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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Aug 10. 2022

남희 언니

신중하고 애틋한 그 마음

남희 언니는 오늘도 제일 먼저 강의실에 들어온 것 같다. 언니의 수업 준비는 물티슈 세장과 마른 티슈 한 장이 필요하다. 늘 그래 왔듯, 첫 번째 물티슈를 조심스럽게 한 장 꺼내어 교탁을 정성스럽게 닦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른 티슈로 남아있는 물기를 닦아낸다. 두 번째 물티슈로는 칠판 아래에 있는 분필 받침에 묻어 있는 분필가루를 닦아 낸다. 헌 분필은 버리고 새 분필을 색깔별로 두 개씩 가지런히 모아 놓는다. 작은 손가방을 열고 아직 따뜻해 보이는 음료수를 꺼내 입이 닿는 부분을 마지막 물티슈로 닦는다. 닦고, 닦고, 닦고. 


언니의 강의 준비는 언제나 이렇게 바쁘고, 정성스럽다. 일주일에 두 번씩, 귀찮을 법도 한데 얼굴에는 싫은 표정 하나 없다. 모든 몸짓 하나하나가 신중하고 애틋하다. 준비를 마친 언니가 내 옆에 앉는다. 그리고 미소 짓는다.


수업이 시작됐다. 


교수님은 교탁에 있는 음료수를 발견하곤 언니에게 눈인사를 건넨다. 언니는 수줍게 그 인사를 받아 가슴에 담는다. 교탁을 언니가 깨끗하게 닦아 놓았다는 것도 아실까? 올해 인문대학은 참 깔끔하군, 하는 생각에 그칠까. 남희 언니와 친한 나는 언니의 정성이 다른 사람의 공으로 돌아가는 것이 왠지 억울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난 후 강의실을 떠나는 교수님을 붙잡고 말했다. 


"교수님, 교수님은 남희 언니가 항상 교탁 깨끗하게 닦아 놓고, 분필도 준비 놓는 거, 아세요?"


교수님은 말없이 끄덕였다. 그리고 예의 그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고 있었다는 건지, 아니면 이제부터 잘 알았다는 건지 모르겠다. 


심리학을 강의하고 계시는 저분은 사실 시간강사다. 하지만 우리 대학의 정식 교수님들 못지않게 인기가 높고 실력 또한 인정받고 있었다. 교수님은 강의 방식이 특이한 편이다. 심리학을 공부한 소설가 김형경 씨의 '천 개의 공감'이라는 책으로 수업을 하는데, 교수님이 수업을 주도한다기보다는 학생들의 감상을 듣고 그것에 대한 토론을 하는 식이다. 심리학 관련 이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때는 판서를 통해 강의를 하신다. 


학생들이 직접 읽고 감상을 말하다 보니 때로 감정이 격해질 때도 있고 충돌하는 견해로 인해 소소한 말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수업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남희 언니는 수업 도중 눈물을 보이는 때가 많았다. 언니의 말로는 모두 자기 이야기 같아서 그런단다. 감정이입이 잘되는 언니와는 달리 나는 감상을 이야기할 때도 무미건조한 말투에 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나와 언니는 대조적이다. 그래서 더 잘 맞는 것도 같다. 


요철이 있는 조립식 가구처럼 나사가 없어도 나무망치로 땅땅 두드려주기만 하면 절대 빠지거나 틀어지는 일이 없다. 처음의 망치질이 다소 힘들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의 가구처럼 붙어 다니던 언니와 나를 보고 수근 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우린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번 학기 마지막 강의 시간. 교수님이 책을 덮었다.


"끝까지 수업을 경청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3년간 해왔던 학교에서의 강의를 마무리하고 인도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처자식은 이미 가서 현지 생활을 준비하고 있고요, 저도 곧 떠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더 좋은 강의를 위해 지금 이 자리에서 더 오래 노력해야 하고 또 그만큼 나아진 모습으로 여러분들에게 보답해야 하는데..."


강의실이 술렁인다. 안타까움에 작은 탄식을 내는 학생도 여럿이다. 나는 옆에 앉은 남희 언니를 돌아보았다. 역시. 언니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소개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남희 선생님, 앞으로 나와주세요."


언니가 숨을 죽이고 강단으로 천천히 걸어 나간다. 나도 말없이 그런 언니를 지켜본다.


"이남희 선생님은 제 수업을 처음 시작하던 3년 전부터 하나도 빠짐없이 들으셨어요. 그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정성스레 수업 준비를 해주시고 음료수도 가져다주셨습니다. 죄송스러웠던 제가 몇 번이고 사양했지만 한사코 괜찮다 하시고 계속해오셨어요. 이 자리를 빌려 이남희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갓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학 강단에 서게 된 저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죠? 학업에 대한 열정은 나이에 상관없다는 것을 몸소 여러분께 보여주고 계신 겁니다. 제가 떠나더라도 계속 학업을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이남희 선생님, 학생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남희 언니가 힘겹게 입을 뗀다. 조금이라도 맘이 흐트러지면 눈물이 흐를까 봐. 그 작은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본 사람은 나뿐일까.


"안녕하세요... 이남희입니다. 우리 선생님이 저를 부를 때 '선생님'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선생님은 아니에요. 그냥... 저는 3년 전에 평생교육원을 통해 우리 선생님의 수업을 듣게 된 이남희입니다. 나이는 오십이 넘었어요. 저는 그냥 우리 선생님 수업이 너무 좋아서 또 듣고, 또 듣고... 그랬어요. 제가 수업에 함께해서 불편하셨던 분에겐 죄송합니다. 저는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 여러분과 함께해서 참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언니가 마른침을 꼴깍, 삼킨다. 아랫입술이 달싹거린다. 더 이상 참지 못하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언니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푹 숙인다. 나는 그런 언니를 보다가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바보 같은 언니. 바보, 바보. 언니의 작은 입이 다시 열린다.


"선생님... 가지 마세요...

'선생님이 가시면 저는 어떻게 해요.'


마지막 말은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맨 앞에 앉았던 내게만 보였다. 입모양으로, 내게만 전해오는 그 애틋함으로.




image source: https://unsplash.com/photos/hes6nUC1M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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