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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May 03. 2024

나도 스퍼트라는 걸 해 보았다 1

2024 서울하프마라톤

4월 28일에 열리는 서울 하프마라톤을 위해 뭘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니 막상 떠오르는 게 없었다. 

풀코스 마라톤을 위해서는 장거리 연습도 하고 빠르게 뛰다가 천천히 달리기를 반복하는 인터벌 훈련을 했었다. 그리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을 따라서 오르막이 있는 트레일러닝 코스에서 달려보기도 하는 등 이런저런 유형의 연습이 좋다길래 따라 해 봤었는데, 이미 하프 마라톤을 두 차례 경험해 본 나에게는 20km를 달리기 위해서 꼭 해야만 하는 훈련이 있다기보다는 그저 일상처럼 꾸준히 달리고 부상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았다. 


나는 평소 일주일에 3회 정도 달리는 편인데 한 번에 최소 10km를 달리고,  대회를 앞두고 있거나  아주 가끔씩 컨디션이 좋을 때는 20km 이상을 달린다. 그동안 생긴 좋은 습관은 달리기를 마친 후에 스트레칭을 잊지 않는 것과 저녁때 뉴스나 야구 경기를 보면서 폼 롤러를 이용해서 허벅지와 종아리, 엉덩이의 근육들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제 부상이 생기는 빈도는 많이 줄어들었고 뛰고 난 후 회복도 빨라졌다. 


'러너스 하이 runner's high'라는 얘기를 한다. 달리면서 느끼게 되는 희열, 쾌감 같은 거라고 하는데 나는 아주 오래전 군 훈련소에서 이걸 처음 느껴본 적이 있다. 

훈련으로 일과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끝내면 휴식이 있는 날도 있지만 가끔씩 교관들은 별 이유도 없이 얼차려라면서 연병장을 달리게 했다. 동기생들과 함께 연병장을 뛰는데 키가 큰 편이었던 나는 선두 그룹에서 달리게 되었다. 대부분의 동기생들은 저녁 식사 후 휴식도 하지 못한 채 또 구보를 하는 것에 불평을 하고 힘들어했다. 나도 비슷한 마음이었는데 어느 날인가는 연병장을 몇 바퀴 돌면서 흐르던 땀이 멎고 숨통이 터지면서 달리는 것에 재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숨도 차지 않고 속도도 더  빨라져서 같이 뛰던 동기들이 제지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무리에서 치고 나가서 혼자서 꽤 빠르게 달렸을지도 모른다. 그날 구보를 마치고 몸을 씻으면서 내가 방금 무얼 한 건가 생각해 보니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중에 '러너스 하이'라는 말을 알게 된 후 생각해 보니 그때의 내가 아마 그 상태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들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러너스하이를 얼마 전 동네 달리기 모임에서 여럿이 함께 훈련을 하다가 또 한 번 느끼게 되는 일이 있었다. 

평일 저녁 시간에 있는 훈련은 동탄 센트럴파크 트랙에서 두 바퀴 정도 뛰면서 몸을 풀고 곧바로 여울공원까지 달려갔다가 돌아오는 7km쯤 되는 코스로 그룹별로 모여서 달렸다. 우리 모임에서는 실력별로 1, 2, 3팀으로 인원을 나누어서 훈련하는데 내가 속한 그룹은 가장 속도가 느린 3팀으로 앞의 두 팀과는 달리 여성이 많다는 특징이 있었다. 경험이 많은 여성분이 리드를 맡고 서너 명이 함께 뛰었는데 같은 그룹이어도 속도가 조금씩 달라서 다시 센트럴파크 트랙으로 돌아와서는 일찍 온 사람은 알아서 더 뛰어서 10km를 채웠다. 늦게 돌아온 경우에 훈련시간 한 시간이 다 되었다면 트랙은 돌지 않고 다 함께 마무리 체조를 함께 하고 마치는 식이었다. 

7km를 뛰고 센트럴파크로 돌아와 시계를 보니 10km를 채우려면 얼마 안 남았길래 나는 트랙을 몇 바퀴 더 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두세 바퀴쯤 트랙을 도는데 평소 같으면 이때쯤 숨이 차거나 속도가 떨어지곤 하는데 이날은 신기하게 힘이 안 들고 속도를 더 빠르게 뛸 수도 있겠다는  싶은 느낌이 들었다. 

대회에서 제공한 내 기록
마라톤 온라인에서 제공한 동영상에서 내 모습을 캡춰했다

그렇게 더 달렸다. 

이제 달리기 모임 사람들은 모두 그룹별 훈련을 마치고 다시 모여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팀장의 구령 아래 마무리 체조가 시작되었는데도 나는 계속 달렸다. 그렇게 몇 바퀴를 달리는 동안 체조는 마무리에 들어갔고 어쩐지 사람들이 계속 달리는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웬지 눈치가 보여서 그만 뛰고 체조하는 무리에 섞여 들었다. 

아쉬웠다. 하지만 잊고 있었던, 그리고 신기한 느낌의 러너스 하이를 체험했다는 것이 기뻤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날 내가 달렸던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여성 리더는 처음에는 무척 천천히 달렸다. 무려 6분이 넘는 속도였다. 그렇게 느리게 뛰는 것은 정말 편안하고 부담이 되지 않아서 말 그대로 '살방살방' 뛰며 여울공원까지 갔는데 돌아오는 길에서도 속도는 거의 비슷했으나 약한 오르막 길이 있었다.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오르막이라고 쳐지지는 않았고 노작공원 부근에 왔을 때는 막 숨통이 터지기 시작했다. 숨이 차지 않는 것이다. 다시 센트럴파크 트랙에 들어섰을 때도 전혀 지치지 않던 내 속도는 5분 초반대였고 마지막 트랙에서는 4분대로 진입하기도 했다. 

평소 기록보다 빨리 달리고 있는데도 전혀 힘이 들지 않고 오히려 쾌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짜릿한 느낌이었다. 


나는 꼭 기억해 두기로 했다. 

시작은 천천히 5분 후반에서 6분대로 뛰다가 중반 이후로 호흡이 편안해지면 속도를 조금씩 올려보자. 


이후로 개인 훈련에서 나는 이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달리기 초반에는 일부러 천천히 6:00 언저리의 속도로 천천히 뛰었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5:30 쯤의 속도로 시작해서 본 궤도에 오르면 5:10나 5:00의 속도로 2, 3km를 달리고 후반부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속도가 5분 후반대로 떨어져서 10km를 채우고 마치는 식이었다. 나는 훈련에서 초반에 천천히 뛰려고 자주 시계를 보면서 템포를 늦췄다. 그리고 3km가 지난 시점부터는 속도를 냈다. 어찌어찌 의도대로 훈련이 되기는 했고 이런 식으로 서너 번 더 달렸다. 


그런데 이렇게 달리는 건 왠지 좀 불편했다. 

달리면서 자꾸 시계를 봐야 했고 초반에 느리게 뛰어서 에너지가 절약된다는 느낌보다는 성가시기만 했다. 

그렇게 뛰나 그냥 내가 뛰던 대로 편한 속도로 달리기를 마치나 결과적으로 별 차이가 없었다.  초반 천천히 달리기 방법을 버리고 그냥 내가 편한 방식대로 달리기를 이어갔다. 

다만 내가 기존 방법과 다르게 취한 주법은 마지막에 질주할 힘을 비축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대개의 경우 나는 내가 정한 훈련의 끝자락, 즉 골인 지점이 다가오는데도 그냥 느려진 속도로 달리기를 마쳤었는데 몇 번의 훈련에서는 마지막 골인 지점에서는 남아있는 힘을 모두 쏟으며 속도를 올려봤다. 같은 식으로  반복해 보니 어렵지 않게 느껴졌었고 그런 질주 한차례가 쌓이면서 기록을 좋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후반 질주를 위해서는 달릴 때 힘을 조금 남겨두어야겠구나 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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