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치 좋은 산속 마을의 선물 같은 알베르게!
셋째 날은 폴라두라 데 라 테르시아에서 벤두에뇨스 Bendueños 까지로30km 구간이다. 중간쯤인 14km 지점에 파하레스 Pajares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서 대부분 스페인 순례자들은 여장을 풀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다음 마을로 가려고 미리 식사 주문을 해두었는데 문제는 살바도르 길 안내에 나온 소요 시간보다 우리가 빠르게 걷는 편이고 길게 걷는 편이라 어제 둘째 날부터 여정에 조금씩 오차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우리는 점심 식사 시간보다 한참 이른 11시가 채 되기도 전에 파하레스 마을에 도착했고 예약 담당인 발렌티나가 마을 도착 전 식당에 전화를 했다.
"우리가 좀 빨리 도착했는데 지금 식사를 할 수 있는 건 없나요?"
"이렇게 이른 시간에 먹을 수 있는 건 없지."
"그럼 혹시 과일이나 비스킷, 빵 같은 거라도 좀 주실 수는 없나요? 저희가 점심시간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길어요. 우리는 다음 마을까지 산길을 또 가야 합니다."
"그거야, 네 상관이지. 그래서 너 지금 네가 예약한 점심 안 먹겠다는 거야?"
자세한 대화 내용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는데 발렌티나는 왠지 빈정이 상한 듯 주문한 식사를 취소하고 전화를 끊었다. 짐작으로 어제 한 주문을 당일 임박해서 취소를 했으니 식당 아줌마로부터 야단을 맞은 듯했다. 발렌티나는 특유의 퓨우-하는 한숨을 내쉬더니 우리를 쳐다봤다.
"니네 빵 있지?"
우리는 햇볕을 피해서 어느 집 대문 아래 처마밑에 배낭을 내리고 각자 갖고 다니던 바게트와 버터, 잼, 치즈 등을 꺼내서 끼니를 때웠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으나 갖고 있는 비상식량이 이제 바닥을 보이고 있어서 오늘 걷는 도중 상점이나 카페가 나오지 않는다면 당장 저녁 식사부터 좀 막막해지는 상황이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오늘 어디서 잘 건 지 지도를 꺼내고 그론세 웹을 보면서 계획을 짰는데 발렌티나가 결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오늘 벤두에뇨스까지 가자. 거기 꽤 괜찮은 알베르게가 있대. 내가 전화해볼게."
발렌티나가 알아낸 벤두에뇨스 마을은 살바도르길에서 약간 벗어난 산속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가파른 오르막 길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긴 하지만 멋진 풍경과 모두가 찬양하는 석식 제공 알베르게가 있었다. 전화를 끊은 발렌티나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예약한 사람 아무도 없대. 아직까지 우리가 유일한 손님이고 아스투리아스 가정식으로 저녁 만들어준대!"
밥은 때로 사람에게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다.
거칠고 어려운 길을 걷고 나서 맛있고 푸짐한 밥상이 주어진다면 견뎌낼 수 있는 동력이 된다. 내가 술을 마셨을 때는 하산 후 갖는 술자리가 숨이 턱턱 막히는 오르막길을 마다하지 않게 해주는 동기가 되었다.
나는 설악산이 지구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믿고 있는데 사실이긴 하지만 동시에 설악산은 매우 힘든 산이기도 하다. 특히 희운각-공룡능선-마등령-천불동 구간은 가파른 벼랑길을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해야 하고 공룡능선이 끝난 후에도 어마어마한 너덜길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져서 진땀을 흐르게 하는데 이 모든 걸 가능케 하는 것은 하산 후 속초 시내 청초수 식당이나 머구리 횟집에서 먹는 물회 한 그릇과 시원하게 말아서 먹는 소맥 한잔이었다. 오도독 씹히는 싱싱한 전복살과 향긋한 바다내음의 멍게 향, 각종 활어회가 찰지게 씹히는 쫀득한 식감과 새콤달콤한 물회 국물맛은 지난 10여 시간의 산행의 고단함을 한방에 날려버린다. 아무리 힘들고 아슬아슬한 구간도 머릿속에 물회 한 그릇을 떠올리면, 기포가 톡톡 터지는 맥주 한잔을 들이켤 몇 시간 후를 생각하면 다 견디게 마련이었다.
아스투리아스 가정식이라니! 킴과 나는 힘들었던 오전 산행과 허약한 길거리 점심 식사로 기운이 좀 빠졌었다가 저녁 식사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오르며 다시 투지가 살아났다. 그래, 가자!
그론세나 살바도르 길 가이드는 이 구간의 거리가 30km라고 했지만 우리가 걸은 실제거리는 33km였고 중간에 지나는 산간 마을구간만 잠깐 평지가 나올 뿐 계속 오르락내리락 산길의 연속이었다. 눈앞에는 계속 절경이 이어져서 펼쳐졌지만 햇빛을 맞으며 걷는 산행은 세 사람의 입을 닫게 했고 무쇠 같은 20대 초반 킴도 이따금씩 한숨을 쉬며 힘들어했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사진을 덜 찍는 편인데 특히 내 사진을 찍어달라고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셀카를 찍는 일은 거의 없다. 이쁘고 멋진 풍경이 나오면 사진을 몇 장 찍고 마는데 킴과 함께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휴대폰이 없는 킴의 사진을 자주 찍어주려고 그에게 포즈를 요구했다. 그런데 레온 이후 킴이 부쩍 사진을 사양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전까지는 여럿이 같이 찍는 사진에도 환한 모습으로 얼굴을 들이밀었고 독사진도 마다하지 않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진 찍는 일에 건성건성 응하고 괜찮다고 아예 사양하는 일도 잦아졌다.
"이제 사진 찍는 거 싫어요?"
"...음, 사진 안 찍으려고요."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킴을 쳐다봤다.
"선생님도 살 많이 빠지셨어요. 저도 많이 빠졌구요. 레온에서 형들 전화기 빌려서 엄마에게 사진을 보내드렸는데 엄마가 저더러 살이 너무 많이 빠졌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사진을 찍으면 나중에 엄마가 제 사진 보게 될 텐데 그러면 너무 마음 아파하실 것 같아요."
철부지 내 아들보다 두 살 더 많은 이 청년은 핼쑥해진 자신의 사진을 엄마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것이다. 엄마가 슬퍼할까 봐, 가족이 걱정할까 봐 셀카를 찍지 않는 청년을 보고 있으니 참 성정 깊은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힘들게 세 사람은 헉헉대며 간신히 벤두에뇨스 마을에 도착하고 조그마한 성당 앞에 있는 알베르게를 찾아냈다. 발렌티나가 전화로 도착을 알리자 홀연히 청년 하나가 나타나더니 알베르게 문을 열어주고 사라졌다. 호스피탈레라 산드라 아줌마의 아들이었다.
알베르게는 예상대로 환상적이었다. 단층 침대가 여덟 개 정도 있는 알베르게 아래층에 샤워실과 부엌, 식당이 있었는데 샤워를 하러 아래층에 내려갔던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방에는 비스킷과 각종 시리얼, 머핀, 여러 종류의 빵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그 큰 냉장고에는 탄산음료수와 맥주, 우유, 화이트 와인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서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식탁에는 넉넉한 바게트 빵과 와인이 병째로 넉넉히 차려있었고 샤워실 옆에는 세탁기가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비치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오성급 알베르게였던 것이다.
샤워를 급하게 마치고 나온 우리는 허겁지겁 간식을 먹었는데 주방 한쪽에는 싱싱한 바나나와 사과가 있어서 며칠 동안 싱싱한 과일이 아쉬웠던 우리의 마음을 끌었다. 주방에는 에스프레소 기계도 있어서 두 사람은 커피도 내려서 마셨다. 나는 하도 고단한 일정이고 몸이 무거워서 샤워 후 담요를 뒤집어쓰고 침대에 누웠는데 몸살 기운이 살짝 돌아서 갖고 있던 타이레놀 콜드를 먹고 잠깐 잠이 들었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기온이 꽤 쌀쌀했다. 처음으로 갖고 다니기만 했던 패딩을 꺼내 입었다. 레온에서 한낮 기온이 35도에 육박해서 모두들 수영장이 있는 알베르게로 몰려다녔는데 고도가 높은 산악 지역으로 들어오자 며칠 사이에 날씨는 늦가을로 바뀌어 있었다. 아세트아미노펜과 낮잠으로 기운을 차린 나는 여전히 패딩 차림으로 주방으로 갔는데 두 사람은 주방 바깥 정원의 벤치에 앉아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원에서 보이는 해 질 녘 경치는 정말 환상적이어서 나는 아내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가족들에게 알베르게에서 보이는 멋진 풍광을 보여주었다. 아내는 칸타브리아 산맥의 풍광보다는 야윈 내 얼굴을 더 놀라워했다. 얼버무리며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저녁 식사! 아스투리아 가정식 식사는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다. 닭고기와 초리소가 들어간 병아리콩 수프가 메인이었는데 곰탕 끓이는 큰 그릇에 한가득 가져다주어서 이틀째 변변한 식사를 못한 우리는 몇 번이고 퍼서 먹었다. 세 사람 중 아무도 술을 원하는 사람은 없어서 탄산 음료수만 몇 캔 씩 따 마셨다. 우리가 식사를 마칠 때쯤 주인장인 산드라가 잠깐 들렀는데 그녀는 처음에는 킴과 나를 챙기느라 영어로 얘기하다가 발렌티나와의 남자친구 얘기가 좀 심각해지고 깊어지자 스페인어로 둘이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선물 같은 밤이 지났다. 아침도 결코 소홀하지 않아서 우리는 각자 시리얼과 빵, 커피를 넉넉히 마시고 출발했는데 킴과 나는 기부제인 이 알베르게에 얼마를 줘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와 나는 사실 어마어마한 양의 식사와 간식을 먹었고 낮에 걷다가 먹을 요량으로 바나나와 사과도 한 개씩 챙겼던 것이다. 나는 통상적인 가격대로 쭉 우리가 먹은 음식과 잠자리 요금을 계산했고 거기에 산속에 있는 알베르게이니 운반 비용과 수고비를 더 얹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까지 묵었던 어느 기부제 알베르게보다도 넉넉히 계산을 했고 킴도 내가 낸 액수만큼 따라서 냈다. 비용으로 따질 수 없는 넉넉한 인심과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알베르게였다. 방명록에는 이따금씩 한글도 보였는데 한글이든 영어든 방문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알베르게의 환대에 엄청난 감사와 찬양을 하고 있었다. 나도 짧게 내 소감과 감사를 표시하고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