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그냥 멍 때리는 거 아닌가요?"
이 질문은 단순하지만, 명상에 대한 현대인들의 오해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말입니다. 특히 선명상을 겪어보지 못한 이들은, 그냥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과 구분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명상은 결코 멍한 상태에 머무는 일이 아닙니다.
선명상의 핵심에는 '지관(止觀)'이 있습니다. '지(止)'는 산란한 마음을 멈추는 것이고, '관(觀)'은 한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멍 때리기는 겉으로는 고요해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미세한 생각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당사자는 인식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수많은 미세한 망상이 무의식적으로 흘러가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선명상은 목적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생각을 억지로 끊으려 하지도 않고, 하나하나 쫓지도 않습니다. 그 대신, 여러 전통적으로 증명된 명상법, 예를 들어 부처님의 명호를 염불하거나, 진언을 외우거나, 절을 하거나, 경전을 독송하거나, 화두에 집중합니다. 이런 여러 방법을 통해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모이면, 저절로 생각이 줄어들고, 삼매(三昧)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침을 따르면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그리고 삼매에 들어갔을 때, 비로소 이전에 자신이 얼마나 많은 생각 속에 빠져 있었는지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선명상은 의식적으로 생각들을 알아차리려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생각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생각하는 상태가 되므로, 삼매에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대승불교에는 "반문문자성(返聞聞自性), 듣는 것을 돌이켜, 자성을 듣는" 수행법이 있습니다. 이는 외부의 소리를 듣는 귀를 거꾸로 돌려, 듣고 있는 '나'의 본성을 듣는 것입니다. 나의 소리에만 집중하고, 다른 모든 소리는 무시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생각에 반응하는 것을 멈추고, 의식을 내면 깊은 자리로 되돌리는 수행이 바로 선명상입니다.
멍 때리기에는 방향이 없습니다. 반면, 선명상은 뚜렷한 길과 체계적인 방법이 있으며, 그 결과로 안정된 마음과 지혜가 자랍니다. 그것은 단순한 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그러니 멍하니 앉아 있는 것과 선명상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한 생각에 마음을 모으는 반복된 훈련을 통해, 우리는 산란했던 마음이 서서히 잦아들고, 고요 속에 맑은 통찰이 일어나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이 가리키는 참된 수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