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남길 수 있다면
하늘이 색을 바꾸는 시간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어디론가 흘러간다.
나는 조금 느린 발걸음으로
길 위에 남겨진 더위를 지나며
그저, 걷는다.
희미하게 붉은 노을이 사라지고
남색 어둠이 내려올 때
하늘 위에는 흰 선 하나가 그어졌다.
비행기가 남긴 흔적
그 흔적을 보고
추락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흰 선을 따라
계속 발걸음을 옮기다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흔적 없이 무수히 사라져가는 존재 사이에서
나의 자국 하나라도 남길 수 있다면
추락이어도 그것은 아름답지 않을까.
서서히 짙어지는 검은 하늘 속
흰 선 하나가 오래도록 남는다.
나는 다시 걷는다.
이미 하늘은 색을 바꿨고
흔적이 사라진 끝을 따라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