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야식은 너다
탱탱하고 쫄깃쫄깃한 족발.
각종 한약재와 간장, 마늘과 함께 오래 끓여낸 족발은 따뜻하게 먹어도, 차갑게 먹어도 매력적이다. 먹다 남긴 족발은 볶음밥에 넣거나 양념 족발로 해 먹어도 거부감 없이 맛있다. 오독한 무말랭이와 새우젓을 얹어서 크게 한입 쌈 싸 먹고, 뼈에 붙은 살은 야무지게 뜯어먹는 재미도 있다. 조금 느끼하다 싶을 때쯤 새콤 매콤 막국수와 함께하면 이토록 완벽한 음식이 있을까 싶다.
겨울엔 보쌈과 함께 갓 버무린 김치와 함께 할 때 빠질 수 없고 여름이면 알싸한 겨자에 버무려진 냉채족발도 별미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마늘족발, 얼얼하게 매운 족발, 매콤 달콤 양념족발과 숯향이 코를 자극하는 직화족발까지 그 종류도 꽤 다양하다.
귀한 발요리(?)
족발의 시작을 찾기 위해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에는 '족편'이라 불리는 음식이 있었다. 돼지의 족(足)을 삶아 식히면 젤라틴이 굳어 투명하게 되는데, 그것을 썰어 먹는 음식이다. 지금의 편육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양반들은 잔칫상이나 제사상에 올릴 만큼 귀했고, 서민들도 명절이나 큰일이 있을 때만 맛볼 수 있는 특별식이었다. 지금처럼 간장 양념에 푹 졸인 형태는 아니었지만, 이미 돼지 발을 삶아 먹는 전통은 시작되고 있었다.
지금처럼 윤기 자르르 흐르는 족발은 한국전쟁 이후 피폐한 거리에서 다시 태어났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군 부대 주변에 버려진 고기 부산물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돼지족. 그 버려진 족을 주워 깨끗이 삶고 냄새를 없애기 위해 간장과 각종 향신료를 넣어 졸여 팔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아는 그 족발의 원형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지금 맛있게 먹는 음식의 대부분은 전쟁을 이후로 생겨난 음식이 참 많은 듯하다.
장충동 족발 골목
족발 하면 장충동, 장충동 하면 족발이다. 그래서 족발집 이름에 '원조 장충동'이 많이 붙어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장충동엔 한국전쟁 때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이 개업한 식당이 많다. 장충동엔 일본인들이 살다가 남기고 간 집이 많았는데 이곳에 정착해 이북 음식점을 세웠다. 그 실향민들이 팔기 시작한 음식이 '돼지 족조림'인데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서 결혼식이나 명절등 중요한 날 먹는 대표 음식이었다.
원래의 돼지 족조림을 이북식대로 하면 더 복잡하고 어려운데 이 과정을 간소화해서 만든 것이 지금의 족발이다. 돼지 족조림과 족발을 만들 때 들어가는 기본 재료는 비슷하지만 돼지족조림은 장국과 돼지 족을 따로 조리한다. 그 이후 삶은 족을 끓는 장국에 넣는데, 처음부터 족발을 넣고 삶는 지금의 조리법과의 차이점이 바로 이것이다.
1960년대 들어서 국내 양돈 산업이 발달하면서 바로 옆동네, 마장동의 축산시장의 규모가 커지게 된다. 장충동 바로 옆에 좋은 돼지고기 공급처가 있으니 늘 신선한 돼지 족발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1963년에 문을 연 장충체육관. 그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체육시설로 국내의 큰 스포츠 행사가 많이 열렸다. 그 행사를 보러 온 많은 사람들은 경기를 관람 후 장충동 골목에서 배를 채우고 가면서 장충동 골목은 점점 족발의 성지가 된 것이다.
다른 나라의 족발요리
족발을 먹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다. 조리법이 약간 다를 수 있지만 모두 맛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먹어보고 아는 맛은 슈바인학스 뿐이지만, 다른 나라의 족발요리도 궁금해서 찾아봤다.
이름 그대로 다섯 가지 향신료(팔각, 계피, 정향, 회향, 진피)로 맛을 내는데, 윤기가 번들거리는 모양은 한국의 족발과 가장 비슷하다. 다만 중국식은 더 달고, 더 진한 맛이다. 역시나 잔칫날 상 위에 오르는 고급 요리로 부와 복을 상징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새해 첫날, 오향족을 먹으면 한 해의 행운이 들어온다고 믿는다.
맥주로 유명한 독일의 맛있는 안주로 먹는 독일식 족발. 우리나라처럼 삶는 게 아니라 오븐에 넣어 굽다 보니 껍질이 바삭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칼로 잘라내면 안쪽 살코기는 촉촉하니, 겉바속촉 족발이다. 곁들여 먹는 소스도 머스터드와 새콤한 사우어크라우트(양배추 절임)로 느끼함 없이 질리지 않게 먹을 수 있다. 독일인들에게는 '가을 맥주 축제의 꽃'같은 존재다.
이름만 들어도 벌써 바삭하다. 말 그대로 돼지 족을 통째로 튀겨낸 요리다. 촉촉하고 야들야들한 족발만 먹던 우리들에게는 상상이 잘 안 간다. 역시나 족발의 기름짐을 상쇄시켜 주는 식초와 간장으로 만든 디핑소스에 찍어먹는다.
족발을 달달한 간장 양념에 졸여 밥 위에 앉은 요리다. 얼핏 한국식 족발 덮밥 같기도 하다. 하지만 향은 그렇지 않다. 시나목과 팔각, 마늘이 만들어내는 달콤한 향이 감싼다. 거기에 고수와 반숙 달걀 하나가 올라가면 완벽한 한 그릇이 된다. 포장마차에서 흔히 보는 음식이지만 맛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인터넷에서 생족발을 저렴하게 팔길래 직접 해 먹어 볼 생각에 구입해 본 적이 있다. 사 먹는 족발이 비싸다고 느껴져서 내가 해 먹으면 엄청난 이득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엔 역시 정성과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걸 또 깨닫게 되는 계기만 되었다.
오랜 시간과 들어가는 재료 하나하나에 따라서 맛의 차이가 많이 달라지다 보니 정말 어려운 요리 중 하나라고 느껴졌다. 역시 만드는 건 전문가에게 맡기고 나는 맛있게 먹는 게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