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부모님에게 아이를 맡기는 생활에 대하여
아이를 낳기 전, 제일 이해하기 어렵고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했던 육아의 부류 중 하나가 친정 부모님과 살림을 합치거나, 친정 부모님 코앞으로 이사 가서 아이를 맡기는 부류였다. 내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부모님 댁과 도보 2분 거리로 이사를 와서, 아이를 맡기고 월급을 드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
나의 친정어머니는 내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할 때, 혼자서 편하게 훨훨 날듯이 살지 고생길을 왜 가려고 하냐고 말씀하신 적 있다. 결혼 자체가 주는 고단함이 얼마나 큰지, 말씀 주셨던 것 같은데 나에게는 그게 약간의 충격이기도 했던 것 같다. 엄마는 누구보다 평생을 가족밖에 몰랐고,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서 모든 걸 희생한 분이셨기에 그런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었던 것일까 하는 슬픔이 이었다. 이제 다시 엄마에게 '엄마가 그때 그런 말 했잖아.'라고 물으면 '내가 그랬나?' 하고 웃으면서 말씀하시곤 하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슬픔 때문인지 나는 본능적으로 결혼이나 육아에서 힘든 순간들이 오면 친정 엄마에게 절대 티 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맥락으로, 절대 육아를 친정 부모님 옆에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 도우미로 친정 부모님을 오게 하지 않았다. 그때에는 내가 살던 집과 부모님 댁이 멀어서 가능하기도 했다. 육아 휴직 1년 동안, 온전히 나 혼자 아이를 보았다. 절대 친정 부모님에게 신세 지거나, 나의 힘든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엄마를 고단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정말 어쩔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회사로 복귀할 때 돌이 갓 지난 아이를 모르는 이모님께 맡길 용기가 없었고, 그때는 친정 엄마가 적극적으로 '내가 봐주고 싶은데 이사 올 생각 없냐.'는 말씀을 하셔서 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복직 두 달 전에, 부모님 집 옆으로 이사를 왔다. 남편은 평소에도 처가에 살뜰히 잘하고 사랑을 많이 받아서인지 선뜻 아이를 봐주신다면 가는 게 맞다며 이사를 결정해 주었다.
친정 엄마는 내가 출근하기 전 우리 집에 오셔서 내 아침을 간단히 챙겨 주시고(결혼 전에도 엄마는 내가 새벽 6시에 나가도 아침을 주셨다.) 나와 남편이 떠난 집에서 아이와 등원 준비를 하신다. 아이가 하원 할 때 아이를 데려다가 집에서 씻겨 주고, 저녁을 먹이고 나오 남편의 저녁거리를 해 주신다. 아마 엄마가 없었다면, 진즉에 '못해먹겠다'라고 회사를 그만두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 덕분에 회사에서 나는 '아이가 잘 있으려나', '아이가 혹시 미움받고 있지는 않으려나' 하는 걱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새벽에 우리 집에 오시는 엄마의 얼굴이나 퇴근 후 마주치는 그녀의 모습에서 부쩍 늙음을 느낄 때 서글퍼진다. 자기 딸이 조금이라도 편했음 하는 마음으로 육아를 돕는 게 분명한 우리 엄마가, 힘들다는 내색 하나 없이 매일매일 육아를 해 나가시는 모습을 그녀의 늙음으로 마주하는 일이란 아주 슬프다. 손주의 애교에 신이 나셔서 '얘가 오늘 이랬다, 저랬다' 수다를 떨곤 해도 나에게는 그녀의 고단함이 보인다.
부모님께 육아를 부탁하는 일이란, 굳이 주지도 않아도 될 늙음을 더 주는 시간인 것 같다. 결국 자식은 부모에게 이렇게 신세만 지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