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 동안 난리를 치면서 만들었던 영화… 어떻게 됐냐고? 만들긴 했지. 편집도 끝나고 믹싱도 대충 마무리했고. 중간에 우여곡절이 많아서 처음에 내가 의도했던 것들이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아서 아쉬워. 그래서 그냥 외장하드에 넣어두고 있지. 그냥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는 거지. 어쨌든 완성은 했으니까…
단편영화 한 편을 완성시키는 ‘산전수전’을 겪고 난 초보 감독들에게서 자주 발견하게 되는 문제점들 중 하나는 완성한 영화를 그냥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나 외장하드에 ‘방치’해 둔다는 것이다. 영화는 ‘보여 주려고’ 찍은 것이고 보여 주려면 출품해야 한다. 출품해야 본선에 오르고 본선에 올라야 수상을 맛볼 수 있으며 수상작이 되어야 비로소 작품 대접을 받으며 다른 단편들과 함께 ‘배급’되어 이런저런 영화제를 순회하면서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낯선 프로듀서의 전화 한 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같이 일해 봅시다.”
자기 작품을 비하하지 말 것
이런저런 영화제에서 응모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못 들은 척, 혹은 자기 작품의 온갖 실수들을 떠올리며 출품의 전의를 상실해 버리는 초보 단편영화감독들을 자주 본다. 그럴 수 있다. 비디오 편집과 오디오 편집을 하면서 수십 번, 수백 번 지켜본 자신의 영화, 지겹도록 본 흔들리는 카메라와 살짝 빗나간 초점들, 아주 잠깐이지만 무척 거슬리는 카메라를 쳐다보는 배우의 짧은 시선은 ‘과연 이런 작품을 출품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할 것이다. 왜 그때 저렇게 찍어 놓고 오케이라고 했을까, 후회도 될 것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쓸 만한 쇼트나 인서트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만 했던 초점이 맞지 않는 쇼트로 아직도 속이 쓰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후회와 실수들이 완성된 영화를 출품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단편영화를 심사하는 심사위원들은 어느 정도의 실수와 기술적인 문제들에 대해 관용을 갖고 있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이디어와 독창성, 기존의 관습을 갈아치우는 참신함과 같은 것이지, 프로들이 찍은 것과 같은 때깔 좋은 영상과 완벽한 영상문법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다.
설사 응모했다가 떨어졌다 한들 잃을 것이 무엇인가. 공모전 경험이 늘수록 어떻게 출품 서류를 효과적으로 작성하는지 잘 알 수 있게 되고, 각 응모전이 선호하는 영화의 특성과 종류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떨어지면 떨어지면서 얻게 되는 좋은 경험을 쌓게 되고, 운 좋게 본선에 진출하면 다음 단계의 행운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영화의 결점 때문에 기죽지 말 것! 절대로 완성된 영화를 자신도 모르는 곳에 처박아 두지 말 것!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들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그때부터 각종 공모전이나 영화제 출품 계획을 세우려고 한다면 조금 늦은 감이 있다.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출품에 대한 계획을 세워 두고 있어야 한다. 작업이 다 끝나 버리고 나서 구하기 어려운 자료들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국내외 영화제와 영상공모전에서 요구하는 자료들과 보도 자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사항들은 많이 확보해 둘수록 좋다. 지역의 작은 영상제에서 상영이 되고 말지, 선댄스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나 끌레르몽페낭영화제(Clermont-Ferrand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의 본선에서 상영이 될지 완성된 이후 영화의 운명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자료가 없어서 속을 태우는 것보다 미리 확보해 두는 것이 안전하다.
다음의 사항들은 영화 제작이 진행되는 동안 챙겨 두면 좋을 것이다. 이런 사항은 감독이 직접 챙기기보다는 제작부원 한 명이 전담해서 폴더를 별도로 만들어 관리하는 편이 편리할 것이다.
1. 시놉시스, 시나리오: 실제 사용했던 시나리오와 시놉시스도 필요하고 영화가 완성된 이후 완성본과 차이가 발생했다면 완성본에 맞추어서 다시 쓴 시나리오와 시놉시스가 필요하다.
2. 스토리보드, 스틸 사진: 스토리보드는 깨끗한 원본으로 보관해 두고 스틸 사진은 매 신마다 가장 대표적인 숏을 정해서 찍어 두면 좋다. 포스터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영화의 대표 이미지를 찍어 두고 주요 배우나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중심으로 한 사진도 찍어 두면 좋다.
3. 예산, 스케줄, 로케이션 리포트, 각종 인허가 서류들: 어차피 영화 제작을 하는 동안 준비했던 서류들인데, 이를 잘 보관해 두면 나중에 영화가 배급되었을 경우 영화의 ‘가격’을 정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4. 세트 디자인, 제작한 소품 등 미술 관련 자료들: 미술이 중요한 영화인 경우 유용한 홍보 자료가 된다.
5. 예고편과 자막: 해외 영화제, 특히 전통과 규모가 보통 수준 이상의 국제 영화제 본선에 오르거나 경쟁 부문에 진출했을 경우 자주 요구하는 것들로 국내 감독들이 별로 챙기지 않는 것이다.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예고편을 만들다 보면 막상 당시의 편집자와는 연락이 두절되거나 스케줄이 맞지 않아 다른 사람이 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영화의 맛도 살리지 못한다. 편집하면서 아예 다양한 버전의 예고편을 만들어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6. 자막: 해외 영화제에 출품하려면 필수 요건이다. 보통 영어 자막이면 대부분 오케이다.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영어 실력이 월등해서 스스로 해결하면 좋겠지만 그렇더라도 나중에 영어 전문가의 검수를 받는 것을 권장한다. 자신이 없다면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영어를 전공하고 영미 문화권의 경험이 있는 이에게 부탁해야 영화 속에서 전달하려 했던 메시지와 미묘한 뉘앙스 등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7. 배우와 스태프의 스틸 사진: 미리 준비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시간이 지난 뒤 구하기 어려운 항목들이다.
8. 메이킹 영상과 주요 배우와 스태프 인터뷰: 확보해 둔다면 영화의 홍보와 마케팅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고 영화의 이미지 제고에 큰 역할을 한다.
어디부터 출품해야 할까
의외로 국내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화제와 영상제, 공모전이 열리고 있다. 이런 공모전에는 대개 상금과 부상도 주어지기도 한다. 흔한 경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단편영화 한 편을 멋지게 만들어서 전국의 영화제와 영상제를 휩쓸고 다니며 각종 상금과 부상을 챙겨서 제작비를 상회하는 수입을 챙기는 단편영화감독도 종종 본다.
국내 영화제와 영상제의 또 다른 특징은 경쟁률이 무척 높다는 것이다. 대여섯 편의 입선작을 뽑는 데 수백 편 이상이 몰리니 웬만하면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이고 이름이 좀 있는 영화제의 경우는 천 대 일을 넘기기도 한다. 뽑힌 이에게는 말할 수 없는 영광이겠지만 그만큼 탈락하는 이도 부지기수인 것이다.
이렇게 많은 영화제 중 어느 곳에 출품할까를 고심하게 된다. 우선 출품할 수 있는 영화제들의 목록을 만들어 보고 역대 수상작들을 감상해 두면 개념이 좀 생길 것이다. 각 영화제가 표방하고 있는 주제와 자신의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서로 어울리는지 판단하고 지원 자격이나 우대 사항들을 확인한다. 어떤 영화제는 특정 지역 영화인에게 혜택을 주고 어떤 영화제는 성적소수자 옹호 영화를 집중 지원한다. 이렇게 거르고 걸러서 영화제의 전통과 영향력 등을 고려한 상중하 레벨을 만들고, 각 레벨 당 두 곳쯤 지원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또 하나의 출구-해외 영화제
심사위원 입장에서 자신이 심사해야 하는 수많은 작품들 중 좀 더 관심을 갖고 보게 되는 작품은 타 영화제 입선 경력이 있는 영화들이다. 타 영화제 입선작이 엄청난 어드밴티지가 있거나 입선의 확률을 높이는 데 결정적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영화들 중 다른 곳에서 한번 검증을 거쳐 본선에 올랐거나 수상을 했다는 것은 심사를 맡은 이들에게 유의해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거나 보고 싶다는 흥미를 이끌어 낸다. 확보할 수만 있다면 출품자에게는 매우 구미가 당기는 요건인 것이다.
국내 영화제에서 입선한 경력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레드 오션이라고 할 수 있는 치열한 국내 영화제만 염두에 둘 것이 아니라 눈을 해외로 돌리면 또 다른 무한한 가능성의 블루 오션이 있다. 영어권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심지어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각종 영화제가 매달 수없이 열리고 있다. 미국의 오하이오주 소도시에서 열리는 영화제에서는 한국에서 보내온 풋 냄새나는 단편영화가 매력적이고 인상적으로 보일 수 있고, 한류 붐이 일고 있는 동남아시아권에서는 ‘한국산’이라는 프리미엄에 편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잘 찾아보면 입선 가능성이 국내에 비해 월등히 높은 영화제가 지구촌 곳곳에 있다. 이들 영화제는 한국에서 온 영화라는 특별함 때문에 혹은 ‘국제’라는 자신들의 영화제 구색을 맞추기 위해 낯선 한국 단편영화에 표를 던져 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각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은 심사기준이 국내와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 국내에서는 별로 환영받지 못했던 주제였지만 해외에서 높이 평가되는 영화도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입선 확률만을 높이기 위해서 해외 영화제를 겨냥할 것이 아니라 이런 국내와 다른 경향의 영화제나, 보다 진보적이고 지신의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와 잘 어울리는 영화제를 찾았다면 국내에서보다 나은 결과를 거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