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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Jul 31. 2022

잠든 엄마의 코에 손가락을 대고 숨 쉬는지 확인하는 일

다섯 살 무렵으로 기억한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엄마의 죽음이었다.(미안해요. 아빠)


나를 지켜주고 보살피는 존재인 엄마의 부재는 상상만으로도 혼절할 것 같은,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 우주가 사라질 것 같은 공포를 느끼게 했다. 정신의학에 대한 지식이 생긴 지금 돌이켜보면 공황 발작에 가까울 정도의 증상이었던 것이다. 그 공포 때문에 나는 거의 매일같이 엄마보다 먼저 잠든 척하며 눈을 감고 있다가, 엄마가 잠이 든 것 같은 순간이 오면 귀를 기울여 숨소리를 엿들었다.


간혹 엿듣던 엄마의 숨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때면 살며시 몸을 일으켜 나의 다섯 살 먹은 작은 손가락을 잠든 엄마의 코에 가져갔다. 작고 고요한 날숨이 손가락 살갗에 닿는 게 느껴지면 그제야 안심하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 엄마의 숨소리를 들었다.


어느 날 낮인가에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죽으면 안 돼요."

(그러고 보니 엄마, 죽는다는 게 뭐예요?라는 물음은 해본 적 없다.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말하고, 혹은 말하면서 나는 한참을 울었다. 엄마는 웃으며 우는 나의 등을 토닥였다. 왜 우는 나를 웃으며 달랠까. 의아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그 마음을 이해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내 장래희망은 과학자였다. 엄마를 죽게 하지 않는 약을 개발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 과학자가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하버드, 스탠퍼드 등과 같은 대학에 들어가면 그런 과학자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막연한 상상을 펼쳤다.


돌이켜 생각하면 먹먹한 일이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서른두 살인 엄마의 죽음을 매일 밤 걱정하다니. 엄마의 죽음이 두려워 과학자를 꿈꾸다니.


시간은 많이 흘렀다. 나는 그때의 엄마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 나이가 되었다. 엄마는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 살아계신다.(아마도) 다섯 살 무렵에 시작된, 잠든 엄마의 코에 손가락을 대고 숨 쉬는지 확인하는 일은 그 시작이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 것처럼 어느 날부터인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잠자다가 숨지는 일은 흔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일까, 혹은 더 이상 엄마의 부재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던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이유를 알 수 없이 생겨나고 사라진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며 어두운 천장을 바라본다. 내 숨소리가 들린다. 나는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 그것은 어떤 과학자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만약 영생의 방법이 생긴다 해도, 그것을 선택할지 알 수 없다. 영원히 사는 것은 죽음만큼이나 끔찍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이를 먹어가며 알게 되었다.


내 숨소리가 들린다.

엄마의 숨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밤이 깊다.


나는 안심하지 않아도 잠들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잠에 빠져든다.




image soucr: https://unsplash.com/photos/Y9QnUrj-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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