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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안 XianAn 스님 Nov 07. 2024

렛고

제가 배운 선 명상은 미국에서 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배우고 경험한 모든 것은 서양에서 널리 유행하는 마음챙김이나 위빠사나와 달리 오히려 한국의 전통불교와 더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선 명상은 중국의 가장 오래된 선가인 위앙종의 조사인 선화상인으로부터 유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도량에는 유난히 한국인이 많습니다. 우리 승가에는 반 이상이 한국인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루 마운틴 템플” 즉 한자로 치면 “여산사廬山寺”라는 작은 절이 있습니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절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릴만큼 건물도 작고, 장엄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평범한 캘리포니아 남부지역의 거주지역 속에 숨겨져 있는 아주 작고 볼품없는 절입니다. 저는 거기서 스승님을 만났습니다. 명상을 배우려고 찾아간 그곳에서 영화스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처음 영화 스님을 만났을 때, 저는 영화스님의 말씀이 너무나 흥미로워서 주말만 기다려졌습니다. 보통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면 모두들 자기가 아는 걸 뽐내고 싶어하고, 가르쳐주고 싶어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더 옳은지 증명하느라 상대방이 뭘 물어보는지는 관심도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 스님은 정반대였습니다. 내가 알고 싶어하는 것을 시원하게 해소해줬습니다. 

하지만 나는 더 배우고 싶었습니다. 뭔가 더 많은 게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절에 가야만 했습니다. 배울 게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느꼈습니다. 매일 아침 앉아서 명상을 하면, 궁금한 것이 자꾸 생겼습니다. 밖에서 춤추고, 먹고 마시고, 쇼핑하는 그런 즐거움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한국에는 훌륭한 수행자들이 많습니다. 정진하고 싶어합니다. 이제와서 고백하지만 저는 결가부좌로 앉는 걸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냥 영화 스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영화 스님이 해주시는 말씀에 배고팠습니다. 

수행하면서 맘속에 반감, 의심, 꺼림, 회피 등 온갖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날 괴롭혔지만, 스승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얻기 위해서 계속 밀고 나가야만 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상 수행을 열심히 한다면, 반드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계속 몸으로 실행하고 밀고 나간다면 괜찮습니다. 원래 수행은 어렵습니다. 계속 더 어려워집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서 괜찮아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도, 결국엔 어려움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겁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요즘 같이 편한 세상에 누가 이런 말도 안되는 걸 하겠나요? 결가부좌처럼 이상한 자세로 앉아서 참으라고 합니다. 절에 가면 이상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계속 참고 견디라고 말합니다. 집에서 혼자 편하게 배달음식 시켜서 즐거울 수 있는데, 왜 그런걸 하겠습니까? 그래서 요즘 사람에게 수행은 어렵습니다. 

출가 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제가 지내던 청주 보산사에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위앙종의 수행법이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승님이 저에게 가르쳐준 것과 마찬가지로 결가부좌로 앉으라고 말해줬습니다. 그때는 심심하고 시간도 많아서 오는 사람마다 붙잡고 앉아서 3시간동안 결가부좌로 앉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앉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때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금도 같이 수행합니다. 

요즘은 선 명상 학생들이 아주 많습니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 유럽에도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사람들에게 천천히 조금씩 시간을 늘려보라고 가르칩니다. 선명상으로 이점을 경험하기 전에 너무 일찍 그만두는 사람이 없게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더 오래 열심히 할수록 그건 누구에게 좋을까요? 저는 급할게 없습니다. 이제는 학생들에게 알아서 선택하라고 말해줍니다. 그러면 옆에 앉아있던 오래된 학생이 "와우! 내가 시작했을 때는 무조건 1시간 앉으라고 했는데!"라며 놀랍니다. 다시 말하지만 여러분이 노력한 만큼 얻어가는 겁니다. 더 많이 참을수록, 더 노력할수록, 더 빨리 좋은 걸 얻어갈 겁니다. 각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 겁니다. 아주 단순한 문제입니다. 더 많이 참고 노력할수록, 그만큼 더 빨리 도달하는 겁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선 학생이 시작할 때 명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깨달음을 위해서 수행하는거죠!", "부처님 법에 맞춰서 살고 싶어서요.", "그냥 수행할 뿐이죠" 이런 말들은 저에게 의미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말을 어디서 읽고서 그냥 말할 뿐입니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그러면 되묻습니다. 당신에게 그게 어떤 의미인가요? 당신이 깨닫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요? 여러분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왜 명상하고 싶은가요?

만일 여러분의 목표가 뚜렷하다면 선 명상은 자기 훈련 기술이며, 그 기술로 여러분은 얻고 싶은 걸 얻는 겁니다. 차근차근 훈련하고 노력하면, 그 목표점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누구든 선 명상을 시작하면,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나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리 아프다고 도망가길 원치 않습니다.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절이 불편하다며 피하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게 진정한 수행의 장입니다. 이런 모든 걸 참으면서 내 맘속을 들여다 보는 것이 진짜 수행입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수행할 필요도 없는 겁니다. 

서양인은 명상이 그냥 앉아서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이라 착각합니다. 그건 명상의 아주 작은 이득일 뿐입니다. 그냥 맛보기인 샘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찾아와서 저에게 틀린 질문을 많이 합니다. 어떤 명상 기법이 더 강력한 지, 능엄주는 하루에 몇 번 해야할지 등등 그런 것만 물어봅니다. 물론 그런 것도 처음엔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수행은 그냥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명상하면서 기 흐름을 느끼고, 그걸 조정하는 법을 익힙니다. 치유하는 능력을 개발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통이 열려서 타인의 얼굴만 봐도 어떤 병이 있는지, 뭐가 문제인지 이해합니다. 이런 것도 다 명상의 한 부분이지만, 그것이 절대 전부가 아닙니다. 그건 그냥 기술적인 측면일 뿐입니다. 

명상하면서 자신이 더 특별하거나 낫다고 느낀다면, 그건 아직도 갈 길이 남았다는 증거입니다. 여전히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면, 거긴 아직 자아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은 나보다 나은 사람들 사이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의 부족한 면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최고인 그룹에서 수행하면 나의 결점, 한계 이런 것들을 보기 더 어렵습니다.

선 명상을 하건, 불교 공부를 하건 목표를 향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진전이고, 발전입니다. 그리고 작은 목표에 도달했다면 더 큰 목표를 찾는 겁니다. 그래야 계속 발전할 수 있습니다. 발전이란 뭔가요? 발전이란 우리가 할 수 없었던 걸 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발전을 향해 가는 길에 많은 장애를 겪어야 하는 겁니다. 장애를 겪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면서 발전할 수 있는 겁니다. 발목을 잡는 어떤 것을 버려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릴 옭아매고 있는 걸 놓아버려야 합니다. 속박하는 것을 찾아내서 렛고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발전의 핵심입니다. 더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장 원하지만 버려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큰 시험을 치루려면 놀고 싶은 걸 참아야 합니다. 불필요한 것을 버려야 합니다. 필요하지 않은 짐은 놓아버립니다. 어떤 걸 얻기 위해서, 어떤 특정한 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얻고 싶은 게 있을 때 그에 대한 대가가 있는 겁니다.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집착이 있습니다. 바로 "편안함"입니다. 이건 수행의 진도가 어느 정도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행하면서 늘 "편안함"이란 집착을 직면합니다. 저는 10년 넘게 선 수행을 했지만 아직도 못 버린 게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고백합니다. 밤이 오면 편안히 누워서 자고 싶습니다. 결가부좌로 앉으면 쑤시고 아프니 기분이 좋진 않습니다. 이렇게 각자 개인마다 다른 편안함에 대한 집착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몸이 있는 한 이런 걸 겪습니다. 이것을 불교 용어로 “업보(Karmic retribution)”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앉아서 다리와 허리, 골반의 아픔을 견디면, 업보를 조금씩 갚을 수 있는 겁니다. 실제로 업보의 빚을 조금씩 갚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건강해집니다. 우리기 업보의 짐을 줄여나갈수록 진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 명상에서 발전이라는 것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분이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원하는 목표에도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다리 아픈 거 싫어! 말도 안 되는 짓이네”라며 도망가면, 여러분의 질병은 그대로 있을 겁니다. 다리 아픈 건 피했지만 여전히 다른 방법으로 갚아야 합니다. 약값을 내야하고, 의사를 만나봐야 합니다. 직장도 못 나갑니다. 그게 다 고통입니다. 매일 명상하면, 다리는 아프지만 조금씩 갚아가는 겁니다. 업의 빚을 줄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사실 피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니 저는 명상하는데 특별한 기술을 가르쳐주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의 스승님도 그랬지만, 저도 새로운 걸 개발하거나 만들어내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미 있었던 것을 알려줄 뿐입니다. 여러분이 명상하면 남보다 우월한 인물일 될거라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건 그냥 작은 이득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명상하면 그냥 자연스레 생기는 일입니다. 그건 너무나 사소합니다. 더 큰 그림을 보십시오. 명상하거나, 불경을 읽거나, 절하면서 수행하면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어떤 것에 대한 통찰이 생기고, 이해가 생기거나 뭐가 보입니다. 그건 다 그냥 사소한 이득일 뿐입니다. 너무 흥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욕심을 부릴 필요도 없는 겁니다. 선의 근본은 자신의 한계에서 스스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뭐든 다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한계란 무엇인가요? 우리에겐 세 가지 것으로 인한 한계가 있습니다. 바로 탐, 진, 치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탐하는 마음, 화나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으로부터 자유롭나요? 우리는 모두 탐하는 생각도 있고, 화도 나고, 멍청한 생각도 일어납니다. 그래서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 명상의 기본입니다. 우리가 탐, 진, 치라는 자기 스스로의 한계를 초월하려면 뭘 해야 하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아상 밖으로 향상하는 길입니다. 큰 그림을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화를 내지 않을까요? 탐하지 않을까요? 그건 아주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가진 게 훨씬 더 많다면, 유혹당하지 않을 겁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식탐은 나빠"라고 하지 마십시오. 훨씬 더 많이 갖게 되면 자연스레 배고프지 않습니다. 덜 탐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무엇으로도 유혹당하지 않습니다. 훨씬 더 부자면, 훨씬 더 나은 사람이면 화도 안 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복이 아주 많으면, 내면에서 진짜 그렇게 느낍니다. 억지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어떤 걸 진짜로 해서 수행하고 복을 지으면 그렇게 됩니다. 질투를 느끼는 사람이 와서 유혹하면 그냥 줘버릴 수 있습니다. 너무 부자라서 그냥 줘도 아무렇지도 않게 됩니다. 그게 진정한 해방이고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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