몇 가지 더 그렸다. 당시에는 아이패드 없이 포토샵만으로 작업했는데, 지금 보면 서툰 티가 역력하지만 그 시절의 나에겐 분명 새로운 도전이었다.


밤의 기억Ⅰ(2014)
제주도(2015) / 일월오봉도Ⅰ(2016) / 서호(2017)


브런치북 <그림으로 먼저 읽는 문장들>에 연재한 ‘일월오봉도Ⅱ’는, ‘일월오봉도Ⅰ’을 그리고 8년이 지난 후, 한층 다듬어진 손길로 완성한 리메이크 작품이다. '도원경'도 같은 브런치북에서 짧은 글과 함께 소개한 적이 있다.

*일월오봉도Ⅱ: https://brunch.co.kr/@chanh/5

*도원경 : https://brunch.co.kr/@chanh/1



올해 들어 민화 콘셉트의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고 있다.

2015년부터 내 엽서를 줄곧 구매해주시던 캐나다 토론토의 소품점 운영자 분이, 작년 말부터는 새로운 일러스트 작업까지 맡겨주신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주제 중 절반 가까이가 ‘민화’였다.


한국적인 느낌이 나는 그림은 가끔 떠오를 때마다 1~2년에 하나씩 그리는 정도였기에, 덜컥 의뢰가 들어왔을 땐 겁부터 났다. 조심스럽게 가능 여부를 여쭈었지만, “작가님 스타일대로 자유롭게 구현해도 된다”는 격려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착수한 작업은 예상보다 만족스럽게 마무리됐다. 그 후로 민화를 주제로 한 다양한 그림을 지속적으로 의뢰받고 있다.




이런 그림들은 같은 전통 콘셉트라도 이전 작업물들과는 분위기가 살짝 다르다. 문득 그림을 독학하던 때가 아른거리며, ‘공부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시작한 지 아직 1년도 안 됐으니, 익숙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그림 속 흰 여백이 남아 있으면 어딘가 덜 그린 듯해 끝까지 펜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민화에서는 그 빈 공간이 오히려 편안하고 부담스럽지 않다. ‘여백의 미’라는 말이 민화와 함께 따라붙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여백이 그림의 중심을 잡아주고, 전체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틈틈이 전통 회화를 검색해보거나, 다른 작가들이 옛그림들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풀어내는지 구경하는 일이 요즘 큰 즐거움이다. 하나하나 다르고, 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다.

지금은 익숙한 소재를 내 스타일로 옮겨 그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지만, 머지않아 나만의 이야기를 담은, 오롯한 나만의 민화를 그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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