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후 영화스님께서는 저에게 유럽 지역에서 선명상을 지도해 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그렇게 2024년, 오랜만에 유럽 도반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함께 수행하던 도반이었지만, 이제는 출가 사문으로서 선과 대승불교를 유럽에 소개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입니다. 마침 한국에서 함께 정진하던 선명상반 학생들도 동행해 주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포르투갈 리스본을 시작으로 스페인 마드리드, 독일 함부르크에서 원데이 워크숍과 짧은 리트리트(미니 선칠)를 열었습니다. 유럽 학생들은 각자 비용을 모아 공간을 대여하고, 행사 준비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리스본에서는 신학교 강당을 대여해 3일간 비교적 짧은 선칠 수행을 진행했습니다.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등지에서 온라인으로 꾸준히 수행해 온 학생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리스본으로 모였습니다.
좌선이 익숙하지 않은 유럽인을 대상으로 정식 선칠처럼 새벽 3시부터 밤 12시까지 좌선을 이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선명상의 원리와 대승 수행의 핵심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루 네 차례 담마 토크를 진행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질문이 매우 많았고, 배움에 대한 열의가 컸습니다.
유럽의 명상가들은 대부분 호흡명상, 위빠사나, 젠, 마음챙김, 현존 명상 등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절, 염불, 다라니 수행은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하루에도 여러 차례 함께 독송하며 그 의미와 원리를 설명했습니다. 결가부좌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매일 조금씩 연습하도록 권했고, 끝으로 선지식, 육바라밀, 복, 회향, 공덕, 타력 수행과 같은 대승의 개념도 가르쳤습니다.
2025년에는 리스본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에서도 주말 리트리트를 기획했습니다. 두 번째 방문 당시 우리는 마드리드에서 약 40분 떨어진 신학교에서 2박 3일 리트리트를 처음 시도했습니다. 몇 명이 참여할지 예측할 수 없었지만, 1년 전 “살라다나(Saladana)”라는 마음챙김 센터에서 열렸던 원데이 워크숍의 참여자 상당수가 다시 참여했습니다. 특히 그때 “좋은 느낌을 좇으면 정체한다”고 설명드렸을 때 통역을 맡았던 나초는 혹시 센터에서 쫓겨날까 걱정했다고 했지만, 오히려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명상 수행의 정체감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라틴 문화권에서는 가족, 사랑, 맛있는 음식, 와인, 즐거운 만남과 같은 세속적인 기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서가 강합니다. 천주교적 정서가 깊이 자리 잡고 있어 영성도 현생의 기쁨과 사랑을 강조합니다. 그러니 누구도 이들에게 수행은 불편함을 견디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단호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색계(色界) 경계에 머무르게 되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이를 자각하지 못하면 명상을 20년, 30년 지속하더라도 늘 같은 자리에서 머물 수 있습니다. 명상이나 영적 수행에서 강렬한 환희를 경험한 뒤 정체가 찾아오면, 그 원인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여러 명상 지도자와 센터를 반복적으로 찾아다니게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든 진정으로 발전을 원한다면 언젠가 길은 반드시 열립니다. 선은 국적과 문화를 뛰어넘습니다. 열린 마음이 있다면 종교 또한 장벽이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