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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안 XianAn 스님 Jan 01. 2024

대승으로 가는 길
(Feat. 아메리칸 대승)

십여 년 전 선 명상을 배우기 위해서 처음 노산사에 갔을 때, 영화 스님을 만났습니다. 그곳에서 마음의 괴로움을 잘라낼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얻었습니다. 그 후 매년 선칠(禪七, 중국 정통선 수행법으로 한국의 안거와 비슷)을 시작하면, 사업과 개인 활동을 모두 멈추고 절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 영화 스님은 몇 명밖에 되지 않는 제자들을 데리고 겨울 선칠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다리가 아픈 것도,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나를 괴롭히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온종일 들여봐야 하는 것도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혼자 부엌에서 비몽사몽 앉아서 맥심 한잔하려고 앉아있었는데, 영화 스님이 부엌에 물을 드시러 들어왔습니다. 스님이 날 보더니 천천히 걸어와서 옆에 앉았습니다. 그는 다정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제가 영화 스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스터, 저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착하지도 않고, 특별히 나은 사람도 아닌데, 선을 배워서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좋은 걸 배울 수 있는 건 특권이 아니라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바깥세상에 나가면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걸 모르고 그냥 살아가는구나'라며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런 게 있다는 걸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영화 스님은 따뜻한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인원도 부족하고, 준비가 덜 돼서 여기 이렇게 조용히 수행하고 있지만, 그래 네 말이 맞다! 훗날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

공원에서 참선, 2015.

공원에서 선 명상

얼마 후 나는 영화스님에게 밖에서 명상 모임을 해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스님은 흔쾌히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2015년 ‘공원에서의 참선(Chan meditation in the park)’이란 모임을 만들어서 매주 가까운 공원에서 명상을 했습니다. 영화 스님의 지침대로 나이, 인종,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광고문을 만들어서 페이스북, 미트업 등 여러 인터넷 플래트폼에 올렸습니다. 그래서 '찬 인 더 파크'에 명상을 배우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특히 중남미계 미국인과 천주교가 많이 왔는데, 그 외에도 미국인, 인도인, 중국인, 개신교인, 이슬람교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 배경이 다양한 학생들은 질문도 다양했고, 나는 평일에도 거의 매일 노산사에 찾아가서 영화 스님에게 답을 구해야만 했습니다. 영화 스님은 불교, 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차근차근 모두 대답해 주셨습니다. 불교 용어도 잘 모르고, 명상도 잘 못하는 저에게 스님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많은 걸 가르쳐주었습니다. 아는 것은 별로 없었지만 영화 스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어떤 질문이든 답해보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선 명상 모임을 하면서 힘들어지면, '정말 나는 아는 게 하나도 없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공원에서 참선, 2017.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모임을 계속해나갔습니다. 하루는 노산사에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영화 스님이 여러 제자들에게 "샤나(출가 전 이름)가 하고 있는 이 공원에서 선명상은 겉으로 보기에 하잘것없어 보이겠지만, 사실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선 명상의 바른 기반을 세우고, 사람들이 평생 쓸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영화 스님이 왜 이런 말씀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모임을 지속하기 힘들고 부정적인 생각들, 자신감이 부족한 생각들이 일어나면, 스님의 그 말씀을 되새기며, '영화 스님이 그런 말씀을 했다면 다 이유가 있겠지! 그러니 계속해야 돼.'라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당시에는 합당하고 할 만한 타당한 생각이라 여겼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런 생각들은 뿌리가 깊은 우울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잊고 지내던 옛 학생들에게 종종 이메일이나 문자를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감사 카드를 우편으로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먼 곳으로 이사를 가서 더는 모임에 올 수 없지만 어려울 때마다 선 명상으로 잘 극복해 나갈 수 있다며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옵니다. 어떤 사람은 감사하다는 짧은 카드와 20달러 지폐를 우편 봉투에 넣어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모임에 자주 빠지고, 결가부좌가 힘들다고 말할 때, 노력과 시간을 들여서 모임을 이어나가는 것에 회의적일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 모임이 누군가에게는 진정한 도움과 변화를 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힘을 얻어서 나아갑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어려운 불교 용어를 들이밀면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불교의 가르침과 선(禪)을 통해서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을 인지하고 버려나가면, 누구나 더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고,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혼자였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저에게 늘 영화 스님이 계셨고, 스승님이 보여준 길을 믿고 따라왔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허물과 오류를 직면하고픈 욕망과 용기가 있다면, 이 길에 들어설 수 있게 도와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더 행복하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한국에서 제가 걸어온 이 길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줄 기회가 생겨서 진심으로 기쁩니다. 단순히 개인적인 기쁨, 쾌락, 편안함과 이익만 좇는 대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선을 통한 기쁨과 변화를 나눌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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