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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Mar 23. 2021

익선동 골목


익선동 골목



너무 많아서 다 펼쳐볼 수 없는
슬픔을 접어서 포켓에 넣고
골목길을 걷는다


기둥에 매달린 노란 가로등은
어둡고 좁은 길 위로 가물거리고
마음은 정처 없이 떠돈다


낡은 한옥 대문들은
차가운 공기를 가슴으로 밀어내며

길 양쪽으로 굳게 잠겼다


동행인은 비틀거리며
길어졌다 짧아지기를 반복하는 그림자뿐


그때 왜 그 말을 했을까
차라리 술자리를 갖지 않는 것이 좋았으리라


술기운은 오한을 일으키고
밤은 안개를 불러낸다


그렇게 습기로 검은 골목이 더 눅눅해져야
막연한 비애도 덜 낯설어진다


골목의 나이 든 주인들이 떠나고
젊은이들은 담장을 통유리로 바꾸었다
작은 마당과 방은
카페와 레스토랑과 액세서리 숍으로 변했


그래도 익선동 골목길은
밤마다 희미한 불빛을 싣고
낮은 처마가 이어진 담장을 따라
여전히 갈래갈래 이어진다


토막 난 생각들을 길 위에 떨구고
모퉁이 화단 앞에 앉아 숨을 고르면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
삐걱~
밤늦게 귀가하는 이가
오래된 나무 대문을 닫아건다


하루 끝과 시작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간
마음도 눈을 감고 안갯속으로 젖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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