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수 흐렸다 개임
O Cadavo-Lugo 31km
7:40 출발. 2:00 도착.
오 카다보 O Cadavo에서 루고Lugo는 31킬로 거리여서 최근 며칠간 20여 키로 안팎을 가볍게 걸은 우리 일행에게 심리적 압박감이 있었다.
어제 내내 오늘 일정을 어디까지 걸을까로 다른 이들과 머리를 굴려봤지만 후련한 답을 도출하지 못했다.
중간에 머물 수 있는 곳이 애매했기 때문이다.
비교적 걷는 속도가 비슷하게 빠른 요아킴과 나는 아침부터 줄곧 같이 걸었는데 조식을 먹기 위해 들른 카페에서 카페 콘레체를 각각 두 잔씩 마시고 토스트도 배불리 먹어서 오늘의 열량을 확보했다.
우리보다 하루 반쯤 앞서 걷고 있는 요르그가 묵었던 곳을 사진으로 보여줬는데 환상적이었다.
최근에 리모델링을 한 알베르게는 가구와 인테리어가 스칸디나비아 풍의 세련되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뿜어대고 있었고 알베르게 정원이 12명이라는 점과 셰프 출신 주인장 부부가 손수 준비해 준다는 갈리시아 특선 해산물 요리 정찬은 정말 유혹적이었다.
하지만 이 알베르게는 불과 10킬로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는 것이 치명적이었다.
아무리 일정이 여유가 있다고 하지만 아침 10킬로는 두 시간이면 넉넉해서 우리는 열시도 채 안 된 시간에 이 아름다운 알베르게를 지나치게 되었다.
결국 요아킴과 나는 그냥 루고까지 걷기로 했다.
사람이 간사해서 20여 킬로 씩만 걸으니 30킬로가 대단해 보였지만 사실 우리는 30킬로쯤 별 탈 없이 감당할 수 있었다.
오르막길이 별로 없어서 수월하고 빠르게 왔다.
요아킴과 같이 걷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점심 무렵 마침 나타난 시냇가에 우비를 펼치고 앉아 점심을 먹었다.
아무도 지나치지 않는 숲 속 오솔길 한편에 자리를 펼치고 앉아 이제 알게 된 지 2주쯤 되는 독일 할아버지와 함께 먹는 점심은 맛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과묵했던 요아킴은 이제 슬슬 자신의 얘기도 들려주었는데 사랑하는 아내와 딸, 사위 얘기도 들었고 특히 모든 할아버지가 그렇듯 손녀 얘기가 나오면 입이 귀에 걸렸다.
나도 손주가 생기면 저렇게 손주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할아버지가 될까?
과연 나에게도 손주를 안아 보는 날이 오게 될까?
나는 늘 먹던 생선 통조림과 치즈를 얹은 바게트를 콜라와 함께 먹었고 요아킴은 하몽 슬라이스와 치즈를 딱딱하고 작은 빵에 얹어서 먹었다.
내가 생선이나 꼴뚜기 통조림을 늘 상비하고 있었다면 요아킴은 하몽이었다. 나도 요아킴에게 배워서 하몽과 빵을 함께 먹어봤는데 하몽 보까디요와는 조금 색다른 맛이 괜찮았다.
마음먹고 걸은 30킬로였지만 목적지 도착 5킬로 전부터는 고통스러웠다.
루고는 꽤 큰 도시여서 멀리서부터 도시가 힐끗힐끗 보였지만 걸어도 걸어도 나오질 않아서 외곽에서 지루하고 힘들었다.
드디어 루고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로만 월 Roman Wall, 즉 로마 성벽이 나타났고 꽤 큰 규모의 루고 대성당도 나타났다.
성당 구경하고 시내 구경 조금 하다가 구도시 한가운데에 위치한 알베르게에 체크인했다.
7시경 요아킴, 리타, 보그단과 함께 순례자 메누를 먹고 돌아왔다.
오늘 알베르게는 시설이 아주 훌륭했다.
이층 침대였지만 각 침대마다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는 셔터가 있어서 밖을 차단할 수 있었고 방 안에 샤워실과 화장실이 한 개, 복도에도 여분의 화장실과 샤워실이 넉넉히 구비되어 있었다.
5층인지, 암튼 최상층에는 주방과 식당이 잘 구비되어 있었고 세탁 시설과 넉넉한 소파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었다.
이제까지 쉼 없이 걸어왔던 요아킴은 전부터 이곳 루고에서는 하루 더 쉬어 갈 작정으로 미리 자신이 묵을 호텔을 예약해 두고 있었다.
나와 다른 동행 순례자들 대부분도 이곳에서 하루 더 묵어가기로 했다.
이제 산티아고가 코 앞에 있었고 멜리데에서부터 프랑스길과 합쳐지면 시장 바닥처럼 시끄러워지고 사람에 치일 것 같아서 한적하고 순박한 프리미티보의 평온함을 여유 있게 만끽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높은 곳에 오르면 산티아고가 보일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