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찬H
001.jpg 산(2025.06)_illust by 찬H


태초에 산이 있었노라.

바다 위에 홀로 우뚝 솟아, 억겁 세월 굳건히 지켰다 하였네.

거센 물결 밀려와도 꿈쩍하지 않았고,

하늘이 노하여 번개 내리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천지 만물의 숨결을 고요히 귀 기울여 들었더라.


그 거룩한 자락에 구름이 몸을 눕히었고,

해와 달은 매양 정수리를 스치며 예를 다하였으며,

소나무는 기운을 좇아 깊이 뿌리 내리고,

짐승마저 벼랑 아래서 울부짖을 따름이로되,

감히 그 너머엔 발 디디지 못했노라.



그에 도전한 자 수를 헤아릴 수 없었나니,

수행자도 있었고, 길 잃은 자도 있었으며,

세상의 끝을 보고자 한 이도 있었다 하네.


그러나 그에게는 문도 없고, 길도 없었도다.

돌마다 바람을 품었고,

바위마다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었던지라,

그를 넘으려는 자는 끝내 자신과 마주함에 이르러

산중 어드메에서 길을 잃고 헤매었더라.


사람들이 말하되,

정상에는 신비로운 존재가 산다 하였으며,

어떤 이는 산신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도를 닦아, 곧 하늘에 오를 자라 칭하였더라.


허나 실체는 언제나 짙은 안개 속에 묻혀,

참모습은 누구의 눈에도 드러나지 않았노라.

간혹 구름 사이로 기와지붕 같은 형상이 희미하게 비치는 듯도 하였으나,

그 또한 환영인지 진실인지, 분간할 길 없었다 하네.


옛날 옛적, 어린 구도자 하나가 그 산을 올랐다 하며,
며칠 밤낮 견디어 마침내 정상에 이르자,
천둥이 울리고, 하늘을 가르며 빛이 솟구쳤노라.

그 뒤로 사람들은 그를 일러,

‘천인’이라 불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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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_illust by 찬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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